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행 버스에 앉은 이유를 찾아서

San Critsobal De las casas

by 조서형



취직과 졸업 그리고 퇴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출국 직전까지도 겁을 먹은 건지 설레는 건지 영 힘이나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는 장기 비행의 장점은 영화를 서너 편 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트에서 애니메이션을 골라 재생시켰다. 영화가 시작되자 나는 이내 주변 사람들의 스크린을 힐끔거리고 다시 목록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영화가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그 영화가 괜찮은지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이었다. 하나의 선택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두리번대는 그것은 내 오래된 고질병이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젊고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좋은 태도는 아니었다. 세 마리 토끼 쯤은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돈을 벌고 친구를 사귀고 공부를 하는 일은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추억과 에피소드가 따라 올 것도 기대했다. 자금 문제로 중남미 전체를 여행하는 식의 일정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이번에야말로 조금은 우직해져 볼 기회가 아닐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버릇을 꾹 참고 네 달동안 얌전히 스페인어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 이 대륙의 매력에 대해 익히 들었고, 남미 여행은 인생에 자주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버린 선택지에 대한 아쉬움을 ‘노오력’으로 지워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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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두 달이 흘렀다. 해가 지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오면 알람 없이 일어나 숙제를 하고 스페인어 수업을 들었다. 어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적응이 되면서 문득 다 좋은 건지 단지 아무것도 나쁘지 않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남은 현금이 얼마 되지 않는데, 자동현금출입기가 내 카드를 읽지 못했다. 서비스가 불가하다는 메세지와 해당 은행 담당자와 통화를 하라는 얘기 뿐이었다. 남다른 삶을 사는 선구자처럼 스스로 떳떳해하며 떠나왔으나 게으름의 덫에 걸려 좁은 방 안에서 하루하루 생활비를 계산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다.


아티틀란 호수 주변의 작은 도시 파나하첼에 커피에 미친 사람들이 운영한다는 ‘Café Loco’에 당일치기로 찾아가 면접을 보고 왔다. 일자리를 구하진 못했지만 역시 말도 안되는 일을 할 때가 가장 나답지 않나.여기서 두 달을 더 지낸다면 이번에는 숙소비도 깎을 수 있고 생활에 큰 무리나 지장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미 마음이 떠 버렸다. 다이어트 비디오에서 나오는 강사 언니가 10번만 동작을 따라하라고 했다가 아홉 번쯤 됐을 때 “10번 더!”라고 외쳤을 때의 답답함이었다. 우기가 시작되면 다시 길을 떠나기로했다.

손님이 많지 않은 호스텔에 두 달이나 장기 거주하고 스페인어 수업까지 호스텔에서 들은 데다가 어리숙해서 바가지까지 쓴 동양 여행자를 주인인 에디는 결코 가엽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길거리 어설픈 여행사들보다 비싼 가격에 버스도 아닌 봉고차 표를 내게 팔았다. 사실을 알고 나는 다시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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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몇 시간 뒤면 낡아서 곧 뽑힐 것 같은 의자와 굽은 길 위에서 약 하루동안 멀미에 시달리다가 새로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일단 목적지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 적당히 길고 적당히 신비로워서 있어보이는 이름이다. 이 곳에서 나는 인디언을 위한 시설에서 가구 만들기나 금속공예를 배우고 있을 수도 있다. 또는 이틀만 머물고 멕시코의 다른 도시로 갈 수도, 비자 갱신만 하고 다시 과테말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었다. 산 크리스토발은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국경도시로 아즈텍 문명인 멕시코에서 유일하게 마야 문명에 속하는 곳이다. 안티구아와는 달리 길에는 원주민 전통복장을 한 사람이 훨씬 적었고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느라 낯선 여행자에게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쌀쌀해진 날씨에 자꾸 재채기가 나왔으나 아무도 “Salud”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퇴폐적인 느낌이 풍기는 도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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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충격적인 것은 시내의 모습이었다. 여행객들이 주로 들르는 거리에는 유럽의 도시처럼 화사하고 화려한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들어서 있었다. 카카오 열매와 향신료를 오랜시간 물에 끓여내어 마시는 고대 마야인의 전통 음료는 모순적으로 원주민들이 아닌 백인들의 손에서 스팀 쳐진 우유에 꿀을 곁들여 5천원 쯤 되는 비싼 가격에 ‘마야 신의 음료’로 팔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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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가 짙게 배어든 서민들의 아침 시장은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는 곳이다. 각자가 꾸려나가는 생활에서 진실함과 특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나 역시 새로운 장소에 가면 이른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곤 한다. 그러나 그 날은 카메라를 차마 들기도 힘들었다. 한창 어리광 부릴나이의 아이들이 동생을 업고 제 키보다도 큰 빗자루로 바닥을 쓸었다. 청년들은 아침식사로 0.5페소(한화 30원) 짜리 빵을 허겁지겁 씹어삼키며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거나 진열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존 사이에서 난 그냥 구경 온 사람일 뿐이었다. 이병률 작가의 끌림이라는 책에는 똑같은 걸 두 개 사서 하나 먹고 하나를 내밀어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다. 나도 옥수수 가루를 쪄서 만든 중미 전통 음식인 타말을 여섯개 샀다. 지쳐서 울지도 않는 아이 둘을 안은 엄마와 털옷을 파는 할머니, 손을 맞잡고 길에 가만히 앉아있는 어린 자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디 그들의 하루 시작이 조금이나마 든든해졌길 바라며. 잘나 보이고 싶던 날들이, 무시당하지 않겠다고 버둥거리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고통 사이를 나는 감히 걷고 있었고 감히 감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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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까 시장에서 김밥파는 한국 언니들.JPG

