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테낭고 화산

지옥의 아카테낭고 등반

by 조서형


취업 전이나 진학 전 ‘갭이어’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느 날 부터 유행처럼 번졌다. 해외에서 돈을 벌면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나 가지고 있는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 많은 구경을 할 수 있는 배낭여행, 재능을 나누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봉사 활동,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분야의 현장에서직접 뛰어본다거나 직업학교 등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성을 인정받았다.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스펙과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휴학과 뭐가 다르냐. 여유로운 금수저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냐.

분명 굳은 의지를 가지고 당차게 떠나왔으나 나도 그럴듯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일상을 뒤로 하고 낯선 땅에서 다시 시작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물을 새로 바라보는 눈을 기르겠다던 생각은 주변사람들에게 ‘현실 도피’ 쯤으로 보이진 않을까. 더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동생과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커졌다.혼자 너무 오랜 시간 생각 속에 갇힌 듯 했다. 집 밖에서 조금 걸으며 생각해야겠다.




#1 나무가 많은 땅


과테말라라는 이름에 대한 몇 가지 가설중에는 원주민이쓰던 나우아틀어 해석이 있다. ‘나무가 많은 땅’이 바로 그것이다. 안티구아가 수도였던 찬란한 날들을 화산 폭발은 과거로 만들었다. 아직도 안티구아 주변에는활화산이 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인 한라산은 1,947m,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높은 사파의 누이 판시판은 3,183m, 그리고 활화산인 푸에고 화산 바로 옆에 위치한 또 다른 화산인 아카테낭고는 그 높이가 무려 3,976m에 달한다.

숙소에서 200께찰, 한화로 약 24,000원을 아카테낭고 투어 비용으로 지불했다. 봉고차를 타고 산중턱까지이동한다. 샌드위치 두 개, 시리얼, 가루 우유, 요거트, 사과, 바나나, 컵라면, 삶은 계란, 감자칩이 담긴 봉지를 하나씩 받는다. 춥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긴팔옷에 후드 집업에 장갑에 외투에 털모자까지 빌려갔다. 가방은 최대한 큰 게 좋다. 텐트와 침낭,개인매트를 지급받아 들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밧줄로 동여매주기도 하지만 중심을 잡는 것부터 착용감까지 영 불편하다. 시작 전 인데 안개가 자욱한 찬 공기가 그 고도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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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나 과테말라 럼주 등을 파는 상인들이 지나다니고 상기된 표정의 여행자들이 잔뜩 부푼 가방을 자랑스럽게 메고 출발한다. 세 걸음 올라가면 한 걸음은 미끄러지는 구조의 화산재로 이루어진 산인 데다 계단은 커녕 울타리도 없다. 덕분에 진도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발목까지 푹푹 잠겨들어가 올라가는건지 내려오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허리가 아파서 고개를 들면 무시무시한 경사가 눈에 들어온다. 두 번 쯤 모여서 쉬는시간을 가졌고 밥을 먹으라고 했다. 점심을 먹으라는 걸 보면 이제 절반쯤 온 것일까. 이 정도라면 꽤나 할 만하겠는걸. 나는 속으로 건방을 떨고 있었다. 다시 배낭을 메고 입장료와 간단한 신변을 작성한서류를 꺼내어손에 쥔 채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서야 '아카테낭고 화산 국립공원에 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가 보인다.

