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츠크 바람열차 자유석에 앉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눈을 보러 삿포로의 겨울에 왔다면, 눈을 실컷 봐야지!”
밤새 히터 바람에 바삭하게 마른 채로,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들로 느즈막한 아침을 먹은 우리는 호기로웠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눈 쌓인 길을 밟고 운동화는 얼어붙고 장갑을 낀 손이 시려워서 카메라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생전 이렇게 많은 눈을 한꺼번에 보는 건 처음이라 마냥 달가웠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라운지에서 세 가지 맥주와 북해도 산 치즈 세트를 주문하여 털어넣었다. 적당히 기분 좋아진 우리는 이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는 차가운 날씨 속 얼어붙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나보다. 휴대폰이 꺼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는 머릿 속에 숙소 위치나, 오늘 저녁을 먹기로한 라멘 거리의 방향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만든 편리함에 결국 우리가 갇혀 멸망할 날이 올 거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정처없이 눈 속을 헤맸고 잠시라도 몸과 휴대폰을 덥힐 수 있을 곳을 찾았다.
방향도 모른 채 한참을 언 발로 걷다가 스스키노 라멘의 거리에서 ‘맛의 화룡’ 이란 이름을 한 가게에 들어섰다. 길게 선 줄과 연신 내쫓기듯 하는 손님들 사이에서 우리는 콧물을 훔치며 맛도 모르고 라멘 한 그릇을 들이켰다.
북해도 여행을 위한 사전 정보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모두가 가는 곳은 싫어. 사람이 많을 테니까” 정도. 결국 북해도 여행자 대부분이 찾는 코스를 밟게 된 것은 그렇게 하는 편이 가장 저렴하고 이동 루트가 무난해서였다. 회색빛 항구와 길게 늘어지다 못해 석주가 된 고드름, 상어 입 속같은 처마와 오래된 공장들을 지나, 단단히 잡고 들어 올리면 눈 속에 파묻힌 루돌프를 구해낼 수 있지않을까 싶은 머리만 내민 갈색 덤불들 곁도 걸었다. 매 끼니 라멘을 먹고 후식으로는 드립커피를 마셨다. 의무감에 간 케이크 전문점 르타오나 오르골당, 오타루 얼음 축제에서 우리는 전화를 잘 못 건 사람처럼 서둘러 빠져나오기 바빴다. 이어 열린 삿포로 눈 축제에서도 인파에 휩쓸려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크고 차가운 쇼핑몰에 들어온 배낭여행자 신세였다. 커다란 생선을 얼음 속에 통째로 얼린 작품이나 열정적으로 눈 조각을 만드는 중인 탄탄한 작가들을 볼 때 잠깐 눈이 반짝였던가.
맛집을 찾아다니길 반 쯤 내려놓고, 명소도 거부했다. 아니 애초에 너무 춥고 눈보라가 심했고 우리의 열정은 미적지근했다. 우린 밤이면 무겁고 불편한 영화들을 골라 봤고 아침엔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가져 온 책을 꼭꼭 씹어 읽고 게으르게 누워 좋았던 구절들을 나눴다. 편의점에서 산 음식들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었고 어느덧 우리에겐 마지막 하루가 남았다. 일정도 하나가 남았다. 애초에 이 곳에 온 목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유빙을 보기 위해 오호츠크 바람열차를 탔다.
아바시리까지 이동시간과 요금은 만만치 않았다. 꼭 봐야겠다는 목적이 없었다면 그네를 타면서도 멀미를 하는, 삼 천원이 아까워서 두 시간을 걷는 소금쟁이 서형이에게 평생 없을 구경이었다.‘오호츠크’와‘바람열차’ 라는 네이밍에 홀려 우린 왕복 열 한 시간의 긴 여정을 선택했다. 그림을 그리고 메모를 하며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과는 달리, 목청 좋은 중국인 가족과 비릿한 히터 바람에 난 끝없는 멀미 속에 갇혀버렸다. 창 밖으로 보이던 눈 덮인 자연의 거룩함도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체가 골동품인 듯한 ‘민슈쿠 램프’에서 그 날 밤 짐을 풀었다. 밤새 작은 난로를 껐다 켰다 반복하며 더위와 추위에 번갈아가며 잠을 설쳤다.아바시리는 세계에서도 유빙을 볼 수 있는 최남단이다. 간단히 생각해보자면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가장 닿기 쉽고 그나마 따뜻한 기온에서 바닷물이 얼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 년 중 단 지금, 2월에만 그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는것이다. 유빙 크루즈인 오로라호는 지나친 눈보라나에는 출항하지 않으며 출발 직전에도 상황에 따라 환불될 수 있다. 또 날씨가 따뜻하여 유빙이 녹았을 때는 경로를 바꾸어 다른 섬으로 가는 유람선으로 바뀌기도한다. 미리 예매를 해 두지 않은 우리는 만선이어서 탑승하지 못할 경우의 수도 존재했다. 잠이 덜 깨 얼떨떨 한 채로 또 얼음 속을 걸어 아바시리 항구에 도착했다.
