MŪLA

물라

by 시골남자

작은 돌담이 끝나는 곳을 지나자 큰 돌담이 이어졌다. 선우와 지유는 대화를 하다가 큰 돌담을 발견하고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마주봤다. 요가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점점 둘의 대화는 줄어들고 있었다. 차량 내부 침묵 속으로 엔진소리만이 얕게 울려 퍼졌다. 조수석 창문 너머 불규칙한 높이를 하고 있던 담머리가 반듯한 형태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요가원 입구까지 계속됐다. 차량 속도를 줄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선우가 말했다.

"큰 팽나무였죠?"

"기억하네요. 조금 더 가면 바로 보일 거예요"

"아, 저기... 저기 보이네요"

부르릉.

"천천히 가요. 안 급해요"

"음, 그러죠"

끼익.

마침내 요가원에 도착한 둘은 차에서 내려 입구로 향했다. 돌담이 둘러싸고 있는 공터 안에 기와로된 요가원 건물 지붕이 보인다. 둘은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입구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는데 발 밑으로 사각, 사각, 자갈 밟히는 소리가 난다. 지유는 발밑에 깔린 자갈을 힘을 주어 지그시 밟으며 그 자극을 느낀다. 이어 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가따스미...(왔습니다..)'

머리 위로 낮은 처마가, 양옆으로 두 개의 나무 기둥이 서 있다. 왼쪽에는 세로로 각인된 산스크리스트어가 보인다. [MŪLA ; 뿌리, 근원] 지유의 뒤를 따라 선우는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돌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자란 팽나무가 햇살을 받으며 서있다. 크다고 말하기엔 아직 젊고, 어리다고 하기엔 그늘을 만들 줄 아는 나무 같다. 줄기는 투박하고 가지는 욕심 없이 퍼져 있다. 지유는 그 나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벌써... 이렇게 자랐네요"

"이제 제법 나무 같은 티가 나죠"

"이 나무, 우리 함께 심었잖아요. 이제 저도 조금은 저 나무 같은가요?"

"그럼, 저 나무처럼 당신도 잘 커왔지요"

"잘 지나온 건가... 늘 생각해요. 고마워. 어서 들어가죠"

돌길 양옆으로 작은 회색돌이 연석처럼 줄지어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건물 주변으로는 초록잎의 풀과 작은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다채롭게 자라났다. 정원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그렇다고 방치된 것 같지도 않은 모습이다. 밟히지 않은 자리에서 스스로 자라난 것 같다. 색은 전체적으로 연하고 키가 낮다. 고개를 숙여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는 존재들이다. 햇살은 그 어떤 때보다 따뜻했다. 입구와 달리 건물에는 어떤 설명도 적혀 있지 않다. 안내문도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다. 화환이나 현수막도 보이지 않는다. 오픈일이었지만 지유의 성격처럼 공간도 담담해 보였다.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고서야 찾아오기 힘든 그런 공간처럼 보였다.

지유는 건물 입구 문턱 아래 화강석으로 된 디딤돌 앞에 멈춰 섰다. 선우는 깜짝 놀라 멈칫하더니 그런 지유를 바라봤다. 지유가 양손으로 합장을 하며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허락을 구합니다"

"......"

"이 장소를 흐리지 않겠습니다"

"......"

"지금의 나로 들어가겠습니다"

"......"

지유는 그러고도 잠시동안 고개를 살짝 숙여 합장한 손을 가슴에 모아두고 속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다 눈을 뜬지유는 정면으로 문을 마주 보고 디딤돌에 오른발을 올린다. 선우는 다시 그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선우만 알 수 있는 지유의 옅은 웃음이 잠시 스쳤다. 뒤따라가던 선우는 함께 웃었다.


