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를 끼치지 않고 동경에서 살아가기

Tokyo Sharehouse

by 조서형

#1 동경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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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적응하기엔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동포들도 많은 오사카가 나을 거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출국일이 되자 나는 동경으로 이동 중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3년 전, 북경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비행기 속, 거대한 나라의 수도로 향하게 되는 걸 가슴 벅차하던 항구 소녀의 울렁이는 마음이 되살아났다. 일본은 공항 입국소에서 바로 워홀러에게 재류카드를 발급한다. 나 역시 2017년 8월 31일까지 일본에서 맘껏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배울 수 있는 자유를 담은 카드를 큰 어려움 없이 발급받았다. 항공 규정을 약간 넘긴 무게의 배낭과 캐리어를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그제서야 나의 도쿄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미리 집을 알아보고 왔으나 삼 일간은 아무 호텔이나 잡아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떠돌이 쥐 신세도 이쯤되니 이젠 상황 파악도 제법 빨라져 눈 앞에 생고생이 선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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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로 선택했으니 불평할 사람이 없는 것일 뿐, 고통이 덜해지진 않는다. 미리 바꾸어 온 엔화로 편의점에 들러 제일 있어보이는 삼각김밥과 스무디를 사 먹었다. 나중에 힘들다고 징징거리거나 집에 가고 싶다는 등 다른 말하지 않도록 미리 먹여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나리타 공항에서 아사쿠사까지 가는 지하철은 어려웠고 무지막지하게 비쌌다. 역에 내려 캡슐호텔까지 찾아가는 길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땀을 흘렸고나들이 나온 인파에 휩쓸려 소금을 잔뜩 이고 걷는 노새처럼 지쳐버렸다. 눈 앞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에 가방들을 내던지고 싶은 마음을 걸음마다 꾹 참아야 했다.



#2 Shar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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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워킹홀리데이엔 3대 퀘스트가 있다. 재류카드 주소 등록 및 건강보험증 발급, 휴대전화 개통 그리고 은행 계좌발급. 이 절차에 모든 워홀러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일본에 살기 위해서 꼭 받아야 하는 필수 항목인데다 조건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애를 먹는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백만원이라는 최소한의 자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고 돈을 벌어야했다. 입주 전 주어진 3일간 하루에 한 가지씩 세가지 퀘스트를 모두 수행하고자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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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리 알아보고 화상 면접도 보고 예약금까지 지불한 나의 1년 도쿄 거주지는 ‘셰어하우스’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 나오는 주거 방식으로 생각하면 접근하기 쉽다.

셰어하우스란, 여러명이 한 집에 살면서 침대를 제외한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다. 일본의 경우 1980년에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취사, 휴식 등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 마련된 공동주택이 등장하였는데 오늘날 지역별로 여러 지사를 가지고, 운영시스템과 이벤트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셰어하우스로 발전하였다. 대학생활 내내 동기들과 함께 살았던 나는 여러명이 같이 사는 편이 더 익숙했고 도쿄 생활 적응에도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 집세도 절약할 수 있고 일주일에 두 번씩 본사에서 청소도 해 주는 데다가 요리도구나 가구 및 생활 잡화 구입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인터넷이나 TV설치에 애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재류카드에 주소를 등록하려면 거주하는 장소의 시약청에 직접 가야 한다. 일본 영화와 뮤직 비디오에 자주 등장하는 시부야 교차로를 언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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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살게 된다면 당연히 시부야지!’

를 외쳤지만, 소심한 나는 살 곳을 고르는 데도 한참 조건들을 비교하며 스스로 애를 태웠다.어학원과 유학생들이 많은 타카타노바바, 한인타운의 신오쿠보, 쇼핑몰이 많고 교통이 편리한 신주쿠, 오래된 것들과 아기자기함의 시모키타자와 등

‘어디에 살면 재미있을까?’ 대신 ‘어디로 결정해야 덜 후회할까?’

의 고민으로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사실 걱정한 보람도 없이 시부야의 침대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차 있어서 선택권도 없었다. 돌아보면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들은 이렇게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때론 무모하고 위태로운 선택들이 오히려 나를 더 용기낼 수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3 거주지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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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못한 첫 걸림돌이 시작되었다. 하우스 거주자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주 당일까지는 본인에게도 정확한 주소를 알려줄 수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고로 내겐 재류카드에 등록할수 있는 주소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재류카드에 주소가 없으면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없고, 개인 휴대전화가 없으면 계좌가 발급될 수 없으며 신용카드 계좌가 없으면 유심칩 발급이 안된다. 또한 주소와 월급을 받을 계좌 연락할 휴대전화가 없으면 일을 구하는 것도 당연히 안된다. 지끈해진 머리와 텁텁해지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그럭저럭 슬렁슬렁 3일간 동네 구경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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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본사에가서 서약을 하고 이용 안내에 대한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잔금을 지불하고서야 나는 내가 살 곳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장점을 늘어놓는 게 집 소개의 보통이었다면 이번엔 “와이파이 사용량이 많으면 느려질 수 있으며 어떤 랜선을 사용중이고 물 온도나 방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어서 불편할 수 있으며….”로 시작해 계속 이어지는 ‘불편할 수도 있음’ 사항이 계속 소개되었다.