왠지 모르지만 난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 모든 가능성에도 우리는 가자마자 표를 끊고 오로라호에 올라탔다. 지붕위에 사람 키 만큼 높게 쌓인 채 얼어 붙은 눈더미를 보며 문과 출신인 나는 매번 사진을 찍고 그럴듯한 표현을 생각해내느라 좋아했고, 공대 출신인 친구는 깎여진 눈더미의 기울기를 가늠하여 바람의 방향을 알아냈다. 끝없이 외로움을 타면서도 남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부담스러워하지만 분명히 같이 하는 여정에는 이런 점이 있다. 두 배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유빙은 시베리아의 아무르강에서 들어오는 민물이 바닷물의 염도를 낮춰 생성되는 것이다. 셔버트처럼 얼은 물은 파도와 바람에 오호츠크해 바닷가로 모이게 되며 그것이 지금 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 있는것이다. 우리의 오로라 선은 얼음 덩어리를 배의 무게로 쇄빙하는 방식이며 드릴로 얼음을 깨부수며 진행하는 쇄빙선과는 또 다른 원리이다. 정말로 배에선 유빙이 갈라지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며 얼음에 부딪히는 충격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살얼음처럼 보이는 유빙은 사실은 내 키만큼이나 두꺼운 1미터 50센치미터나 되기에 배의 아랫부분을 충분히 무겁게 만들어야했을 것이라고 했다. 유빙에는 시베리아의 플랑크톤이 옮겨 오기 때문에 봄이 되면 그를 중심으로 어장이 풍부해진다. 희소종의 동식물들의 생태계는 그렇게 오호츠크해에서 화려해지는 것이다. 유빙 위에서 새끼를 키우는 바다표범, 수리 새, 북여우 등을 운이 좋으면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함께, 그 차가운 날들을 지나서 저 넘어 보이는 육지를 뒤로.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바다는 이토록 믿음직스럽게 얼었으니. 유빙과, 너와 나, 우린 괜찮을걸세.’
그녀의 설명과 더불어 눈 앞에 펼쳐지는 감동에 휩싸여 우리는 이런 말도 안되는 시를 지어내기도 했다. 항구로 되돌아 올 수록 더 얇아지는 유빙에 아쉬움을 표하자, “해류의 흐름을 봤을 때, 이 중 일부는 시베리아로 돌아가 겨울 내 얼어붙어서 내년 봄에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될거야” 라고 말하는 친구가 당장 얼음 위로 뛰어내려도 좋을 것 같은 이런 날에 내 곁에 있었다.
콧 끝에 맺힌 콧물을 훔치며 아직도 깨지지 않은 얼얼한 감동을 즐겼다. 걸어서 역에 도착하여 규동을 허겁지겁 삼키고서 삿포로로 돌아갈 기차를 예매했다. 우리는 몇 만원을 아끼는 대신 따로 좌석이 주어지지 않는 ‘Unreserved Seat(비예약석)‘ 에 탑승했다. 한자로 ‘自由席(자유석)’라 풀이되어 있었다. 정해지지 않은 우리의 좌석은 언제든지 주인이 오면 비켜줘야 하는 불안함이었고 서서 풍경을 바라봐야 하는 불편함이었으나 또한 이름 그대로 자유이기도 했다.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지만, 마음 편히 짐을 불리고 늘어놓아도 좋을 집이 없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였다.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바람의 힘으로 공중에 떠서 달리는 호버크래프트는 임계점까지의 자극이 없으면 작동되지 않는다. 작동되는 순간에는 바다위에서 걷잡을 수 없는 속도와 위력을 자랑하게 된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한지도 1년이나 지나버린, 가끔씩 조급해지고 거의 늘 불안한 우리의 길에서 보내는 하루들도 이와 같길 바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한 경험치들이 쌓여 함부로 흉내내기 힘든 지혜와 실력이 되어 시원하게 바다를 가를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