산크리스토발에서 이틀을 지내며 매니저를 구하는 호스텔들에 마구 이력서를 넣었다. 연락을 기다리며 일단한인 호스텔이 있다는 도시 ‘와하까’로 향했다. Oaxaca로 쓰여져 읽기 난해한 이 도시는 인디오 민족들이 파생된 성지다.무려 열 여섯 부족이 이곳에서 탄생하였으며 사투리까지 치면 90가지가 넘는 부족 언어가사용되고 있으며 멕시코에서 음식이 가장 맛있는 도시로, 굳이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전주’와 같은 도시다. 이곳의 한인 호스텔 디시엠브레는 놀랍게도 91년생 언니가 운영하는 곳이다. 사장님은 이 곳을 찾는 배낭여행객들과 가장 가까이서 얘기를 나누면서도 독립적인 성향의 여행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호스텔 운영과 동시에 스스로가 즐거워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운영, 홍보, 유지, 보수만 해도 생각할 게 많은 어려운 일이며, 사람들과 시간, 공간을 공유하느라 사생활을 가지기 힘들 것이다. 가끔 손님이 없는 비성수기에는 외로울 수도 있다. 호스텔의 장기거주자들, 사장님과 함께2주에 한 번 열리는 와하까 시장에서김밥을 말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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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까에서 이틀을 지낸 뒤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로 고향 친구를 만나러 떠났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얻은 두꺼운 멕시코 역사 책을 꺼내 읽었다. ‘깃털 달린 뱀’의형상을 한 메소 아메리카 고대 회화의 신인 께찰코아틀은 뱀 몸통에 비늘 대신 께찰의 깃털을 두르고 있다. 도마뱀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동양의 용과 같은 느낌일까. 께찰은 중앙 아메리카에 서식하는 꼬리가 긴 초록색 새로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서 신성하게 여겨진다. 과테말라에서는 국조인 동시에 화폐 단위로도 이용된다. 께찰코아틀은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신으로 농경 사회에서는 풍요를 뜻하여 숭배되었다. 처음 스페인의 군대가 멕시코에 왔을 때, 원주민들은 스페인군의 대장을 께찰코아틀로 착각해 경계를 풀고 환영하여 멸망했다고 한다. 설화 속에서 '께찰코아틀은 테스카틀리포카의 계략에 의해 타락한 뒤 찰치우틀리쿠에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마치 발음교정 시간 같은 또는 술을 진탕 마신 뒤 입안 가득 짱구 과자를 물고 말하는 듯한 나우아틀어를 소리내어 읽다보니 금새 음침한 도시,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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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한국 대기업의 멕시코 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보다도 더 어린 시절 동네 한심한 짓은 다 하고 다니던 우리라서 미성년자의 고삐가 풀린 뒤 다시 만날 일이 기대가 되었다. 덕분에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고몇 달 만에 에어컨 바람 아래서 삼겹살을 구웠다.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친구는 내가 이 여행을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뭔지 물었다. 여기까지 혼자 오는 용기가 기특하긴 한데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회 부적응자쯤 되어버린 듯한 기분에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더 많은 것을 보고 새로운 언어를 통해 또 다른 문화를 익히고 싶다고 억지로 설명했다. 얘길 하다 보니 내가 들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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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사람들은 모험을 매혹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과 세상을 동시에 변화시킬 힘을 가지게 될 무언가를 찾으러 떠나는 영웅의 여정은 지금까지 인기 있는 줄거리다. 아픔과 절망을 해갈하기 위한 내 일정은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꼬인 일을 풀 힘도, 용기도 없고 책임질 일이 무서워 급하게 떠나 온 도망 길이었다. 멀리 여정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전원을 껐다 켠 휴대폰처럼 널부러진 오류들이 말끔히 사라질 거라 기대했지만 해결될 건 없을 거란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 할 용기가 없는 내게 실망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그 날 친구는 내게 철없다고 말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내게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보다 내게 더 절망스러운 것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설명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내가 원하는건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었다. 그 이상을 갈망했고 그에 따른 약간의 위험도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에 의해 안락한 일상을 뒤로 하고 길바닥에 내가 선택한 삶을 똑똑히 마주하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균형 잡힌 바른 사고를 가지고 싶다. 내 이름의 뜻인 ‘상서로운 균형’처럼. 치우치고 고집스러운 생각이 아닌 한 가운데를 추구하고 싶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일주일간 머무르며 분수에 맞지 않는 편안함을 누렸다.지로 오노처럼 참치 자체에 열정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지금 나처럼 남들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꺼내 놓지 못할 수도 있다. 찝찝함 속에서 뭔가 거대하고, 설레면서도 약간 겁이 나며 압도적인 느낌에 끌려왔던어느 날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그 기분속으로 빨려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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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로 떠나면서 이길에서 겸손함과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랬다. 화장실이있는 대형 김치냉장고쯤 되는 듯한 버스를 타고 이를 딱딱 부딪혀가며 도착한 곳은 이름도 생소한 ‘테픽’이었다. 정류장을 착각해 과달라하라에 내리지 못한 내게 이제 이쯤되는 일은 별 일 아니었다. 표를 다시 끊고 길거리에서 타코로 배를 채운 뒤 벤치에 앉아 의연하게 다음 버스를기다렸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마라.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실험은 많이 할 수록 나아진다. – Ralph Waldo Em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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