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일정을 동행한 사야는 길바닥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르바이트 중인 아마추어 복싱 선수와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가 일하는 굴 요리집 앞에서 일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우리 셋은 처음 만나는 사이라는 것도 잊은 채 늦은 시간까지 침사추이 거리를 걸었다. ‘홍콩 스낵’ 이란 이름의 아무 가게에서 짜릿한 향신료에 콧물을 쏟아가며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토요일에 그와 그의 친구들이 (대학생이었다) 수업이 없는 날 카메라를 매고 하이킹을 가기로 약속을 했다.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사람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진을 찍고자 한다면 자주 카메라를 꺼내 들고 나가고 자주 셔터를 누르고 더 자주 자신이 담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남들이 못 가는 곳과 못 먹는 음식을 인증하는 듯한 사진도 나쁘지 않지만 남들이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포착하여 빛나게 하는 사람이 진짜 라고 생각한다.
“So far, so good.”
이제 겨우 첫 날이었지만 새벽까지 떠들고 맥주까지 한 잔 걸치자 허름하고 좁은 숙소에 눕기에 딱 좋은 컨디션이 만들어졌다. 낯선 곳에서 우리의 감각은 활짝 열렸고 모든 걸 받아들이느라 지쳐 이내 골아 떨여졌다. 머리도 덜 말린 채 잠이 들어서 다음 날 아침 난 엄마가 물려주신 치마를 머리에 둘러 맸다. 그럴듯한 터번이 되었다. 이 날 사야는 이자카야 앞치마 세 개를 바느질해서 만든 치마를 입었다. 처음 만나던 몇 달 전 보다 살이 쪘지만 허벅지의 튼 살을 문지르며 이게 다 일본 편의점 푸딩 때문이라고 호탕하게 웃는 그녀는 귀여웠다.
아침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뭐 먹을래?” “빙수” 아침으로 빙수를 먹는다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밖은 더워지기 시작했고 우린 많은 수분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에. 에그타르트를 사 들고 빙수를 먹으러 갔다. 내 머리 위 얹은 노오란 터번과 잘 어울리는 음식 선택들이었다.
오늘 아침은 특별한 날이었다. 우리를 홍콩까지 오게 한 아트바젤(Art Basel)이 열리는 날이다. 아트 바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 아트 페어로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되었다. 동시대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약 4,000명의 예술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를테면 예술계의 올림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화랑과 예술가, 컬렉터 및 화상들이 만나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인 동시에 현재 미술계의 흐름과 최신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이번에 ‘2017 아트 바젤 인 홍콩’ 을 참여하게 되었다. 동서양의 관문으로 국제 상업, 무역 도시 역할을 해 온 홍콩에서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화랑들이 대거 참여하는 아트바젤은 총 3일간 이어지며 우리는 그 첫째날을 마주하고 있었다.
전시를 하루종일 즐기고 아이스카푸치노가 유명한 ‘오모테산도 커피’에 들러 한 잔 할 생각이었다. 미리 예매를 했음에도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건물 밖까지 줄을 서야 했고 화장실 한 번 가기 힘들었다. 그 난리통 속에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나는 휴대폰을 또 잃어버렸다.
한 번쯤 어디서 본 듯한 중화권 연예인들과 유명 아티스트들이 (사야는 몇 번이나 내 뒤로 소리를 지르며 숨으며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감상에 잠겨 있었고 여기저기서 예술가들이 서로 명함을 나누며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또한 예술을 사랑하는 세계 각지에서 온 멋쟁이들을 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메모장이라도 들고 왔어야했다. 많은 영감과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했고 휴대폰에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에만 너무 익숙해진 터였다. 시간이 지나자 모든 작품앞에서 탄성을 지르고 감격해하던 일러스트레이터 사야도 나도 그 감동에 지쳐갔다. 이렇게까지 큰 컨벤션 센터라니, 반칙임이 분명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예술만 받아먹었다. 전시장을 빠져나와 허겁지겁 여러가지 내장을 섞어 얹은 국수를 마시듯 먹고 야시장으로 건너갔다. 몽콕 레이디스 마켓이라고 불리우는 곳이었다.