요가원 입구에 여성 한 명이 서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인다. 조금 초조한 듯, 하지만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있다. 큰 눈, 조금 부담스럽게 부풀어 있는 입술, 원래부터 낮은 코 높이였는지 억지스럽게 세운듯한 코. 린넨 오프화이트 슬리브리스 톱, 세이지 그린의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요가 팬츠를 입고 있다. 따뜻하다고 생각하기엔 애매한 날씨인 터라 어울리지 않는 로브를 걸치고 있다. 머리는 신경 쓴 듯 안 쓴 듯 로우 번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유독 가장 눈에 띄는 액세서리가 하나 보인다. 초록색 작은 원석 팔찌. 그녀는 이내 눈썹을 치켜뜨며 만족스러운 듯 휴대폰 화면을 바라본다. 휴대폰 화면에는 요가원 입구와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그녀의 손목이 보인다.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있고 입구를 떠받치고 있다.


결국 오늘,

나를 알아보는 공간에 도착한 듯.

사람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진짜는 ‘느낌’을 아는 법.

형식은 그다음.

여긴 조용하지만,
그래서 더 수준이 느껴진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

나는 늘 이런 곳으로 오게 된다.
우연인 척하지만, 사실 필연.

어쩌면 공간이 나를 찾는 걸 지도

#물라 #다른에너지 #진짜는조용해 #수련은삶 #어나더레벨 #나만느끼는것


그녀가 서 있는 쪽으로 한 무리가 주위를 살피며 걸어온다. 잘 온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둘, 하나, 둘. 이렇게 총 다섯 명. 선두에 둘, 그 뒤를 따르는 하나, 맨 뒤에 둘.

입구와 조금 떨어진 돌담 끝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서연 님, 여기 맞는 거죠...? 왜 이렇게 먼 곳에 자리를 잡았을까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지유는 원래 좀 특이한 도반이었잖아요"

"날씨가 왜 이렇게 추웠다 더웠다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여기 제주도 아닌 거 같아요"

"그럼 겉옷을 좀 입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그럴걸 그랬네요. 오늘이 오픈 일이 맞긴 한 거죠?"

"저도 전해 들었어요"

"은솔 님이 이야기해 줬나요?"

"네... 우리는 초대도 못 받았는데.. 와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함께한 추억이 있으니까 와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 생각이죠. 추억? 그래요, 추억이긴 하지요... 그래도 우리가 한 잘못은 없어지지 않는걸요. 사실 우리가 못된 거죠. 지유가 얄미워도 그랬으면 안 됐어요. 그게 질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알지 못했을까요"

"그러니 초대를 못 받았던 거겠지요... 아직도 멀었어요. 좋은 마음으로 왔지만 불청객 같은 기분이 드네요. 괜찮은 건지..."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순 없죠. 그래도 축하는 하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래도..."

말을 주고받는 둘은 가까운 사이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길을 걷고 있다. 외향적인 성격에 말이 많아 보이는 사람, 그리고 이를 조용히 받아주며 할 말은 다 하는 여자 한 명. 그 뒤로는 생각에 깊게 잠겨 혼자 중얼거리는 여자 한 명이 걷고 있다. '이건 너무 기쁜 일이잖아. 내가 요가원을 세운 것만 같아. 지유는 결국 해낼 줄 알았어, 해낼 줄 알았다고!' 웃는 표정이 베이스지만 희로애락이 담긴 표정이다.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며 두 명의 도반이 맨 끝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 보인다. 키가 가장 크고 평온한 표정으로 걷는 여인 하나; 여자 혹은 여성이란 표현보다 여인이란 수식어가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강인한 인상을 하고 있는 한 명.

"은솔 님, 결국 여기까지 왔군요"

"그렇군요, 서린 님. 제가 오지 않았더라면 오셨을까요?"

말없이 차분하게 걷고 있는 여인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은솔'로 불렸다. 조금 말이 많던 둘이 이야기하던 은솔은 아마 이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선한 눈빛, 초승달 눈썹 외에 특징 없는 얼굴이다. 수수하고 밋밋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곧 만나게 되겠군요"

"......"

