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찔하다가도 개꿀이다
나로 사는 게 왜 힘든 건데
인생을 살다보면, (고작 스물 하고도 몇 해 살아온 게 전부이지만 어쨌든) 한 사람으로 지내다 보면, 어떤 시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될 때가 온다. 그 때의 그 결정은 꼭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대신하게 해서는 안된다.
성숙해진 사고방식으로 남녀, 인종, 나이에 대한 세상의 차별은 옅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모바일 세상이 또 다른 벽을 만들어내고 있음도 사실이다. 텔레비전보다도 더 가까워진 거리의 스마트폰에서는 내가 어떤 세상을 살아야 할지 은연중에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 예술가라면, 회사원이라면, 대학생이라면 으레 이런 옷, 이런 차, 이런 책, 이런 방이라고.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주변의 영향을 받기가 너무 쉬워서, 내가 나로 살 수 있게되는 건 생각보다도 더 힘들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선 타인이 나를 이해하는 폭이 곧 내 세계의 폭이 된다. 그들이 나의 농담을 이해하면 나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나는 지성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모순이 나를 모순되게도 한다. 사람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이야기 속에서 편집되면서 의미를 획득한다. 삶의 의미는 이야기속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적어 나갔다. 시간이 넘치도록 남아돌아서 적고 또 적다가 쓸만한 내 이야기가 더 남지 않으면 누군가를 만났고 뭐라도 먹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거듭 내게 물었다. 이력서를 써야 할 시간에 블로그에 글을 두드리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결국 열악한 조건에 박봉인 회사에 들어가게 될지도,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결정을 내가 하게 되길 바랐다.
세 팩에 60엔 (한화 약 600원) 하는 낫또가 다시 내 식사가 되어주었다. 시간은 빠짐없이 흘렀고 쌀과 계란, 간장이면 두려울 게 없었다. 냉장고에 남은 낫또가 있다면 더 호화로울 수 없었다.
집 요정 도비의 마법에 걸린 취시오패스
이력서를 백 개쯤 썼고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해리포터가 방학 내내 친구들에게 연락을 받지 못한 것처럼 나도 사실 도비가 지메일을 막아둔 것은 아닐까.(해리포터- 비밀의 방 참조) 한 편, 면접을 보자는 답장이 한 시간동안 세 개나 온 날도 있었고, 친구가 내게 밥 사먹으라고 용돈을 몰래 찔러주던 날도 있었다. 스카이프 화상면접을 보는데 때마침 전기가 끊겨 부랴부랴 노트북을 들고 친구집으로 뛰어간 날도, 대기업의 호화로운 빌딩에 불청객처럼 쭈뼛쭈뼛 면접을 보고서 스스로 뒷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날도 물론 있었다. 비트코인 회사에서 제안을 받았지만, 비자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고생 끝의 낙인 줄 알았더니 다시 시작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쉽고 흔한 말이지만 주변에선 찾기 힘든 사례다.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이나 강연에서는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에. 이 쯤 되면, ‘잘 됐으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지.’라고 삐뚤어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한국에선 취업 준비생을 부르는 ‘취시오패스’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취준생 + 소시오패스의 합성어로 정말 무시무시한 뜻을 담은 말이 아닐 수 없다. 고민을 하는 시간은 추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후회의 가능성을 줄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 책, 영화를 통해 돌고 돌아 시간이 걸려 힌트를 얻곤 하는데 물론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내 자신에 중심의 무게가 생긴다고 믿는다. 가장 정확한 나침반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내 마음속에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며 방향을 가르키고 있는 인생에서 매번 훌륭한 역할을 해 내는 나침반.
