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라하라의 고행자들의 집

The Roof Backpackers Guadalajara

by 조서형

열 두 살에 호주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다. 외국생활은 처음인 데다 홈스테이 파트너와 성격이 맞지 않아 무섭고 외로웠다. 어떻게든 집에 연락을 하지 않고 억지로 꼭 참았었다. (당시엔 국제전화가 유일한 방법이었고, 굉장히 비쌌다.) 과정을 이겨내야만 끝에서 빛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소심한 성격인 내게 당시의 경험은 결국 공포로 남았고, 외국어를 말할 때 상대가 날 비웃을 거라는 트라우마에서 오랫동안 벗어나기 힘들었다. 고생 끝에 고생에 부딪혀가며 미련하게 참길 좋아하던, 위인전처럼 ‘참는 자에게 복이 올’ 거라 믿던 내게서 언젠가부터 서글픈 검은색 오로라가 피어나고 있었다. 태어날 때 부터 궂은 일을 할 운명인 사람의 눈빛을 하고선 오늘도 사서 걱정을 한다.

겁이 많다고 얘기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다 콧웃음을 친다. 그러나 매번 새로운 환경에 대해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이면서도 눈 앞의 보장된 행복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더 높게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성격과 좋아하는 일의 불일치는 이렇게나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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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영영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하다 보면 좋아지겠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도전하는 사람만이 결국 자신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고 그게 진정한 섹시함일 거라고 믿는다. 길 위에서 슬프고 무겁고 비뚤어진 생각에 휩싸여 ‘이대로 인생이 아닌 고생만 맛보는 건 아닌가’ 배낭에 짓눌려 생각한다. 여행이라기엔 고행에 가까워 가지만 이 칙칙한 색깔이라도 그게 나만의 색이 될 수 있다면 그대로 좋다고 위로한다.



멕시코는 빵과 신선한 우유를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게다가 과테말라 보다 물가가 싸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남은 세 달을 이 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Fleejob을 통해 과달라하라의 호스텔에 일자리를 의외로 쉽게 얻었고 그 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인터넷 사이트 fleejob에서는 여행자들이 중단기로 일할 수 있는 호스텔, 농장, 번역과 같은 일자리를 소개한다.)

길에서 팔고 있는 신문 가판대엔 총 맞아 피를 흘리는 시체들의 사진이 첫 장에 버젓이 실려 있었고 더 자극적일수록 눈길을 끌어 잘 팔리는 듯 했다.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가 납치, 감금당한 내 모습이 실릴지도 모른다. 오 그렇다면 동양인이라 더 관심을 사게 될까. 이런 끝도 없는 재수없는 생각을 하며 겁에 질린 나를 재수없어 하며 과달라하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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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ofBackpackers 호스텔의 주인인 Galo는 젊고 유쾌한 멕시칸 남자였다. 바로 옆 건물까지 사들여 장기 거주자들의 숙소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두 명이서 오전과 오후 쉬프트를 나누어 체크인과 아웃을 관리했고 간단한 청소 후 침대 시트를 세탁했다. 여행자들과 함께 도미토리를 사용했고 호스텔의 모든 시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빵과 시리얼, 우유그리고 약간의 과일이 제공되는 아침 식사를 먹을 수도 있었고 와이파이도 맘껏 사용했다. 인심 좋은 주인덕에 100페소(한화6,100원)의 저렴한 우리 호스텔엔 늘 유쾌하고 느긋한 영혼들이 넘쳐났다.



