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판을 알자. 도쿄 취업 준비생의 '나' 탐색기
어줍짢은 마음, 어설픈 행보, 애꿎은 여권만
어줍짢은 모험심이 전부는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그 마음가짐과 함께 이대로 끊임없이 움직인다면 하고 싶은 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설픈 행보에 애꿎은 여권은 가난한 발자국들로 채워졌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야. 하지만 내가 지금 행동할 수 없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
닭이 먼저였을지 계란이 먼저였을지.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인건지 사실 꼬인 건 인생이 아니라 내 불만 가득한 시선인건지.
다행히도 몰아 쓴 이력서에 대한 대답을 하나, 둘 받고 있었다. 며칠을 연속으로, 도쿄의 한여름, 한 낮에 나는 비지땀을 흘리며 유니클로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검정 정장을 세트로 입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내가 얼마나 두서없이 어떤 분야라도 다 지원했는지 몸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평생을 사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위하여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찾겠다더니 비자 만료일과 자금에 쫓겨 결국 이렇게 또 미궁에 빠지고 있었던가. 쇼핑몰 회사에서 검색엔진 회사, 방송국 작가에 광고 카피라이터. 이름만 대면 다 알 대기업에서 갓 만들어진 듯한 스타트업까지.
‘재밌어 보이네. 이 기회는 생에 다시 없을지 몰라.’ 라고 생각하면 세상에 귀찮은 일 같은 건 없어진다. 다만 인생이 중구난방으로 가지를 뻗쳐 약간 성가셔지기 시작할 수는 있다. 일본에 체류 가능한 비자가 한달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곳에서 일단 시작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나는 설득된 듯 했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더 이상은 두렵게 느껴져 그럴 지도 몰랐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회사라는 틀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한 켠이었다.
당장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세상인데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일단 비자를 받고 집 값 걱정을 덜어야지. 연말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낼 수 있게 일을 시작해야하는 게 맞는 일이 아닌가? 아니. 오늘만 생각한다면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멋있게 하는 게 멋있는 건가? 무작위로 지원을 해 놓고 완벽하게 내 맘에 드는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도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안주하여 오랫동안 그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 나중에서야 나다운 일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애써 못 본 체 하게 되는 거 아니야? 힘겹게 잡은 자리인데, 길바닥으로 다시 돌아오는 용기를 내지 못하면 어떡해?
두려운 마음은 쌓이고 쌓이다 원점을 다시 돌고 있었다. 나를 골똘히 바라보는 면접관의 눈빛처럼 회사를 고르는 기준도 뾰족해지고 있었다.
일본의 한 종합상사 단체 면접을 보게 되었을 때는 친구와 나란히 동아일보 뉴스에 등장했다. 아나운서는 “이른바 헬조선을 탈출하려는 대졸자들의 시선이 일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건조하고 형식적인 목소리와 안됐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타이틀 자막으로는 ‘일본- 일손 부족, 오세요.’ 가 띄워졌다. 새로운 환경에서 부족한 언어로 부딪혀가며 조금이라도 어리고 무모할 때 자극을 받고자 용기를 낸,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헬조선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대졸자’ 로 압축되어 방송으로 실려나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 역시, 한국이 취업이 힘들고 먹고 살기 벅차 보이니 돌파구를 찾으려는 건가. 도망치는 마음가짐인 것인가. 미디어에 흔들릴 지경이었다.
나는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엔 폭염과 소나기 속에 다시 정장을 꺼내 입고 면접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장렬하게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종합상사 역시 최종면접까지 꾸역꾸역 올라갔으나 그 이후에 아무런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세계가 아닌 컴퓨터 모니터만을 바라보고 있는 일,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돈이 필요하니까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보내는 건 한 번 뿐인 내 인생에게 너무 무례하니까.’
라고 생각하며 어리고 건방진 서형이는 내 두 발로 세상을 보고 알고 돕고 싶다고 했었다. 매사에 삐딱하던 고교생 시절, 아마도 나는 비슷한 고민에 봉착했던 듯 하다. 임오군란이 발발한 년도 같은 걸 몰라도 되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을 지, 더 극단적으로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왜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아 이 많은 것들을 암기해야하는지. 그걸 이해하기 전까지는 한 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푸념하던 내게, 당시 담임 선생님께선 그런 얘기를 해 주셨다.
“공부는 네가 사는 세계를 인식하게 해 주는 거야. 모든 현상에 대해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거야. 단순한 사실들이 모여 어떤 현상에 작용되는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고. 니가 어른이 되어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도시의 하수나 전기, 물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자신이 새롭게 습득할 지식을 전체적인 운영 시스템에 붙여놓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면서 깊은 위로와 공감을 받은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또 깊게 땅을 파고 어둡고 축축한 생각들에 파묻히고 있었다. 두더지의 종류는 알고보면 생각보다도 더 많다. 사람인 이상 살면서 두더지를 모조리 소탕하는 건 불가능하니, 두더지를 인정하고 늘 주의할 수 밖에!
