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asel in Hongkong 2

예술인들의 파티장에서

by 조서형

Hong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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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의 길” 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짧은 앞머리와 목 위로 껑충하게 올라간 깍아지른 칼단발이 되었다. 친구 사야가 기다리느라 심심할까 걱정했던 내 생각은 기우였다. 그녀는 그 곳의 헤어디자이너들의 머리를 땋아주며 자신의 몸에 새겨진 타투의 뜻을 설명해주며 넉살을 떨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1/5가격에 머리를 새로한 산뜻한 기분으로 우리는 한방차를 사 마시고 남은 돈을 다 털어 게 요리도 사 먹었다. 몽콕 시장까지 한시간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쇼핑몰과 재래시장이 묘하게 콜라보레이션 된 도시를 우린 먹고 마시고 또 걸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도 이 도시에선 걱정할 것이 없다. 어딜가나 거대한 쇼핑센터가 최신식 화장실을 누구에게나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방차를 두 병씩이나 사 마신 우리는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눈 앞에 보이는 ‘랭함 플레이스’라는 이름의 건물로 들어갔다. 1층엔 화장실이 없으니 2층으로 가라는 유창한 안내원의 영어설명에 “돈만 있으면 참 살기 편한 도시생활이야” 라는 수다와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했다. 한참을 올라갔다. “봐바. 진짜 길어. 인증샷 찍자” 아래를 내려보고서야 7층까지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했단 걸 알게 된 우린 셀카를 찍을 셈이었다. 그리고 덜컹. 끔찍한 소리를 내며 멈춘 계단은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챙기기까지 1초, 옆에 있던 친구는 그 전에 이미 중력을 거슬러 계단을 밟아 올라갔고 내 눈 앞엔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계단 앞에 쌓여있었다. 비상 상황으로 에스컬레이터는 정지되었고 난 다시 바닥을 밟을 수 있었지만 눈 앞엔 경찰과 소방관 그리고 다리나 머리가 찢겨 피를 흘리는 열댓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끔찍한 광경에 놀란 가슴에 앉아서 울던 나는 부상자를 제외하고 안전선 밖으로 내보내는 통에 쫓겨났다. 어지럽고 아득하고 끊임없이 무서웠다. 위험을 감지한 순간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탈출한 유일한 사야와 아랫층에 내려진 나는 세 시간동안이나 서로를 찾을 수 없었다. 미국과 한국의 교육, 세월호에 갇힌 채 바다로 가라앉았던 아이들, 거대자본과 도시, 피해자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대처와 밀려드는 기자들. 난 어떤 세상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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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요청에 시달리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친구를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층의 인포메이션엔 일러스트레이터인 사야가 그려둔 내 얼굴과 인적사항이 붙어있었다. 시간대별로 장소를 적어둔 그녀의 마지막 쪽지는 일곱시에 숙소에서 만나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로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에그타르트를 욱여넣고 있는 사야를 볼 수 있었다. 울고불고 부둥켜 안으며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웃다가 유투버로도 활동중인 그녀는 카메라를 꺼내 대뜸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 날 사고의 희생자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무사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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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첫날 밤, 길거리에서 만났던 앵거스와 다시 만나 우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두서없이 이야기하고 밥을 먹었다. 이 날 앵거스의 사진가 친구들과 하기로 한 야간 산행은 여전히 겁먹은 우리 때문에 취소되었지만 그들의 대학 옥상에서 그 시간을 대신하였다. 필름 카메라로 따뜻한 일상 사진을 담는 또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장소들에서 비현실적인 사진을 찍는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앵거스의 단짝 친구들이 모여 앉았다. 예술가들을 동경하지만 무역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나는 내내 그들의 작품과 학교생활이 얼마나 멋져보이는지 추켜세웠다. “경제학이야 말로 멋진 공부라고 생각해. 인생의 가치가 돈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하는 학문이야. 선택엔 포기가 뒤따른다는 진리를 알려주기도 하지.” 사진 작가로 활동하는 광고 디자인 학부생인 친구는 내게 이런말을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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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추락 사건으로 더 생각이 많아져버린 여섯 명이 된 홍콩의 청춘들은 덴젤 커리의 랩을 들으며 인생얘기로 마지막 밤을 꼬박 새웠다. 일만 하느라 지친 우리는 맘껏 놀고 먹고 웃으며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할 생각이었지만, 이야기는 끊임없이 대도시의 안전문제와 도시에서의 삶과 자본주의와 그 속에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이어져나갔다.


