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서 호떡가게 아르바이트 하기
# 호떡커
나는 도쿄에서 호떡을 굽게 되었다. 2주의 연수기간이 넉넉하게 주어졌지만 얼마나 긴장했는지 밥이 넘어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실 씹지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크림 빵과 모찌롤, 그리고 다양한맛의 우유가 편의점에 널려있어서 하나씩 맛보느라 바빴다.) 하루에 고작 여섯시간 연수를 받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하염없이 길을 걸으며 구경을 하던 평온한 날들이었다. 시부야 역까지 20분이 걸리는 통근길에서는 늘 카레 향기가 진동을 했다. 특유의 향기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코를 킁킁대며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곤 했다.
# 카레가 끓고 있는 동경
돌아보면 자라면서 카레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엄마가 일본어가 쓰여진 상자에서 초콜릿처럼 생긴 노란 고체 카레를 꺼내어 숟가락을 이용해 물에 곱게 개고 계신다면 부모님이 바빠서 식사에 신경쓰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고, 급식에 카레가 나오면 그 날의 반찬은 깍두기와 단무지 등 부실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무살이 되면서 나는 고향을 떠나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와 거의 동시에 자취방 바로 앞의 ‘100시간 끓여 만드는 일본 카레’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그 곳에서 줄곧 일하면서 제 몸보다 서로의 컨디션을 먼저 살피던 좋은 친구들, 자신에게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보다 같이 일하는 알바생이 우선’.이라고 말하던 매니저님과 함께 신나게 일하며 나의 스무살 언저리를 달큰쌉싸래한 강황 향기로 물들여갔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플 때 따끈하게 데워주던 달큰한 카레, 술을 과하게 마시고 속이 쓰릴 때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도와주던 매콤한 카레는 그렇게 어느덧 내 소울푸드가 되었다. 카레 냄새가 가득한 동경의 거리는 내게 가장 편안한 가게에서 쉬는 듯한 포근함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뭉근히 끓여내던 카레 냄비 앞에 서 있던 익숙함으로 내게 위로를 주었다.
향신료에 야채와 고기 등 재료를 넣고 끓여 만든 인도요리 카레는 식민시대에 영국으로 전해져, 일본인 유학생 야마가와 켄지로가 오늘날의 카레라이스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뜨거운 물에 카레를 녹인 후 밥에 얹어 먹는 인스턴트 카레가야마자키 미네지로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관동 지진 때 일본 국민들의 중요한 식료품이 된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쯔유에 카레를 섞은 카레 우동, 단 맛의 부드러운 바몬드카레, 매운 맛의 골든카레, 국물이 자작한 스프카레부터 돈가츠, 멘치카스, 고로케, 햄버거패티 등을 얹어 먹는 토핑 카레에 오믈렛 위에 카레를 얹어 먹는 오므카레까지 일본인의 카레사랑은 계속되어 인도,태국에 이어 세계 3대 카레라고 불리울만큼 전 세계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일본인의 자존심
이어 일본어 학원을 등록하려 했지만 한 분기 등록금을 한 번에 내야 한다고 했다. 다른 곳도 알아봤으나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레벨테스트를 통해 배정된 반에서 예외없이 수업을 들어야하며 시간대와 시간표 역시 배정된 것을 이용해야한다고 했다. 일본의 서비스 정신을 잘못 이해하여 일본인들은 비굴하고 자존심이 낮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독보적인 그들의 서비스는 ‘오모테나시’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정성을 다하여 손님을 다하는 대접을 뜻한다. 일본의 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에 등장하여 성공에 기여한 단어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테나스’는 물건을 가지고 끝까지 완수하고 달성한다는 말에서 파생되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오모테나시는 겉과 속이 없음 즉 겉으로만이 아닌 속마음을 다해 모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들의 정신을 호떡을 구우며 배우고 수련해보고자 했다.
이렇게 학원을 알아보는 데만 해도 “정해진대로 해. 튀려고 하지마. 돈으로 해결하려하지마.” 는 섬 나라 일본인들의 특징과 자존심이 보였다. “그 정도 경험했으면이제 자리잡을 때 되지 않았냐”는 걱정 어린 부모님의 말에 “아직도 매번 이렇게나 다른 새로움이 세상에 존재해서 그럴 수 없어요”라는 대답을 매번 삼키는 이유다.
#담담하고 담대한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 시작한 적도 없었지만 늘 어김없이 당황스럽곤 하다. 시작하기까지 길은 길게 느껴지고 막상 시작하고 보면 예상도 못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발목을 잡는다. 자꾸 스스로를 내치고 또 부딪혀 보지만 쉽게 무뎌지지 않는다.
담담해지는 것과 담대해지는 것은 반대어일까 유사어일까.