헤매듯 살아
동남아시아를 여기저기를 맥주 한 병 들고 휘적휘적 함께 돌아다니던 동기는 어느덧 직장 1년차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 너머 내게 “야. 당장 내일 죽을지, 백 살도 넘게 살지 모르는 건데. 늘 헤매듯 살아. 난 먼저 가지만 넌 그대로 괜찮아 걱정마.” 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래퍼 넉살의 랩에선 '아직도 눈치를 보며 안전한 삶 속에 넌 숨지. 숨을 쉬는 것 만이 살아 있다 말할 수 있나. 우린 우리 자신일 때 더욱 빛나'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면접 준비보다도 서형탐구가 계속되는 여름날이었다. 태풍이 온다더니 비도 제대로 내리지 않았고 축축한 날씨와 함께 그래도 이력서 제출과 면접은 계속되었다.
나는 주변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만큼 빵을 좋아하는 빵덕후다. 그러나 요새는 좀처럼 빵을 사 먹지 못하고 베이커리 진열대 앞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아니야…비싸고 영양가 없어…’ 주문을 걸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싸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에 대해 알아가는 나날들이었다. 어느 것이 작고 어느것이 큰 일인지 순발력있게 파악해야한다. 거꾸로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붙들고 멍청하게 앉아있지 않으려면, 특히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좀 더 빠르게 머리를 팽팽 돌려야 한다.
정 떨어지게 재수없는 세상
세상은 비정할정도로 합리적이다. 내가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지 못했다면 이미 기회는 없을 확률이 100 이상이 되고 최선을 다해 공부에만 매진했다고 말해도 잠을 줄이고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했던 건 아니니, 결과를 보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일 년에 두 번 뿐인 일본어 자격증 시험에서 낙방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거래 내역을 정기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내 돈이 저절로 지켜질 리가 없다. (콘서트 표를 조금 싸게 사려다가 가짜표를 거래해서 환불을 받았으나, 메일로만 환불해주겠다 하고 사실 환불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매정하고 냉정하고 정 떨어지게 재수없는 세상에서 내가 해야하는 결정적인 선택은 운명이나 직관이나 기세, 본능 같은 비합리적인 것들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품을 것 : 헐렁헐렁 엉망진창
워킹홀리데이 기간 안에 누구보다 멋지게 자리를 잡을 거라 생각한 건방진 내 꿈은 비자 만료와 함께 물건너 간 듯했다. 헐렁헐렁 그 나라의 언어도 익히지 않고 불쑥 몸만 건너온 내가 아무렇게나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보다. 사실 그리고 그 점에서 오히려 왠지 모를 미소가 떠올랐다. 다시 한 번 내가 가진 매력을 탐구해 볼 것. 내가 가진 기풍에 따라 인생을 기획하여 전열을 가다듬어 볼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뛰어 온 걸음 걸음들이 헛되게 하고 싶지 않은 오기가 생겨났다. 이 두서 없는 엉망진창 일상들이 내게 시사하는 바를 오롯이 느끼고 품을 것!
도토리 탈출의 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언니의 생일을 맞이하여 언니의 포토그래퍼 남자친구,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도쿄로 건너온 동갑내기 커플, 금속공예와 음악을 하는 내 남자친구와 그냥 나는 한 자리에 둘러 앉았다. 생일의 주인공이 볶아서 산처럼 쌓아 내온 제육볶음과 쌀 밥을 둘러앉아 와구와구 먹었다. 다른 외모와 다른 성격을 가진, 일본어 실력과 통장 잔고도 제각각인 우리지만 도쿄에서 처음 만나던 날과 같은 모습으로 헤매고 있음은 여전했다. 마냥 설레던 그 당시와 달리 조금 지친 모습들이 된 것도 사실이다. 당장 내가 먹고 살 돈을 버는 일이 소중한 만큼이나 내 삶을 예술로 살고 싶은 고민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다. 두뇌의 사용에 바탕을 둔 유식 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체하듯, 앞으로 우리가 살아나갈 세상에선 블루칼라도, 기술자도, 자본가도, 관리자도 아닌 창의적 지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혁신가들이 새로운 계급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도토리 탈출의 길이다.
이 날 동경의 작은 자취방에 모여 앉아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던 수더분한 우리들의 목소리도 언젠가 점점 더 힘을 가질 날이 오기를. 우리 모두에게 평화와 행운을 두 손 모아 빈다. 우리를 기다리는 건 전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와 보나마나 보이나 안보이나 볼 수 없어도 이미 알 수 있는, 힘들여가며 헤쳐나가야 할 앞 날이다. 그에 대한 불안이 덮쳐오면 결심은 몇 달치든 몇 년치였든 관계없이 이겨낼 도리 없이 흔들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개구쟁이로 나이들 수 있다면 그렇게 호기심과 넘치는 에너지와 용기와 약간 버릇없는 태도를 가진 채 살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사랑하는 모두들과 함께 엔타운을, 엔타운 속에서 새로운 또 다른 어떤 것들을 보고 꿈꾸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오늘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Love& Resp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