시장을 돌다가 사야를 기억하는 사장님을 만났다. 사야는 도쿄의 구제옷 거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바로 지난 주, 홍콩의 사장님은 사야네 가게에서 100만원 어치를 사 갔던 터다. 일본 구제 가게에서 일하는 170센티미터의 타투투성이 금발 사야를 사장님은 기억 못할 리 없었고 직접 옷 백 몇십벌을 계산했던 사야 역시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꽤나 큰 규모의 시장을 구석구석 돌면서 나는 1리터 짜리 스무디를 사 마셨고 사야는 보이는 족족 오징어 꼬치를 사 먹었다. “I’m excited to get a next squid(다음 오징어 사먹을 일이 너무 기대돼)”
새로운 기회에 대해 늘 열어두길 좋아해서 여행할 기회도 많았지만 이런 친구는 또 처음. 부지런히 주변 사람 및 생물들에게 “하이~, 요!” 등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셋쨋날 아침 딤섬집에서는 주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로부터 맛있는 딤섬과 덜 맛있는 딤섬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딤딤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게에서 아침을 먹었다. 한 판에 꼭 세 개씩 나오는 딤섬을 보며 여권문제로 일본에 그대로 놓여진 마리아를 떠올렸다. 마리아가 있었다면 우린 더 많은 종류의 딤섬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우린 정말 많은 딤섬을 먹었고 목구멍까지 차올라서야 나올 수 있었다. 사야는 몇 달 전부터 “홍콩에 가면 절대로 적당히 먹지 않겠어” 를 입버릇 처럼 말하고 다니던 참이었다. 공원을 산책하는 내내 아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저씨들께 살갑게 말을 건내는 사야 덕에 여정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나는 더 많이 웃었다.
3일권 아트바젤 티켓을 구하지 못한 터라 우린 이제 스스로 놀 거리를 찾아야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추천받은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갔다. 트램이 빽빽하게 사람들을 싣고 올라간 정상에는 괴상한 쇼핑몰이 있었고 우리는 투덜거리며 해가 질 때까지 한참을 애꿎은 쇼핑몰 내부를 돌아다녔다. 해가 지고 빌딩의 불들이 죄다 켜지자마자 우리는 잠깐 야경을 눈에 담고서 이 정도면 되었다며 질색하고 뛰어 내려왔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온 우리는 토끼를 쫓는 사냥꾼처럼 뛰어 침사추이까지 도착했다. 아무 가게에 들어가서 각자 음식을 2개씩 시켰고 대형 녹차를 주문하여 삼키듯이 음식을 먹어치웠다. “진짜 못하겠어” 라며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 마다 사야는 눈에 불을 켜고 음식을 다시 쥐어주었다. 배가 부른 줄은 알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니 아찔하게 판단력이 흐려질 지경이었다. 그대로 우리는 다리가 휘청인다며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홍콩 쇼핑의 중심인 침사추이에서 마사지를 받은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지만 (가지고 나온 돈의 전부를 쏟아부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저 땐 다른 수가 없었다. 카페인에 엄청나게 약한 사야는 이 날 마신 녹차의 후유증과 좋은 마사지를 받고 채운 에너지에 이 날도 새벽까지 동네를 뛰어다녀야했다. 길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에게 이어폰을 나누어 달라하고 페이스북 주소를 교환하는 등 사야와 홍콩의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I’m excited to go to bed! (자러 갈 일이 너무 기대돼)” 란 말이 나오기 전까지 뒤따라 껄껄 웃으며 산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홍콩의 둘째밤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나오자 머리가 덥수룩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많은 문제에 해당하는 얘기기도 하지만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자르는 편이 낫다. 어차피 머리를 자를까? 라고 계속 고민하며 시간을 보낼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길 모퉁이에 가장 처음 보이는 미용실에 들어갔다.
" 불안해...괜한 선택인가..."
영어와 중국어로 소통이 거의 안되며 내가 홍콩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불안했다.
" 니 머리 좋았지만, 니가 자르고 싶었잖아! 괜찮을거야. 왜 그래"
" ...헤어 디자이너가...대머리야..."
" 대머리? 대머리라니. 그냥 대머리가 아니야.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대머리야. 민 흔적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