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타운의 호떡 가게를 그만두며 하던 말
마트에 들러 과일을 장바구니에 척 담았다. ‘오. 이 정도로 여유있어 진 거야?’ 그래봐야 귤이나 바나나 같은 비교적 저렴한 것들이었지만 제법 도쿄에 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교통비가 아까워서 서너시간을 걸어다니는 일도 없어졌다. 대신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서 내 시간이라고 부를 것들이 없어졌다. 12월은 일손도 부족하고 손님도 많아 휴무가 없었다. 11월 말부터 1월 초까지 결국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주번이 수업 끝나면 칠판을 지우듯, 마감-정산-설거지 그리고 철판 밀기가 계속 되었다. 차가운 바람 속, 호떡굽기는 고된 일이었다.
좋아하던 셰어 하우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친구와 주택의 작은 방을 빌려 살기로 한 그 과정에서도 나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사소한 것들까지 일일히 붙잡고 고민을 했다.마음 속 우울 상자에서 우울이들을 꺼내어 돌려보고 다시 상처 받으며 허망한 고민들을 했다. 적게는 8시간에서 많게는 16시간까지 일하는 동안 지방, 탄수화물 그리고 극 소량의 단백질. 즉 가게에서 파는 닭강정과 치즈 호떡으로 식사를 때우는 일이 많아졌다. 무거운 몸에게 사과할 겸 편의점에서 샐러드와 요거트를 샀다. 뚜껑을 지이익 뜯어 샐러드에 끼얹는 순간, 유쾌한 탄력을 자랑하며 탱그르르 착지한 것은 우유 푸딩. 우씨. 포장지 글도 제대로 못 읽어서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를 비벼먹는다. 젠장. 결국 집에와서 평소에 먹지도 않던 컵라면에 캔맥주로 삐딱해진 마음을 불량하게 채웠다.
몇 차례 감기를 앓고 나니 호떡에 쏟던 열정을 잃어버린 듯 했다. 라떼아트를 같이 배우던 친구의 전국 대회 수상 소식을 들었다. 한 때 손톱에 커피 가루 좀 묻히고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이제 그만 하면 됐으니 귀국하여 취업 준비를 했으면’ 하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부담스럽고 죄송스러웠다. 과테말라에 다녀와서 응시했던 스페인어 시험에 낙방했다는 메일도 받았다. 근 몇 년간 내가 제대로 한 일은 뭐가 있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기운차게 시작한 일들이 과거로 사라지는 이유는 왜지. 내게 그 일을 더 깊숙히 파고 들 용기가 없어서였다는 결론에 이르는 자아성찰을 밤새 했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은 커녕 시프트를 줄여달라고도 말을 못하는 나였다. 미움받을까 무섭고 미안하니 차라리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선택은 계속 미뤄졌다. 이대로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구석에 부러진 사물함 대신 새 사물함을 배정받고 ‘넌 더이상 쭈구리가 아니야’ 라는 쪽지에 금새 해사해져서는 막상 조잘조잘 호떡을 굽고 있었다. “내가 착해서 그런 말을 잘 못 해.” 라며 해야 할 말을 미루는 동안 호떡을 먹으려는 손님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곧 철판 위에 호떡을 구울 자리가 없었다. 생각은 생각만 낳고 있었다.
연말엔 1년을 정리하는 글을 블로그에 쓰다가 나에게 고마운 사람과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걸 새삼 곱씹게 되었다.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난 사람처럼 난 얼마나 거만했었는지. 크리스마스 캐롤 대신 매장에 전투적인 힙합을 틀어놓곤 했다. 가사들을 곱씹는 동안 음악은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어디로든 가고 있잖아 yeah
죽도록 힘들 때가 있다해도
잘 살고 있잖아
믿잖아 다 괜찮아질 거라는걸
난 믿어 모든 문제는 시간이해결
Trust, nothing lasts forever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야지뭐
정답은 없는 거야 이 세상엔
- Thank you, G2
직접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다보면 우리는 겸손해진다. 인간의 한계를 저절로 알게 된다. 당연하고 쉬운 일 같지만 무거운 것을 조금만 들어도 바로 아파지는 팔과 허리, 가빠오는 숨. 철판 앞이라 따뜻할 것 같았던 겨울의 칼바람 덕에 겸손이 사무쳤다.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 실은 얼마나 노고가 드는 일인지 알 수 있다. 어깨에 심한 담이 걸려 팔을 들어올리기 힘들 지경이 되어서야 억지로 그만두듯 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철판. 철판의 작은 온기에 의지해서 찬바람 속에서 살아남는 일. 호떡의 속이 조금이라도 쏠리면 팍! 하고 설탕이 비져나와 자갈자갈 타오르고 이내 눈물이 핑 고이던 일. 새벽에 쪄 놓은 떡을 뜯어 가게까지 가져오다가 친구랑 한 주먹씩 입에 넣고 우물우물. 각자 매장으로 떠나는 길에 “안녕~오늘도 살아남자!” 하던 인사. 끓어오르기 직전까지 치즈를 바삭하게 굽다가 손님과 함께 “이이 니요이~(좋은 냄새)” 를 외치는 일. 실수로 잘못 구운 호떡을 한 쪽에 숨겨 두었다가 식으면 허겁지겁 가운뎃 부분만 오물거리던 일. 내겐 버거웠던 80kg짜리 반죽통, 철판, 가게 문, 자판기. 그리고 과분하도록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일.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한국으로 돌아가기 몇시간 전까지 나는 열불나게 일했고, 진심으로 좋아하던 호떡가게와 뜨거운 안녕을 날렸다.
한국에서 설을 지내고 나는 홋카이도에 갈 것이다. 축축한 하노이에서 날아올 친구와 함께 눈을 맘껏 보고 삿포로 맥주에 취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나면, 앞으로 어떤 일을 다시 하게 되어도 손에 상처와 굳은살이 늘어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거다. 손목이 시큰하도록 끈질기게 일한 날들을 후회하지 않을 거다. 후련할 정도로 열심히 해냈다는 거니까. 다시 새로운 어떤 일이 와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여전히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갈피를 못 잡은 채, 도쿄의 1부가 이렇게 마무리 지어지고 있었다.
“영원히 널 사랑해"란 말은 사랑에 빠져 이성을 상실한 자들의 유치한 말이니까 금기어처럼 생각했다. 돌아보면 난 언젠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건, 모진 말과 상처를 잔뜩 주고 받은 채 헤어진 사람이건.
추리닝 바람에 늘 추레했던 남자는 내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쉬는 날엔 꼭 영화관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영화를 본다던 유난히 추운 겨울에 만났던 남자는 꼭 상영관 앞에서 셀카를 찍자고 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일에 더 매달리고, 상처받는게 무서워 먼저 상처를 주던 남자는 싸우고 나면 자주 시를 써 주곤 했다.
그 모두를 여전히 난 좋아하고 있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울었던 날을 떠올리면 애틋한 마음이다. 처절하게 많은 기억들을 준 도쿄 한인타운의 호떡 가게도 내게 그렇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