나는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넌 아직 어려. 세상 풍파를 덜 겪었어” 라는 말을 나는 자주 듣곤 한다. 들을 때마다 무시당한 것이 분하기도하고 곱씹다보면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하다는 말 같아서 괜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하고 사랑하며 미안해하고 기뻐하는 그대로의 사람이고 싶다. 부족함과 결핍의 상태 속에서 고통과 고민을 거쳐 남들보다 더 많이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면 단맛이 극대화 될 수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 내 특성은 또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격차를 벌여 떨어졌을 때 충격을 크게 하기도했다. 추락할 때면 주변에 온통 “저 지금 기분이 엉망진창이에요”를 광고하고 폐를 끼치게 된다. 언제쯤 연륜, 여유, 관록으로 담대하게 내 길을 걷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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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엉덩이 같은 보드라운 반죽을 손에 쥐고 눈에 보일 정도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개미와 모기 목소리의 콤보 쯤 되는 목소리로손님은 쳐다도 보지 못했다. 호떡 반죽을 철판에 올리기까지 꼬박 3일이걸렸고 스스로 구워 낼 수 있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오마타세시마시타(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스구 메시아가리마스까?(지금 드시나요?)” 와 같은 기본적인 용어를 외워서 혼자 가게를 볼 수 있게 되기까지 2주가 걸렸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극한의 흥분 상태에 도달했고 그 상태는 스스로도 인지가 될 정도여서 꿈 속에서 뜬금없이 이홍기에게 차분해 질 필요가 있다고 혼날 정도였다.
먹고 사는 문제가 되면, 즉 이게 내 직업이 되면 일이 얼마나 고단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 몇 번쯤 몸으로 배웠음에도 시작점에 서면 거의 모든 일이 내 운명, 단 한번의 기회처럼 느껴져 그 행복감에 몸부림치게 된다. 뜨겁고 무거운 고된 일을 하면서도 가게에 일하는 오빠들은 손님들과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호떡을 더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꿀, 꿀치즈, 초코 바나나, 김치 치즈, 앙꼬, 고구마, 단호박, 피자, 콘치즈등 여러가지 맛의 호떡을 구우며 어느 정도 색이 되었을 때 어떤 방향이 위로 가도록 서빙을 해야하는 지를 배웠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라 온 배경이나 상황으로도 그 사람을 얘기할 순 없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 바쁘고 몸이 피곤하고 정말 그럴 기분이 아닐 때도 자신이내세운 신념을 지키고 정성을 쏟는 사람은 나이와 지위와 국적과 외모에 관련없이 나에게 최고의 선생님이 된다. 정성을 들여 예쁘게 호떡을 구우며 내 마음도 조금씩 빚어지고 있는 듯했다.
손님과 나 사이에 놓인 나무판자를 ‘바’라고 부른다. 내가 동경하던 바텐더나 바리스타의 바 대신 나는 호떡 ‘바’에 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내게 더 소중했다. 무려 24년 전 도쿄에 처음 왔다던 중년의 손님께서는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고 짬나는 시간에는 신문을 돌렸다고 한다. 그 말에 깊은 울림을 받아 어떤 날의 밥시간에는 커피로 때운 채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우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도쿄 생활 선배들과 신오오쿠보에서 술을 마시고,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고, 또 일을 하면서 지냈다. 자꾸 재밌는 일들이 눈에 띄었다. 몸의 털을 죄다 뽑아 분신술을 시도할까, 손톱을 깎아 쥐가 뛰어다닐만한 들판에 뿌려볼까 고민하던 동경 가을이었다.
날 알아가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알아가는 건, 남들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아지는 것이다. (부모님이 애써 참고 계시는 나에 대한 실망감에 대한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여전히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잘 살아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은 그대로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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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는 이미 두 달치를 지불했는데 월급은 연수생 신분이라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초기자금 100만원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하루 예산은 350엔 (약 3,500원)으로 책정되었고 그 일은 하노이에서 잡히는 예산과 전혀 다른 문제가 되었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장차 큰 사명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몸을 지치게 하고 그 육체를 굶주리게하고
그 생활을 곤궁케하여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하니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그의 성질을 참게 하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맹자’
어느 순간 또 다시 시작된 고통은 내게 금빛 아우라 대신 흙빛 아우라를 피우게 하였고 나는 맹자 선생님의 말씀을되새기며 내 성질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라고 꾸역꾸역 생각했다. 백지 상태로 태어나 삶의 크고 작은순간들이 일정한 패턴이 없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흔적을 남긴다. 매번 아름다운 흔적만 남길 수 없는일이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 나중에 큰일 난다고 가르치는 제도속에서 난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 아이였다. 깊이나 진지함과는 늘 거리가 멀었지만 끈질기게 일하는 습관이 있었다. 일하는 시간이 늘면서 퇴근 길엔 손목이 시큰해지곤 했지만 일은 역시 후련할 만큼하는 편이 좋았다. 치열하게 쏟아붓던 날들의 끝엔 그 순간의 기록으로 하나 둘 점이 새겨진다. 멀리서 보는 남의 무늬를 예뻐하고 부러워하던 나에게도 언젠가 나만의 ‘사서고생’ 스웩 (swag)이 생길 것이다.
"내가 아는 그는, 아니 내가 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그는 항상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는 모색을 해왔으며,
어느 한 군데에서 쉽게 머무는 법이 없었다.
어쩄거나 무엇을 도모하려는 이 친구의 결심은 얼마나 신기한가!
그 넓은 사막, 음울한데다가 단조로운 모래 언덕을 배회하겠다고 벼르는 허먼멜빌의 모습은 얼마나 엉뚱하면서도 흥미로운가!"
사실 난데없는 유목민 생활에 대한 충동은
이 세상과 우주에 대한 멜빌 특유의 오랜 의문과 관심 때문이었다.
"세상에 진리인 양 통하는 상식을 그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불신 속에서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너무 정직한데다가 용기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
허먼멜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