과테말라에서 두달 쯤 할아버지 선생님과 앉아 배운 내 절름발이 스페인어는 역시 호스텔 일을 하기에 무리가 많다. 도전하면서도‘이래도 되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일이었지만 막상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중남미 여정의 시작점인 멕시코에서 여행자들은 스페인어를 딱 나만큼 하거나, 스페인어를 못 하는 사람을 재밌다고 생각하거나, 이러나저러나 별 관심이 없거나 그 중에 하나다. 첫 날을 무사히 마친 나는 5천원짜리 중국음식 뷔페에 가서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었다. 계산을 마치고 손에 쥐어진 포춘 쿠키에서는 ‘Teaguarda un Hermosa sorpresa’ 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가 나왔다. - 당신은 아름다운 놀라움을 만나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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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밤을 The Roof Backpackers에서 보냈고 잠을 매일 설쳤다. 밤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엄청난 더위와 사방의 열린 창문에서 들어오는 모기와 싸우다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길 반복. 휴대폰을 켜고 모기를 찾는다. 눈에 포착된 빨갛고 뚱뚱한 배를 가진 모기. 살금살금 다가가니 길고 얼룩덜룩한 다리가 생각보다 더 징그러웠다.

어린 시절 살던 집은 밖보다 실내가 더 더운 불가사의한 구조였다. 좁았고 당연히 에어컨은 없었다. 때워도 늘 구멍이 나 있는 방충망 사이로 모기는 자꾸 들어왔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가족들이 누우면 엄마는 커다란 대나무 부채를 들어 골고루 바람을 부쳐주셨다. 또 남편과 두 아이를 위해 소리없이 모기를 때려 잡으며 여름밤의 수면을 지켜주셨다. 엄마가 스스로 붙인 ‘킬러’라는 별명이 문득 마음이 아팠다. 더위를 꼭 참고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 올렸다. 금방 땀이 흘러내렸고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메세지를 보내려다가, 다 컸다고 생각한 딸이 매번 우는 소리에 어리광을 부리면 얼마나 허무할까 생각했다. 옆 숙소엔 또래 한국인이 있었다. 스페인어 자격증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수업을 하는 곳을 찾았다. 30분 거리에 태권도장도 하나 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날 버틸 수 있게 하는 뭔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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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수업을 하는 여자 선생님은 앳되어 보였지만 직설적이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현재 스페인어 수준이 초급을 겨우 벗어난 A2정도라서 내가 원하는B2 시험을 칠 수 있게 하려면 적어도 1년은 수업을 들어야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따뜻한산타같은 과테말라의 구스타보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내 선생님은 수업이 앞으로 “Muy dificil (매우 어렵다)“ 일 거라고 말하며 제자로 받아주셨다.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었지만 다시 시작하는 스페인어 공부에 오롯이 집중하는 그 느낌에 소로록 몰두했다. 하루 다섯시간, 주 5일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을 듣고 숙제를 했다. 땀을 쏟은 노력은 내가 함부로 남을 부러워하고 질투하지 않는 사람이게 한다.




