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Shibuya. Working Holiday
# 1
세 달 간 과테말라에서 지냈다. 스스로 들어간 동굴을 더 깊이 파고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달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이어 비자가 만료됨과 거의 동시에 자금이 똑 떨어졌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그리고 원래 내가 있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나는 0이었다. 집도 일도 없었으며 그 사이에 토익점수도 만료되었다. 본가인 포항에 내려가서 철썩거리는 밤 파도를 보고 있다거나 할머니들이 계신 전주에서 밥상 앞에 둘러 앉아 짭조름한 젓갈을 얹은 밥 숟갈을 입안 가득 우물댄다거나 서울의 동생 자취방의 묵은 빨래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한국에서 두 달여간의 시간을 탕진했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매사에 덤벙거리고 감정적인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실패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배낭을 매고 걷는 광막하게 펼쳐진 길이 내겐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따뜻한 소속감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내게도 스며들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길바닥에 던져진 듯 놓여진 나지만, 그럴듯한 성과는 나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할 것이다.
보일 것이다. 보여야 한다. 어느새 그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었다.
딱 1년 전, 나는 커피를 시작했다. 존경하는 스승 밑에서 콩을 갈고, 커피를 내리는 법을 배웠다. 탐스러운 비단같은 고운 스팀을 쳐서 소복하게 카푸치노를 만드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다. 아침 일찍 매장에 나가 청소를 하고 재고를 파악하고 커피향을 킁킁대며 음료를 제조한다. 일과를 마치면 필요한 재료들의 발주를 넣은 다음 새파란 새벽녘이 오면 그제서야 지친 몸을 택시에 실었다. 과로로 아침이면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않을 만큼 퉁퉁 붓기도 했지만 마냥 기쁨의 에너지가 넘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왜 너의 전공과 특기를 살리지 않고서…”
로 말을 시작하면 이내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가 되고 스스로 회의감에 빠지기에 이르렀다.
노력하면 결국에 잘 될 것 이라 억지로 믿으며 기회가 언제 찾아 올 것인지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바이러스에 걸린 것처럼 시름시름거리기 시작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며 속앓이 해 온 나날들이 억울할 만큼 알고보면 사람들은 제 일이 아닌 사건에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의 얘기를 꺼내 놓기는 번거로우니 제 3자의 이야기를 왈거왈부 화두 삼을 뿐일 경우가 더 많다.
다른 졸업생처럼 근사한 직장의 명함에 이름을 박고 꽤 그럴듯한 남자를 만나서 진지한 교재를 하는 대신 나는 원래대로 요란하게 헤매기로 했다.
어른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수 없음은 여전히 억울하겠지만 어쨌든 남들이 내게 보이는 관심은 진지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허기의 원적지는 어디인가.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입되는 욕망을 근사하게 배신할 생각이었다. 어떤 감정은 더 절실해져야한다. 내가 애써서 따 낸 자격증의 유효기간을 계산하거나 남들보다 더 빨리 배울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는가 는 더 이상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나는내가 그리워하는 것을 따라갈 것이다. 플로베르의 “재능은 참다운 인내”라는 말을 아로새긴다.
#2
그 동안은 나는 수시로 이동해야하고 또 걸어다녀야 했기 때문에 가진 것이 늘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애면글면하며 자주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신성하고 신비로운 작업이면서 또 어리석은 일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것이 낯선 공간에서 얼뜨기처럼 두리번거리는 것이 일상이 된다.
말이 통하지 않고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이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팡팡 치며 많은 것에 답답해 하는 동안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또 한 번 못을 박았다.
이내 그것들에 적응한다. 어떻게 먹느냐와 어디서 잘 것이냐의 선택이 모여 시간이 채워진다. 큰 사고 없이 해 냈을 때 그 느낌은 이루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짐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눈물이 비죽비죽 나왔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나 길로 나간다면 하나하나 다시 힘들게 이루어 나가야 될 것이다. 짐이 싸기 싫었다. 짐을 챙기기 싫은건지 다시 내쳐지는 게 싫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편이던 내가 선택한 출국이므로 할 말은 없었다. 잊어버리고 안 챙기는 건 없을까? 분명히 있겠지 또. 중요한 건 아니어야 할 텐데.
나는 어느 새벽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무인 반납기에 반납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일본의 수도인 동경으로 1년간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를 떠나는 길이었다.
워킹홀리데이는 협정 체결 국가 청년들에게 상대국가에서 체류하면서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병행하며 현지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우리나라는 잘 알려진 호주, 캐나다 외에도 뉴질랜드, 일본,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스웨덴, 덴마크, 홍콩, 대만,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포르투갈, 네덜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벨기에, 칠레까지 20개 국과 협정이 맺어져 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해당 대사관, 영사관 또는 이민성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국가별로 요구하는 비자발급 조건, 구비서류, 신청 기간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정보를 꼼꼼히 살펴야한다. 이를테면 관광 취업 비자로서국가에 체류하는 동안 여행과 일을 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임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 받는 일이다. 20대에게만주어지는 도전적인 청춘들을 위한 국가의 선물이다. 내가 지원한 일본 같은 경우 연 4회 1월,4월,7월,10월에 비자 신청을 받고 여덟 가지 서류를 제출 한 뒤 간단한 면접이 이루어진다. 한 해에 10,000명이 선발되며12개월의 비자가 주어진다. 해당 비자는 연장이 불가능하며 인생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있게 된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미지의 땅에서 증명하기 위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