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썩는 게 안무서울 초콜릿을 찾아

북해도행

by 조서형

벅차오르는 울음을 참느라 억지로 이별을 고하는 여고생처럼 우물우물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든 쉐어하우스를 떠나 친구 집으로 짐을 옮겨두고 출국 직전까지 호떡을 구웠다. 지친 채로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귀국할 때 마다 으레 가장 먼저 만나는 동네친구와 맥주를 한 잔 했다. 동생 집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부지런히 친구들을 만났다.




20대 초반에 공모전을 휩쓸던 패기 넘치던 네 명의 친구들은 상을 놓치면 분하게 생각했고 기획, 취재, 촬영, 편집에 열을 올렸었다. 이제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이 좋아했던 건, 지나고 보니 그냥 우리였다. 퇴근 후 가장 늦게 합류한 잘 나가는 은행원이 된 그는 자신의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늘어놓았다. 소주 몇 잔에 이내 “솔직히, 내가 너무 힘들어.” 와“너희들도 어서 연말정산 해라”를 반복하다 고꾸라졌다.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를 불러내고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등 온갖 진상을 부리다가 결국 집에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다음 날 저녁엔 하노이에서 같이 생활하던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그런 사진은 뭐하러찍냐.” “SNS에 그런 것 좀 올리지 마라.” “한국이 겨울에 얼마나 추운데 옷이 그게 뭐냐.” “옷 하나 줄까?” 등잔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익숙하고 달았다. 그들은 분명 참견 많은 자칭 ‘꼰대’ 아저씨들이 되었지만 거리감이 느껴질까 만남을 주저했던 나에게 가장 따뜻한 사랑스러운 아저씨들이었다. 학교 주변에서 국물 하나에 술을 마시다가 자취방 하나에 우르르 몰려들어서 자던 때가 있었다. 내리는 눈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는 우산을 나눠쓰고 비척비척 어두운 골목에 몇 번씩 주저앉아가며 집까지 바래다 주는 대신 택시 또는 대리운전 기사님께서 안전히 내려주셨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까치집을 지고, 화장이 덜 지워진 채로 아침엔 대학 선배를 만났다. 초코파이에 초를 꽂아 “늦어서 미안해요. 생일 축하해요” 라며 내미는 내게 그는 언제나처럼 순댓국 정식을 사 줬다. 오래되면 딱딱해진다며 순대를 내 국물에 퐁당퐁당 넣어줬다.

멕시코 몬테레이, 캐나다 벤쿠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각각 일하고 있는 대학 동기들을 종로에서 만났다. 타지라는 부담과 긴장 속에서 고생하는 우린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한국에서 차분히 경력을 쌓아가는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쓴 웃음을 나누다가 다시 동아리를 고르느라 고민하던 지난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우리의 선택 범위가 지구 전체로, 그 규모가 커졌다며 껄껄웃고 헤어졌다.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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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전주에서 설을 지냈다. 외할머니가 직접 고으신 도토리묵을 외삼촌이 30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첫 월급으로 사 왔다는 묵 칼로 예쁘게 잘라 접시에 얹어 내어 놓는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양념장을 촉촉 올려 두 개씩 집어 먹는다. “그래서 아가, 어디에 있다고?” “할머니, 동경이요. 일본의 수도 동경. ““잘혔다. 큰 도시로 가서. 집이 비싸고 살기에사나워도 정신 바짝 차리고 성공해서 오니라.”



포항의 집 앞마당에는겨울이라 시든 꽃만 남아있었지만 그대로 해사했다. 식탁에는 찐 고구마와 감자, 먹기좋게 익은 바나나가 얼마든지 있었고 아침에 아빠가 내려마신 보이차가 남아있었다. 엄마는 냉동실에 아껴두신갈비에 전복과 버섯 등을 구워내셨고 시금치 무침과 멍게 등을 곁들여 통일성은 없지만 진귀한 저녁을 도란도란 먹었다. 하도 읽어 대사와 표정까지 다 외워버린 천계영 작가의 만화책을 동생과 소파에 뒤엉켜 읽으며 깔깔댔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일년만에 내려온 둘째 딸과 언제 올지 모르지만 예민하게 굴까봐 물어보기도 어려운 첫째딸이지만 함께 있어 기분이 좋으셨는지 술을 좀처럼 안하시는 아버지는 찬장에서 와인을 내 오셨다.

겨울 내 혹사당한 몸은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담이 걸려 움직이기 힘들게 되었다. 한의원에 누워 손가락만한 침을 발등과팔꿈치에 꽂은 채 일주일을 치료받아야 했다. 약국에서 받아 온 약은 뜻밖에도 가루약이었다. 입천장에 반죽처럼 늘러붙는 못견디게 쓴 약을 인상을 써가면서지만 그럭저럭 넘겼다. 나도 제법 어른이 되어있었다.

