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 둔 가능성으로 선택이 마비 되어버렸다면
아, 이 맛이지.
늘 가던 순댓국 집에서 모둠순대까지 든든하게 먹고 천 오백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일회용잔에 받아들고 다섯 곡에 천원인 동전노래방에서 목이 찢어져라 10년 전에 노래들을 부르짖는다.
“어디야, 뭐해? 엽떡 먹자” 친구 자취방에 떡볶이를 사들고 밥솥에 있던 찬밥에 김자반에 참기름에 비빈다. 주먹밥을 만들어 옆에 두고 목구멍을 넘길 때부터 후끈해지는 떡볶이에 쿨피스는 각 1곽은 기본. 예능 방송을 틀어놓고 남자친구 뒷담화를 나눈다.
자취방 앞 무슨 책이든 다 찾아 읽을 수 있는 학교 도서관에 한국식으로 꾸역꾸역 주입해주는 일본어 수업까지. 기차를 타고 본가에 내려가면 솥 가득 엄마가 해주시는 담백한 호박죽에 꽃 한송이에도 해사하게 기뻐해주시는 부모님들과 슈퍼에선 먹고 싶던 것들을 맘편히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렇게 완벽한데 꼭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내가 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었는지 희미해졌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세상에 처박힌 채로 이번에는 내가 찍은 사진이 프린트 된 에코백을 만들겠다며 나섰다. 제작 단위는 천장까지 올라갔고 일은 생각보다도 더 복잡해졌다. 평화시장에서 가방 열 장을 사 들고, 현수막 제작 업체에 맡겨 사진만 프린트했다. 손바느질로 직접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사진을 오리고 한 땀 한 땀 눈을 비벼가며 완성했다. 그러나 막상 매 보니 이상한 비주얼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색깔들의 사진과 배치에 촌스럽기만 했다. 실밥을 다시 뜯어냈다. 내 인생 같았다. 큰 그림부터가 아니라 나무 뿌리나 흙 한줌을 들여다보고 있느라 먼 길을 돌아 살고 있는 내 모습.
선택의 폭이 넓어야 세상을 보는 눈이 관대해진다. 심리학 책에서는 자유란, ‘freedom of choice’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사실은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선택능력은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계선을 넘어 그 선택지가 많아지면 사실상 완전히 마비되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매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생각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람이야.’ , ‘열심히 뭐든 배워두면 언젠가는 쓸 데가 있는 법이지.’ 가능성에 대한 숭배자나 마찬가지였으며 선택을 미루는 일에 익숙했다. 딱히 절대 못할 일은 없지만 나는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일 역시 없었다. 선택지를 모으기만 해 온 나는 지금 엄청나게 길어진 목록 앞에서 얼어붙어버려 선택지가 하나도 없는 것과 같았다.
비틀대며 선택하기
나쁘지 않은 대학교를 졸업했기에 다시 큰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 무엇인가를 배우자니 아쉬웠다. 그렇게까지 배우고 싶은 일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회사를 찾아보자니 일본어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일본에 있는 백만원 남짓의 월급이 쥐어지는 적당히 작은 한국 회사에 들어가자니 그럴 바에 완전히 귀국해서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한 편으로는 일본에서 적응하고 자리잡느라 몸부림치던 시간들이 아까웠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 새로운 것을 알게될 때의 나는 반짝반짝함으로 가득 차 오른다. 스케줄이 벅차지고 사서 고생이다 싶어도 또 그렇게 짬을 내서 신비로운 곳으로 달려간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압도당하는 동시에 또 쉽게 기진맥진해져 싫증을 느낀다. 대체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내 성향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장애물 달리기 선수처럼 높이 뛰는 동시에 빠르게 뛰고 싶다면 내 중심이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 선택지라는 것의 가치는 내 선택을 믿고 실현시킬 때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게 지금 기준에서 현명한 것일까. 한국에서 지내는 한 달의 시간동안 참 부지런히 지인들을 찾아 만났다. 나보다 오히려 날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 덕분에 스타트업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관련된 책을 구해 읽고 인터뷰들을 찾아 읽었다. 마침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스타트업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부스를 돌며 이력서를 남기고 면접을 보고 강연을 들었다.
자서전이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성공의 플롯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성공이 날 맞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는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좌절감에 적성과 재능이 부족한 게 아닐까 다른 분야를 돌아보고 노력이 부족하다며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내게 딱 맞는 일이 어느 날 나타날 것이고 그 날까지 또 부지런히 찾아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날 강연에서는 “흔들려야 부러지지 않아요.” 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고민해서 무언가를 선택해도 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있다. 망망대해에서 도착지를 향하여 쉼없이 노를 젓고 있지만 파도가 몰려와 나를 다른 곳으로 밀어넣고 만다. 고민엔 끝이 없고 그 끝에서 선택을 해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잘못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반대로 잘못된 선택의 끝에 놀라운 결과가 기다리기도 한다. 그건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너무 괴롭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인생의 모든 걸 통제하려는 건 내 오만일지도 모른다.
동경을 놓치지 않는 것
한 달이 지나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밥을 먹어도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맛없는 시간들은 여전하게 지나갔다. 메탈 음악을 하는 작은 공연에 초대되었다. 신주쿠 구석에 위치한 작은 지하 공연장에는 짙은 눈화장에 긴 머리를 한 아마추어 밴드들이 무대에 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아직은 덜 다듬어진 듯한 어설픈 노래와 앳된 얼굴들이었다. 기예에 가까운 포즈로 기타를 치고 숨이 차고 떨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땀범벅이 되어서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홍조가 띈 뺨에는 정말정말 행복하다는 황홀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 달간 나는 무슨 고민을 한 건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부끄러워질 만큼.
동경을 놓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시간이 흐르고 책임이 많아지면서 함부로 동경하는 삶을 살기 어려워질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제는 솔직히 마주봐야 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다시 원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