"지유는 우리와 결이 다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기꺼이 축하해 주자고요"

다섯의 도반은 지유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아는 사이지만 불편함이 저변에 깔려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은 문 쪽에 서 있던 여자 한 명을 바라보며 발길을 재촉했다. 서로 관심은 없지만 지유로 인해 이 자리에 함께 모이게 된 듯 보인다. 문 앞에 가장 먼저 와있던 여자는 다섯을 마주하자 가벼운 목례로 그간 잘 지냈냐는 듯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맨 앞의 둘은 그녀를 쳐다보고서 눈꼬리를 올려 인사했다. 지나치자마자 무표정으로 변해버렸지만. 그 뒤 한 명은 환하게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맨 뒤에 있던 은솔은 "다은 님, 잘 지내셨지요"라며 존대를 했고 다른 한 명은 눈을 크게 뜨며 턱을 위로 쳐 올리며 남성스러운 느낌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 여섯 명의 도반들 중 제일 처음 도착한 여성은 나이가 가장 어려 보였다.

"... 입구 좌측에 새겨진 각인, 보셨습니까"

"MŪLA..."

"결국 그 이름을 택했군요"

"지유는 인간 내면의 뿌리를 찾고 싶어했어요. 특히 번뇌를 일으키는 생각을 초월하려 했죠. 결국 생각이 없어지진 않았지만요. 어느 정도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닐지... 수련원의 이름을 물라로 지은 것을 보면 아직도 여정 속에 있는 건 아닐까요?"

"... 종착지는 없는 건가..."

그들은 지유와 선우가 들어왔던 길과 똑같은 풍경을 보며 돌길 위를 걸었다. 그들의 걸음은 문 밖에서와 달리 서서히 느려졌다. 말이 많던 채린과 서연은 말수가 줄어들었고 조금 위축된 듯했다. 홀로 걷던 예현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은솔은 흐뭇한 미소로, 그리고 서린은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맨 뒤로 나이가 제일 어린 다은은 요가원 안의 풍경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다시 꺼내 들었고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련원 건물을 향해 걸어오는 여섯 명의 무리를 본 선우는 이들을 맞이하러 밖으로 나왔다. 정중하게 손을 모아 입구 제 자리에 서서 천천히 그들을 향해 고개숙여 인사했다. 먼발치서 선우의 실루엣을 본 그들은 잠시 주춤하더니 발걸음을 멈춰 머뭇거리다 맞인사를 건넸다. 거리가 좁혀져 마침내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그들에게 선우가 이제 안내를 해줄 터였다.

"먼 길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자신의 평소 모습이 어떤한들 수련원 입구에 들어서기 전 그들의 눈빛은 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긴장감과 기대가 섞인 표정으로 선우가 다음 말을 이어가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지유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으로 모시지요"

하나 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데 예현이 선우에게 물었다.

"오늘이 오픈일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화환이나... 사람들이 오고 그러진 않나요?"

선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여러분을 제외하고 오실 분이 한 분 더 있긴 합니다"

"누구시죠?"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들은 선우의 뒤를 따라 천천히 따라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섰지만 바로 수련실이 보이진 않는다. 한 사람 정도가 멈춰 설 수 있는 짧은 공간이 이어져 있다. 천장은 낮고, 빛은 깊었다. 밖에서 따라 들어온 공기가 잠시 머물다 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발밑은 차갑지 않은 돌이 깔려 있다. 반질반질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감촉. 맨발을 전제로 만들어진 복도 터널인 것 같다. 터널 끝으로는 문이 하나 보인다. 그 순간 그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조용히 선우가 손짓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터널 안에는 어떤 장식도 걸려 있지 않았고, 낮은 선반 하나와 접어 둔 천 몇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건너편 방 안쪽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음악 소리도 없다. 대신 아주 얕은 호흡소리만 미세하게 들려온다. 가까이 다가서니 문이 살짝 열려 있다. 은솔서린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동시에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나머지 도반들도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고르게 가라앉혔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낮은 선반 위로 하얀 쪽지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은솔이 이를 먼저 보며 고개를 두 번 끄덕인다. 이어 나머지 도반들에게 '먼저 들어갑니다' 하고 목례를 했다. 나머지도 은솔이 한 것처럼 이를 읽고 하나 둘 방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다은이 읽고 무심결에 던진 쪽지가 돌바닥으로 떨어졌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고맙습니다. 마음이 닿는 곳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마지막 한 분이 더 오셨을 때, 그때 시작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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