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취준생의 지질함이란
일본에 일자리 많다던데?
만만할 리가 없었다. 취업이라 함은 탄생, 대입에 이어 결혼만큼이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지 않은가. 내 일본어 실력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하지 못하는 사람만큼이나 머뭇거리느라 느릿느릿하고 답답했다. 일상 대화에서도 이런 수준인데 돈을 걸고 일하는 회사에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세요.’ 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내가 도쿄에서 꽤 괜찮은 월급을 받고 꽤 그럴듯하게 실력을 인정받으며 꽤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대단한 기술의 소유자도, 영혼을 울리는 아티스트도 아닌 내가?
연신 뉴스에 오르내리는 소식은 일본의 구인난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일본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구직자의 98% 이상이 직장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일본 정부에서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외 지원자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들. 오랜시간동안 아시아의 경제적 수도 역할을 해 온 도쿄에선 글로벌 인재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겠노라고.
두 달 째였다. 호떡 아르바이트를 격주 주말로 바꾸고, 도서관이나 방구석에 틀어박혀 일본어 공부를 하거나 이력서를 새로 쓰거나 했다. 가끔 친구를 만나기도, 가끔 운동을 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혼자 집에 있었다. 공채로 진행하는 일본계 대기업보다 상시채용을 하는 외국계 기업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외취업을 생각하는 모두가 뒤적이고 있을 사이트들을 차례대로 쥐 잡듯 들쑤셨다. Wolrdjob, peoplenjob, Upfly, Jobstreet, Globaljobs, Linkedin, Indeed 부터 일본 내 취업 사이트까지. 일본어는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어떤 사이트를 보는 게 좋을지, 이력서 양식은 어떻게 해야할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 설명회나 박람회 같은 이벤트가 열리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당연하게도 내 몫이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제대로 일을 구할 수나 있을지도 궁금했다. 물어볼 사람도, 대답을 얻을 장소도, 털어놓을 구석도 변변치 않았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하는 주변 이야기들에서 떠나면 이게 어떤지 내 방식대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서였다. 내가 익숙한 장소들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자꾸만 나를 떨구어 보는 마음은.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날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서였다. 정작 내가 보고 있는 건 여름과 함께 지푸라기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 작은 다다미 방 속의 작아지는 나와 작은 글씨가 촘촘히 박힌 노트북 모니터 뿐이었다.
백 여개의 회사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학 동문회나 향우회까지 들락거렸다. 거의 아무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고 운좋게 잡힌 무역회사 면접에선 “술은 얼마나 먹어요?”, “혼자 살아요?” ,”일요일에 교회 나가요?” 같은 애매한 질문 뿐이었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어른들의 말에 또래 친구들은 더 이상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한껏 기대치와 자존감을 낮추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토익 시험을 치러 가고, 취업 스터디에 나가던 친구들은 그럭저럭 어떤 회사에서든 일을 시작했다. 취업 축하한다는 말에 “축하는 무슨, 한 번 눈높이를 낮춘 이상 평생 이 위치에서 살아야 한다더라.” 며 쓰게 웃곤 했다.
혼자 꾸려나가야 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혼자 생각이 많아지는 일을 자연스럽게 수반한다. ‘어떻게 해야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란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난 누구인가?’,’인생은 무엇인가?’로 꼬리를 물었다. 고뇌와 번민의 과정은 외롭고 조금은 괴로웠다. 섹시하고 날씬한 갑부가 되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서 일과 나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어제의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도토리와 사람이 다른점이 뭐게?
하노이 서호 근처에 살고 있는 윤지는 “서형아, 도토리와 사람의 다른 점이 뭐게?” 물었다. 차이는 커녕 같은 부분 조차 찾기 힘든 두 존재인데. “도토리는 자신에 대해 몰라도 참나무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면 그 자신이 될 수 없어.”
그랬다. 내가 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필수적이었고 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혼자 고민하는 것이 벅찰 땐 좋아하는 사람, 좋은 책, 좋아보이는 영화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시간이 지나도 명확한 답변 같은 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모든 지혜를 짜내어 선택을 해도, 그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선택과 결정의 반복은 나를 만들어 줄 것이다.
단지 연고가 없는 외국 땅에서 돈을 벌려하는 것 뿐이다. 먼저 길 위에 있던 선배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난 뒤쳐지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한동안 방황할 것이다. 거의 혼자서 떠안아야 할 것이다. 작가 허지웅은 아무의 얘기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불행할 시간이 있으면 더 많은 걸 책임지고 노력한다고.
이럴 거면 그 때 취업 할 걸 그랬어요......
곧 건축을 전공하는 친동생의 졸업전시회가 있었다. 늘 “피곤하지만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잘난 체 하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상 받은 작품을 전시한다며 꼭 와 달라고 했다. 아이가 생겨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된 친구가 있었고, 작게 아이의 돐잔치를 한다며 초대하는 친구도 있었다. 친한 사람들의 생일이 두 번쯤 있었고, 사촌오빠의 아이 즉 내 첫 조카가 태어났으며,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있었다. 이렇게 된 거, 한 달쯤 서울에서 지내다올까 싶었다. 일본어 시험을 한국에서 속성강의로 해결하고, 먼저 일하고 있는 사람들 얘기도 들어볼까 싶었다. 그것보다 사실 도쿄의 방구석이 쓸쓸했고 눅눅하고 무서웠다.
시키는 대로 세 달만 수업 잘 따라오고 복습 잘하면 합격은 문제없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계신 종로의 일본어 학원에 등록했다. 목이 잔뜩 쉰 선생님의 강의와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유인물을 안고 점심시간 무렵에는 일러스트레이터 강의를 들으러 컴퓨터 학원에 나갔다. 이태원에 친구가 카페를 오픈하게 되어 한 달간 아르바이트도 했다. 밤이 되면 생각나는대로 선배나 후배들을 만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졸업하고 그 때 오라던 회사 갈 걸 그랬어요. 괜히 꿈을 찾겠다고 나대고 설치고. 뭐가 그렇게 튀고 싶어가지고는……이제와서 그냥 회사원이 되려고 하니 괜히 생각이 많아지고.”
“넌 그냥 너야. 다 똑같이 사는 것도 이상하지만 똑같이 살기 싫어서 도망다닐 필요도 없어.”
“꿈이 목표도 아니고 어떻게 찾니. 찾아서 이거다 정하면 그게 그대로 꿈이니. 꿈은 자유로운 거야. 잘 때 어떤 꿈을 꿀지 정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구한테 피해만 안끼치면 지금 서형이대로 가끔 닥치는대로 사는 것도 난 좋다고 생각해. 풍족하진 못하겠지만 조금 소박하게 입고, 먹고, 자는 걸 스스로 해결하며 맘껏 변하는 꿈이 자유로워보여 좋아. 그건 그렇고 넌 그 때 그 회사 들어갔으면 분명히 ‘언니 전 세상 구경이 더 하고 싶어요’ 하면서 금새 뛰쳐 나왔을 걸”
- 다음 호에 일본 워킹홀리데이 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