취업보다도 중요한 건, 일본 비자보다도 더 중요한 건, 내가 왜 하는지 모르지만 결국 또 하고 있는 그런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남들보다도 더 이 과정이 오래 걸리는 듯한 기분은 조급해지기도 했지만 한편 이 과정 끝에 얼마나 대단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다. 인간은 신체 구조상 1.6km를 4분 내에 달릴 수 없다고 알려져있었다. 육상선수 로저 배니스터가 그 한계를 깨기 전엔.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16명이 4분 내의 기록을 세웠다.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못 한 일들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실리콘 밸리에서 ‘애도 아니고…’라는 반응이었으며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통념이 지배했을 때도 있었다. 혜택 받은 환경에 있는 사람일수록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유복한 부모님, 대학 졸업자, 건강한 몸……. 그래도 괜찮은 입장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땐,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엉뚱하더라도 하는 편이 좋다. 내 작은 기록을 보고 또 누군가가 힘을 내 줄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Keep Try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중심을 가지고 있다고 으스대지만 또 흔들릴 땐,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좋은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괜찮다고 다시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는 사람들에게 얻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 이미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을 가까이 하는 것 역시 내게 더 많은 영감을 주고 나의 기준을 더 높일 수 있게 해준다. 평소에도 ‘참 멋있다’ 생각해 온 언니, 오빠가 주변에 있었다.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 말해주는 동생들도 있었다. 그렇게 위기를 친구들의 힘을 빌어 매번 꾸역꾸역 넘어왔다. 언젠가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꼭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안 할 수 없는 일, 그 일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따뜻하게 도전하느라 지친 친구들을 보듬어 줘야지. 금속 공예를 하고 있는 친구가 선물한 반지에는 ‘Keep Try’라는 어설픈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거칠게 휘갈겨진 글자를 보며 의미를 물었다. “잘 모르긴 해도, 넌 계속 도전하는 게 잘 어울려.” 작업 멘트는 늘 뻔하지만 또 넘어가게 되더라.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게 낫겠어. 이렇게 죽기는 정말 싫지만 말이야.’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친구를 10개월 만에 다시 만나던 날, 그녀는 포르쉐에 태워서 날 집앞까지 데려다줬다. 우리는 그녀가 도쿄에 온 첫 날 처음 만났고 왜 살아야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하루를 꼬박 채웠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었던 신기한 일들을 보고 들으며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미리 한계점을 정해두고 눈치보지 않고 더 마음껏 생각해봐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이런 어이없는 용기는 얼마든지 가져도 좋다. 용기는 배울 수도 있다. 또 연습해서 훈련할 수도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 서슴없이 달려드는 용감한 사람에게 성공이 찾아올 확률이 더 높다. 매일 똑같은,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기회 대신 예측 가능한 비슷한 하루가 흘러갈 확률이 높은 것 처럼 당연한 이유이다. 물론 그만큼의 실패도 감내할 수 있는 대담한 성격과 용기가 필요하다. ‘재밌는 일이네, 이 기회는 인생에 다시 없을지 몰라. ‘라고 매사에 생각하면 세상에 귀찮은 일이란 게 없어진다. 다만 인생이 전체적으로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느라 사는 일이 성가셔질 것이다. 좋아 보이는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뛰어들다보면 타격이 뜬금없이 내게 덤벼들 때가 있다. 어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나의 것과 비교하며 초라해진다. 그 실력에 욕심이 내고 그의 열정이 부럽다. 그 질투의 순간은 그래도 끊임없이 오롯한 나만의 순간이 된다는 것. 시선은 끊임없이 벼려질 것이고 인생의 이야기는 만들어 질 것이다. 동경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 책임이 많아지면서 동경하는 삶을 살기 어려워지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히 마주보고자 몸부림 친 이 시간을 기특하게 여길 수 있을 거다.
단짠단짠 팁
사람들이 열광하는 단짠단짠 (단 맛과 짠 맛의 조합)은 사실 인생의 맛인지도 모른다. 돈이 없으면 먹고 싶은게 괜스리 더 많아지고 먹고 싶은 걸 맘껏 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없는 때는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난다. 찝찔한 순간들이 나열되면서 ‘아 왜 사나’ 싶다가도 일이 몇 번 잘 풀리기만 해도 금새 “인생 개꿀” 을 외친다. 한 때 대란이 일어났던 ‘허니버터칩’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달고 짜고 달고 짠 맛의 반복으로 사람들은 모두 인생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맛을 곰곰히 잘 느끼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더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팁 같은 것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