섬나라는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도망갈 데가 없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무난하게 어우러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배웠던 수업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和는 일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남들에게 민폐(메이와꾸)가 가지 않도록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고한다. 막상 하우스에 살면서 보니 인터넷은 한국과 비교해도 손실이 없을 정도로 빨랐고 본사 스태프들이 자주 방문하여 청결과 온도에 신경 써주어 불편한 점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함께 거주하는 일본인 하우스메이트들이 칼같이 규칙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일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있었다.


#4

어느덧 9월이었지만 나는 다시 욕과 비지땀을 쏟으며 짐을 지고 시부야까지 걸어서 교통비160엔(한화 약 1600원)을 아꼈다. 내 사진과 짧은 자기소개를 거실에 끼워놓으니 고생은 기억 속 간데 없고 집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엔 서른명의 사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집은 정갈하고 깨끗했다. 텔레비전에 컴퓨터, 프린트 그리고 세제와 비누, 휴지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빨래를 내가 좋아하는 만큼 바삭하게 널어 말릴 수 있는 옥상도 마음에 들었다. 냉장고를 여니 맥주와 우유 과일등에 모두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사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데 한 달 29,800엔(한화 약 30만원)이라는 동경임을 감안하고도 저렴한 집세였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하우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샤워를 하니 잠이 쏟아졌다. 실컷 잠을 자고 해가 이미 진 다음 눈을 떠 깨달은 사실은 꿀처럼 단 낮잠을 자며 보낸 오늘이 금요일이었으며, 그 뜻은 앞으로 이틀간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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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처리가 느리기로 악명이 높은 시약청에는 월요일 해가 뜨자마자 서둘러 방문했다. 영어와 한글 번역기를 통해 서류를 작성했고 친절하게 절차를밟아주셔서 비교적 쉽게 재류 카드 주소 등록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은행원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매우 친절하지만 은행은 치과만큼이나 내게 긴장되는 공간이다. 일본의 보통 은행은 6개월 이상 거주자에 한해 계좌를 개설해준다. 우체국 은행과 미츠비시MUFJ은행 두 군데에서 예외가 있다는 정보를 얻어 시약청 옆 MUFJ 은행으로 향했다. 여기서 또 나는 발목을 잡히게 된다. 일본은 서명이나지문이 아닌 빨갛게 인주를 쾅쾅 묻혀가며 도장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재류카드에 등록된 주소지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에서만 발급이 가능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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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나간 선진국이지만 오래된 방법을 고집하는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면이 있다. 기회를 놓치더라도 신의를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무역학 수업 시간에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두 번의 헛걸음 끝에 도착한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 에 도착했다. 스미마셍을 연신 거듭하던 은행원 언니에게선 곧 ‘죄송합니다.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께는 계좌를 도와드릴 수없습니다’ 라는 번역기 속 대답만이 돌아왔다. 나는 퀘스트 하나를 수행하지 못한 채, 나중으로 미뤄야했다.

은행에 비하면 휴대폰 번호를 만드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직장과 보증인 번호는 전에 알아봐두었던 학원 번호로,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는 5년 전 행사장에서 발급받았던 이름만 credit card로 대신했다. 그날 오후에 난 거실에 앉아 막무가내로 인터넷을 뒤져 문자를 돌렸다. 일본인들은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일 얘기를 하는것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여 메일이나 서면을 선호한다는 책 속 일본 이야기처럼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공고들도 대부분이 라인이나 메세지를 달라고 써 둔 걸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손으로 쓴 이력서에 사진을 풀로 붙여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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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을 한 세 곳에서 ‘일본어를 전혀 못한다면 무리’라는 대답을 받았고 한국인 점장이 있는 길거리 호떡 상점에서 ‘춥고 덥고 무겁고 힘든 일도 괜찮다면 이력서를 들고오라’ 는 대답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 한자를 종이에 새겨 넣으며 그래도 그럭저럭 해 나가는 모습에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동경에도 가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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