“정장을 입고 남이 시키는 일을 영문도 모른 채 수동적으로 하며 살고 싶지 않아. 매일이 배움의 기쁨과 노동의 기쁨으로 가득찬, 재밌는 인생을 살고 싶어.“

“재미라. 재미가 뭘까? 관심과 열정을 일으키는 어떤 사건이 우리를 사로잡았을 때 누리게 되는 심리적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강제나 필요의 압박에서 벗어난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한 놀이에서 나오는 쾌락이야. 주인이 되어야 해.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가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노동자를 위한 체계보다 자본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야. 자본가의 세계는 언제나 넓고 할 일이 많아.”

“평생 재미있고 싶은 마음 자체에서 난 이 시대의 문제를 찾고 싶어. 조금도 따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 사회는 휴대폰을 찾거나 컴퓨터 전원을 켜지. 첨단기술이 주는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버린 재미중독 사회야. 테크놀로지의 속도가 빨라질 수록 시간은 더 빨라지고 기계 시스템처럼 되어버린 사회는 정신없이 돌아갈 거야.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 자본, 개인들은 무자비하게 도태되지. 그로인한 무력감은 피로를 낳고 사회로부터 퇴각하여 다시 능동적인 재미를 찾게 되는 일만 남아. 어떤 일을 해야 재미있을까 보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따분하고 지루한 소설이 세계 명작으로 남는 경우가 많잖아. 재미없다고 해서 나쁜 소설이 될 수는 없어. 마찬가지로 가치가 없다고해도 재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문제는 없어.“

“난 여기서 가장 나이가 많지만 고작 스물 네 살이야. 어떤 일이 나와 사회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해. 하지만 늘 비자 걱정을 하고 있어. 현실과 꿈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기분이야. 난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있는 일도 너무 많아.”

“난 내가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야기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만 여러가지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림도 그리고 동영상도 만들고 또 빈티지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말이야. 기발한 아이디어는 결코 저절로 나오지 않아. 아이디어를 채우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금새 바닥이 나기 마련이지. 사진을 찍어두거나 메모를 해두며 끊임없이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해. 이게 인간인 나와 그 모임인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 “


다른 견해들과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분명 머리가 비워지진 않았다. 나를 돌아보게 되는 불편한 얘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더 많이 고민하고, 더 깊이 생각하며 보낸 밤은 향기를 남긴다. 좋은 세상이란 어떤 것이고 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에 대해 하는 고민은 늘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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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딤섬을 먹고 비가 내려 촉촉해진 홍콩을 떠났다. 사야도 나도 일상으로 돌아왔고 다시 도쿄였다. 100년이 넘었다는 돈가쓰 가게에서 사야와 바삭하게 튀겨진 고기를 씹었다. 그 어떤 청년보다 빛나는 눈을 가지고 주문을 받자마자 계란과 튀김옷을 입혀 정성스럽게 기름에 넣고 있는 허리가 다 굽은 주인을 보았다. 내가 살 세상엔 수명이 더 늘어날 것이고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더욱 없어질 것이다. 대신 나를 찾고 직업을 찾아야 한다. 때론 다리와 허리가 아프고 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명세와 돈을 얻어도 책임감을 다 해야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곧 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기획자라는 옷은 어떨까. 기획의 범위는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을 하고 있는 기획자들의 목소리도 매우 다양하다.각 직업군으로 들어가 보면 기획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영역에서 적용된다. 경영, 개발, 제작, 설계, 디자인, 마케팅, 영업, 홍보, 구매 등 흔히 부서로 구분하는 여러 다른 직무에도 엄밀하게는 기획 업무가 포함되어 있다. 즉 어느 분야든 기획자가 존재한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창의성과 실행력으로 풀어내기에 기획자는 꽤나 그럴듯했다. ‘무역왕’ 이라는 꿈을 열 살 때부터 가져온 나지만, 기획이라는 직무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같은 꿈을 이루어 가는 기분일 것이다. 도쿄에서 내게 펼쳐지는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넓어질 수 있도록 나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JLPT N1 시험까지 4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생각해보면 마을을 벗어나 다른 중학교에 가는 것 정도는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닐지 모르지만, 아무튼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는 사람은 외롭고도 씩씩해서 난 보기 좋아"

@어제의 신, 니시카와 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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