“이제 다음은 어디야?” 라는 질문을 익숙하게 받지만 나는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집순이다. 한국이 싫어 해외를 전전하는 것 역시 아니다. 나도 익숙하게 어플을 켜서 버스 시간을 맞춰 정류장에 서 있고, 지나가는 사람이 “오비스홀 어떻게 가요?” 물어보면 자신있게 대답해주고, 카드를 잃어버려도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구는 대신 은행에 가서 손쉽게 재발급 받는 것이 좋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휴가를 함께 가고 친구들 생일에 맞춰 축하를 해 주고, 좋아하는 언니 오빠들을 억지로 불러내서는 헛소리나 늘어놓는 게 즐겁다. 건축학도인 동생이 새롭게 진행 중인 ‘졸혼 부부의 공간’ 프로젝트의 설명을 듣고, 한 달 뒤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할 친구의 사무실을 구경가고, 출산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친구에게 동화책을 선물하며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걸 이대로 옆에서 봐주고 응원하고 싶었다. 다시 매야 할 배낭이 무거운 짐처럼 부담스럽게느껴졌다.


물건이 거의 남지않은 내 방엔 유물처럼 느껴지는 잡동사니들이 뒹굴었다. 타일굽기 체험 날, 남들처럼 꽃과 강아지를 그리는 대신 초등학생이던 서형이는 산에 힘겹게 올라가는 사람을 그렸다. 그 옆엔 터프하게 ‘인생은 봐주는 게 없어!’ 글씨를 휘갈겨 써 넣었다. 20년 전 그림을 보며, 대체 어린이 서형이는 어떤 꿈을 꿨던 걸까. 지금 나는 그리고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그러나 역시 이 모습으로 게으르게 지낼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금새 너절하게 타성에 빠져들고 말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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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행 비행기가 있었다. 하노이에서 방콕- 도쿄- 삿포로의 험난한 노선을 타고 날 보러 올 친구도 있었다. 언제나처럼 마지막까지 여유를 부리다가 매우 급하게 공항으로 나섰고 도쿄에서 윤을 만나 하룻밤을 샌 다음 삿포로로 떠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서서히 얼음에 뒤덮히고, 우리를 마중 나온 친구 차에 올라탔다. 얼굴형이 콩과 같아서 ‘마메’라고 불리우는 친구는 우리에게 신선한 초밥을 잔뜩 먹인 다음 눈이 쌓인 삿포로 시내를 돌아 아버지 미용실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GYZE란 간판을 내건 부모님의 가게엔 온통 메탈 밴드 GYZE의 보컬과 드러머로 활동 중인 두 아들의 포스터로 가득했다.

우린 그 건물 2층에 되는대로 짐을 풀어 헤쳤다. 우유, 푸딩, 아이스크림, 요거트등 북해도의 맛좋은 유제품들과 깔루아 밀크, 맥주, 매실주, 와인으로 이어지는 술 그리고 도시락들을 마트에서 잔뜩 사 왔다. 히터를아무리 틀어도 몸이 움츠러드는 삿포로의 겨울이었다. 밖은 쉬지 않고 눈이 내렸고 우리는 강아지처럼 창가에 앉아 음료들을 홀짝이며 하염없이 눈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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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이 일본에 와서, 하던 아르바이트마저 그만둔 나와, 동업자와의 트러블로 마음고생을 한 윤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변 사람들의 “자유로워서 좋겠다. 부럽다.” 는 말마저 불편하게 느껴지는 우리였다. 우리가 얻어낸 작은 것들이 얼마나 큰 댓가 뒤에 치러진 것들인지 자신에게 말하듯 서로에게 투정을 부렸다. 공대생인 그녀가 외국 친구들과 살며 영어를 가르치게 되기까지, 외국어공부는 재밌는데 외국인과 이야기를 하면 비웃음을 살까 무서워서 평생 수업만 들을 순 없을까 생각하던 내가 내색않고 필요한 외국어로 입을 열게 되기까지. 어려운 가정환경이나 남들과 다른 상황에서도 우리는 감자튀김을 튀기거나 카레를 휘저어가면서 기특하게도 그 모든걸 안고 왔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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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이란책에는 이빨이 썩을까봐 초콜릿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나온다. 우리는 실패가 겁이 난다. 겁이라는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욕망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렬한 욕망의 대상을 만나는 것 뿐이라고한다. 어설픈 대상으로는 미래의 실패가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모든 희망과 절망을 염두에 둘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아주 매력적인 대상을 만나야 한다. 맛이 너무나 훌륭한 초콜릿을 만나면 이빨이 썩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되는 것처럼. 우린 그 것을 만나기 위해 늘 노력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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