와,여태 이렇게 힘들었는데.정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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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간쯤 줄창 올랐다. 입으로 중얼거려가며 열 걸음 헤아려서 올라가고 쉬고 또 열걸음 올라간 다음 돌 위에 주저앉았다. 종아리와 허리가 아프고 내가 왜 굳이 자연을 이기려 했을까 후회하던 2년 전 판시판 등반이 떠올랐다. 걸을 때 마다 화산재 모래먼지가 피어 오르고 다들 굴뚝에서 나온 산타처럼 얼굴에 검댕이 덕지덕지 묻었다. 게다가 가방이 무거워 땅으로 꺼질 것 같았다. 차라리 땅으로 꺼져서 지구 반대편으로 나올 수 있다면 바로 한국에 있는 우리 집에 도착 할 수 있지 않을까.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은 낮아졌고 안개가 짙게 꼈다.열이 올라 땀이 나는 동시에 추웠다. 누군가 이런 표현을 썼다. “아파서 열이 끓는 채로 냉장고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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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달래고를 몇 십번이나 해 가며 꾸준히 올라온 결과 해가 지기 전, 베이스캠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로 도착했다는 말에 감격하며 친구들 도움을 받아 텐트를 설치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건너편의 활화산인 푸에고를 바라봤다. 다른 행성에서 한조각이 지구에 떨어져 박힌 것 같은 검은색 화산의 웅장하고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숲에 들어가 나무 한 그루를 손칼을 이용해 통째로 패기 시작했고 호기심 많은 몇은 그 모습이 신기해서 따라올라갔다. 울창한 나무사이에 여기저기 카메라를 쥐고 자리를 잡은 채 동영상을 촬영하는 친구들을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관찰했다. 아래에서보니 그동안 어떻게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끔찍한 기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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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을 피우고 각자 가지고 올라온 생수를 십시일반 양철컵에 모아 불옆에 두고 끓인다. 고생한 맨발들이 모이고 이야기보따리를 조잘조잘 펼쳐낸다.어느 덧 해가 졌다. 잘 보이지 않아 물조절이 안되지만 간과 상관없이 산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최고일 수밖에 없다. 직화로 구워낸 또르띠아를 나뭇가지로 콕 찍어서 치 즈와 토마토를 얹어 나누어 먹는다. 설탕을 잔뜩 넣고 커피는 향기가 날 정도만 넣는다. 그 것은 감히 내 인생에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었던 '인생커피'. (내지는 인생 설탕물로 정의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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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른 사람들은 그렇게 커피와 럼주를 나누어 마시며 깊은 곳에서 자신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꺼냈다.깊은 산 속에서 듣는 도난당하고 협박당하고 분실하고 싸우고 길을 잃은 모험가들의 이야기는 애절하고 달콤했으며 때론 용감했다. 하늘 좀 보라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벌렁 드러누웠다. 나도 모르게 “헐. 징그러워”라고 말할 정도로 별이 많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서 달을 본 날이었다. 하늘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감동에 카메라를 꺼내 담아보았으나 특별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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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으레 잔뜩 흥분해서 사진첩을 보여준다. 낯선 도시의 사진들, 가끔은 어린 조카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동영상 일 때도 있다. 막상 보는 사람은 그 순간에 대해 특별한 공감이 가지 않는다.책이나 영화를 비롯해 요새는 현장보다 더 화려하게 간접 경험 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 그럼에도 가끔씩 뚜렷한 목적없는 고생은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뚜렷한 한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 과테말라의 옥상

아홉시가 되기도 전, 모두 텐트로 기어들어갔다. 베트남 판시판에서의 지난 등반을 떠올리며 푹 잘 수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밤이되면 왕성하게 활동 중인 화산이 3분에 한 번 폭발하여 그 시뻘건 마그마를 칠흑같은 어둠 속 생생하게 뿜어낼 장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그 날은 화산분출이 없었고 나는새벽 4시에 무사히 기상했다. 침낭에 누워서 얼굴만 내민 채로 텐트 속 네 애벌레는 “난 확실히 이야기 할 수있어. 비록 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난 절대 움직일 수 없을거야.”,“누가 실수인 것처럼 낭떠러지 아래로침낭째 날 굴려줘. 집에 가고 싶어.”같은 바보스러운이야기를 나누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보니 그럭저럭 상쾌했다. 몸도 가벼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정상에서 볼 해돋이를 위한 산행이 시작되었다. 네 발로 기어오르며 앞사람을 바짝 쫓지 않으면 나무와 풀 숲 속에서 길을 잃기 일쑤였다. 가파른 화산재 모래 길이 펼쳐지면 더욱 속도가 더뎌진다. 모래 속에 묻힌 발을 꺼내느라 한 걸음 옮기기도 벅차지만 일단 묵묵히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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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거세어지고 화산재가 날린다. 불구덩이의 냄새가 같이 날아왔다. 거친 숨을 내쉬다 보면 폐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났고 켁하고 기침을 뱉으면 뜨거운 화산 맛이 났다. 앞서가던 친구가 잠시 쉬느라 발걸음을멈추고 뒤따라오는 친구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리면 그래도 이런 짓을 하는 게 혼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기쁜지.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이 줄어든다. 고산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늘 앞서서 씩씩하게 오르던 스테판이 헛구역질을 하며 주저앉았다. 친구는 앞서나가던 걸음을 뒤로하고 발을 맞춘다. “뭐야 설마 너 토한 거야?”, “아냐, 침 뱉은 거야. 나 얼마나 강한 남자인지 알지?” 사나이들의 익숙한 대화가 오고 간다. 그들은 정상까지 가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엉거주춤 앉았다. 가장 높은곳에서 보다 친구와 함께 보는 일출에 의미를 둔 마음이 따뜻하다. 베이스캠프에서 해돋이를 구경하기 위해 하산을 선택하거나 벌써 앞서나가 아무도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온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 어둠 속 공포심과 멤버가 줄어든 아쉬움에도 발걸음을 쉬지 않는다. 이 걸음을 떼지 않는다면 나도 따라서 돌아내려갈 걸 알고 있어서 멈출 수 없었다. 지독하게 포기 하고 싶은 순간인 동시에 너무나도 욕심이 나는 일이었다.