스페인의 침략을 받은 아즈텍 황제인 목테수마는 한을 품어, 멕시코 땅에 들어오는 외국인에게 저주를 내린다고 한다. 3주 이내에 아프게되는 것을 ‘목테수마의 저주’라고 한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나는 정말 3주차에 더위를 먹었다. 꾸역꾸역 호스텔 청소를 하고 수업을 듣고 태권도장까지 억지로 다니자, 컨디션은 좀처럼 회복 되지 않았다. 엄마 잡곡밥에 외할머니 김치 한 조각만 있었더라도. 외할아버지가 직접 뜨시는 장으로 만든 찌개를 곁들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부드럽고 얇은 면 잠옷을 위 아래 세트로 입고 이불을 가득 덮고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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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가며나는 과달라하라의 일상에 녹아들어갔다. 호스텔의 더러움은 야성적인 여행자들의 에너지다. 내 물건을 마음 놓고 늘어놓는다거나, 조용히 공부에 집중한다거나, 넓은 개인 공간을 가지는 것은 기대할 수 없지만 비슷한 외로움을 마주보며 맥주 한 병에 두런두런 시간을 응시하는건 참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서로의 아픈 이야기들을 통째로 농담처럼 꺼내 놓으며 우리들은 매일 밤 훈훈한 소속감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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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만 얘기해도그 사람이 나랑 맞는 사람인지 알 수 있지. 그 날 저녁엔 별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없어 시간 낭비라고 느꼈어.” 라고 말하던 여행자가 있었다. 영리하고 계산이 빠른 사람을 훌륭하게 평가하는 사회 속에서 생겨나는 당연한 현상지만, 호스텔에 있는 동안에는 나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생기를 가득 품은 눈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담배 연기와 맥주잔이 널부러진 사이에서 어제 봤던 영화가 똑같이 재생되고 있는 날, 오토바이 여행자들이 모여 얘기를 하다가 베트남 해안도로 라이딩으로 순식간에 하나가 된 날,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켜진 동안 묘기를 부려받는 돈으로 여행을 하는 여행자가 낸 일주일치 동전 숙박료로 돈 통이 안 닫히던 날. 핀란드어는 어원도다르고 워낙 어려워서 잘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 뿐이란 것, 온갖 나라 말로“저 이 나라 말 못해요”를 말하는 법을 배웠다. 한국에 꼭 오고싶다는 여행자는 꼭 김치를 땅에 묻는 걸 해보고 싶다고 했고 스웨덴의 썩은 청어와 김치 중 어떤게 더 나쁜 냄새가 나는지에 대해 토론을 했다. 선생님과 교재를 한 문단씩 읽다가 소란스런 연극이 된날도 있었다. 택배나 수리 기사가 호스텔 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어주면,“안녕, 엄마 계시니 꼬마야?” 라는 인사를 들었고 정말로 다른 인종, 문화권 사람들끼리는 나이 가늠이 어렵다는 사실도 알았다. 도룡산의 신선이라도 된 듯한 진지함으로 수련을 하는 태권도장에도 매일 나갔다. 나는 내가 평범한 가정에서 무난하게 자라 평균의 가치 기준을 가진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호스텔 에피소드

#1“우리 클럽 갈건데 같이 가자”

“안 가봤어”

“그럼 오늘 어른이되는 거야, 00로 갈거야.”

“왜? 거기 게이바잖아.”

“이 년아, 내가 게이니까.”


#2”(나)현대”

“(코헤이)도요타”

“(나)삼성”

“(코헤이)소니”

“(갈로) 호스텔에 한국인과 일본인을 같이 받다니. 당장 격리 시켜야해. 분명 전쟁이 일어날거야.”

“우린 자국의 자랑스러운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너넨 뭐가 있는데”

“(갈로)타코, 그게 제일 위대해.”


#3”언어 배우는 걸 좋아해.”

“러시아어도 하니?”

“대학교에서 수업을들은 적은 있어. 그런데 러시아 유학을 다녀 온 사람이나 배웠던 사람들이 나랑 같은 초급 수업을 신청하더라니까. 심지어 키르키즈스탄 국적인 사람도 있었어. F를 겨우 면하고 D-를 받았어.”

“불쌍하다.”

“그렇지? 짜증나.”

“아니 걔네. 그들은 분명 배운 게 거의 없었을 거야.”


#4 “난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 다른 전공을 졸업하고 돈안되는 일을 한다고 가족들이 실망할 것 같아. 스웨덴에서 바텐더로의 삶은 어땠니? 대우가 좋아?”

“대우는 그저 그래.”

“하지만 넌 매우 기뻐 보여. 일을 좋아하나봐.”

“난 영화를 볼 때 저 상황에 처한 주인공에게 어떤 칵테일이 어울릴까 생각해.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 곁들일 칵테일을 상상하지. 뭔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기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고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나온 삶이 무난한 것일 수 있어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넓은 지구에, 모래알 처럼 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살고 있다는 걸아는 것 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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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말은 너무 흔해서 쓰고 싶진 않지만 아끼기엔 너무 완벽한 순간들이었다. 도장을 다니고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청소를 하다가 시덥잖은 얘기들을 나누고 또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종일 더워했다. 다른것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순간들이었다. 그 순간은 먼 훗날 찬란한 옛 시절이 그리울 때 수시로꺼내보는 자료화면이 될 것이다. 흐뭇하게 추억하는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란 걸 어슴프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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