해는 떠오르기 시작했고 손전등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발 아래 몽실몽실 깔린 구름이 보였다. 안티구아 시내 어디서도 보이는 우뚝 솟은 아구아화산이 저 아래로 작아지기시작하고 나는 아직도 4000m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내려다 보는 순간 까마득, 절벽이다. 가끔 고개를 들어 둘러보는 매 순간이 감동이었다.죽 미끄러져서 포근한 구름 속에 안착한 다음 얼음장 같은 물이나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 매 년 새해에 호미곶에서 보던 해돋이가 생각났다. 다만 출렁대는 게 바닷물이 아니라 구름이라는 차이점정도. 추운 바닷가에 서 해를 기다릴 때는 두둥심대며 떠오르는 시간이 길다고 느껴졌는데 정상까지 한 시간 쯤 남은 시점에서 해는 기다려주지 않고 내가 뒤돌아 볼 때마다 한 뼘씩 야속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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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경사가 더 급해져 다섯 걸음 씩도 채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푸에고 화산이 구름보다 조금 위로 보였다. 인터넷에 수많은 재밌는 패러디 사진들을 보고 나는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 고민하며 올라왔는데 아쉽게도 이 날은 폭발이 없었다. 다만날씨가 굉장히 좋아 챙겨 온 옷들을 껴입지 않아도 됐다. 막상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앞서 내려간 사람들이 만들어 둔 길이 바람에 사라지기 전에 따라 걸어 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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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길은 스키장이 따로 없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기억을 되살리며 발은 A자로. 베이스캠프로 산을 헤매어가며 내려왔다. 가이드가 성공을 축하해 주며 남은 모닥불에 생초콜릿을 바글바글 끓여 한 잔 내민다.평소에 마시던 우유에 진하게 녹여낸 밀크 코코아는 아니지만 지금 그런게 무슨 의미겠느냐. 오히려 은은하고 편안한 게 뒷맛이 깔끔해 위로가 된다. 모두 안전하게 돌아와서 텐트도 접고 가방도 챙겼다. 내려가려고 서두르지 않고 다들 누워서 하늘만 바라본다. 재가 뒤섞인 뜨거운 초콜렛이나 가끔 홀짝인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굉장하게 느껴진다. 힘들게 산을 올라오던 기억이 마치 전생인 양 남의 일 같다. 밤새 잠잠하던 화산이 기념 축포처럼 크게 한 번 터져준다.

높은 경사와 반쯤 풀린 다리와 배낭무게가 더해져 내려오는 길은 멈출 수가 없다. 앞 사람을 브레이크로 이용하고 가끔은 다 포기하고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온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맨발로 숙소 앞에 내려서 온 몸이 시큰거리는 채로 우리는 헤어졌다. 앞 집 사는친구에게 잘쉬라며 작별인사를 하자 “넌 정말 강한 녀석이야. 네 완주를 자랑스러워해도 돼”라며 툭 던지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걸음 옮기기도 바쁘고 힘들어서 결국 내가 자꾸만 뭔가를 찾고자하고 방랑하는 이유에 대해 남에게 그럴듯하게 설명할 거리를 찾아야 했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바보처럼 들리겠지만, 적어도 내가 의심을 품을 일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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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는 강하다는 자부심과 스스로 균형을 잡아 마음의 평화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겼다. 여전히 그 이후에도 길에서의 여러가지 일이 무의미하고 고생스럽게 느껴졌고 궁극적으로 뭘 이룰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가파른 화산재를 안간힘을 써 가며 완주해 낸 성취감은 든든하게 날 받쳐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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