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후지산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저는 일본에 사는 관광객 입니다.
나는 일본에 사는 관광객이 되었다. “조금만 더. 다 왔어.”라며 스스로 달래왔다. 마음처럼 흘러가지 못하는 일본생활의 불안감을 꽤나 오래 버티고 있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를 북돋아가며 어떤 일을 해야할 다음 번에 “저번에도 다 왔다고 했는데 결국 다 못갔잖아! 거짓말쟁이야.” 라고 마음이 토라져 버렸을까봐. 쉽사리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취업은 당연히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작은 목표들을 못 이루는 게 모여서 습관이 되고 태도가 되어 결국 인생이 될까 두려웠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진짜였다. 3개월의 관광비자를 받아서 도쿄로 돌아왔다.
그 산에 가면 왠지,
비자의 상황 탓에 취업의 문턱은 더 높아져있었다. 같은 조건이라면 비자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편리하다. 내게 까다롭게 구는 모든 것들에 괜히 서운함이 몰려왔다. 그 때쯤 나는 자주 만나는 여섯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사진 예술을 하는 둘, 패션 디자인을 하는 둘, 금속공예를 하는 하나 그리고 나. 후지산에 캠핑을 가자고 했다. 후지산에 오르면, 그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내면, 그 밤에 그 장소에 낭만이 있을 것만 같았다. 당장 안개처럼 깜깜한 우리의 인생이지만 그 속에 멋이 있다는 걸 두 눈으로, 온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후지산 자락
도착한 곳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알게된 통나무집이었다. 유행하는 킨포크 감성으로 온통 치장된 게스트하우스였다. 주인아저씨는 하루종일 인터넷으로 쇼핑몰을 뒤적였고 우리는 카메라를 꺼내어 부지런히 힙스러운 인테리어를 담았다. 우리는 낭만적인 캠핑을 포기했다. 유학생 셋과 워홀러 셋 중 장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고, 대여를 하려니 생각보다도 더 예산이 많이 깨지겠더라. 1박 2일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싸구려 패밀리 레스토랑에 앉아 머리를 모은 결과였다. 각자 휴대폰으로 숙소를 검색했다. 1분간 자신이 고른 숙소로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브리핑하고 투표를 통해 선정했다. 내가 고른 장소가 후지산까지의 인접성, 인당 지불해야 할 가격, 숙소의 비주얼 등을 종합하여 최종결정이 되었다. 불합격과 거절에 익숙해진 내가 오랫만에 뽑혔다는 사실에 뿌듯해 했다.
도쿄에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후지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 후지요시다는 초겨울이었다. 으스스하고 축축해서 몸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숙소 구경을 마치고 마실을 나오니 이미 마을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주민들이 다들 대피한 도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도착한 타지인처럼 골목골목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녔다.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우린 가지고 온 먹을 것이 없었다. 가성비와 이동거리를 따졌을 때, “가서 사먹자”로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능력이 사람을 판가름하는 냉정한 도시에서 한 자리 잡아보려 발버둥던 우리는 너무 지쳤다. 도시에서 떨어지면 포근한 밥을 인심좋게 내어줄 음식점이 있을거라 기대했다. 여전히 길거리는 조용했다.
투명하고 애매한 밤의 식사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주인 아저씨께 지도를 구해왔다. 안개 속을 헤집다가 우리 여섯명이 딱 들어갈만한 작은 가게를 찾았다. ‘Transparent Full moon (투명한 보름달)이라는 작은 나무 간판을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아직 오픈 전이었다. 어둡고 조용한 식당엔 몇 개의 노란 조명만이 식탁을 비추고 있었다. 이 밤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었다. 사장님은 혼자서 요리를 준비해야 하기에 메뉴를 통일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머리를 모아 메뉴를 정하고 나자 이내 분주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레스토랑을 가득 채웠다. 식사는 애매했다. 소금을 들이 부은듯 한 고르곤졸라 펜네가 테이블에 올랐고 나는 허기를 채우느라 그릇의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밤의 놀이, 마피아는
다시 돌아온 숙소는 고요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 독일 가족들이 잠시 활기를 더해주더니 금새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 여섯 중엔, 술을 마시는 인원이 거의 없었다. 와인 두 병에 맥주 한 캔으로 그 밤은 충분했다. 마피아 찾기로 그 날을 마무리 할 예정이었다. 로션도 바르지 못한 맨 얼굴로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방 한칸에 둘러앉아있으니 팔공산 자락이나 가평의 쿰쿰한 방구석이 떠올랐다. 한국에서처럼 왁자지껄하게 술게임을 할 것도 아니었고 널부러진 소주병이나 설익은 로맨스같은 것도 있을리 없었다. 대신 우리는 목소리가 천장을 넘어가지 않게 속삭이며 신중하게 마피아를 잡아냈다.
어른이 된 사람의 시야
독립을 했다거나, 내 명의로 된 집을 산다거나, 가족을 이루게 되었음과 별개로, 어른이 되는 건 나다운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먹는 음식은 나를 이루게 되고 그래서 좋은 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어야한다고 말씀하시던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좋은 나를 만들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들뜬 마음으로 생각하던 지난 날들의 고민과 여정을 지나는 동안 나는 내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고민했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내 역할이나 행동방식이 결정되곤 했다.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친구들은 내 좁은 세상을 넓혀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지 알아야한다.” 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난 밤 열 한시에 잠에 들었던 우리는 아침부터 부지런했다. 올해는 다른 때보다도 더 빨리 날씨가 추워져서 8월말에 이미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닫혀버렸다고 한다. 수행하듯 후지산을 오르려던 계획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지만 개방된 곳까지 일단 오르기로 했다. 후지요시다의 아침은 쌀쌀한 공기에 머리가 쨍해질 정도였다. 아침 식사로 식빵을 사 와서 갓 내린 커피에 곁들여 먹었다. 두 봉지를 꾸역꾸역 먹어 치웠다. 잼도 계란도 케첩도 한 방울 없이도 오븐에 구워낸 따뜻한 곡물식빵은 그 자체로 제 할일을 다 하는 녀석이다.
안개 속에 갇힌 사람이 부여하는 의미
중국인 관광객을 몇 대의 버스로 쏟아낸 후지산 오합은 등산이라 하기도 머쓱한 그저 관광지였다. 사람들이 붐벼 기념사진 한 장을 찍기도 버거웠다. 등산로를 조금 걸어오르다 금새 배가 고파져 그만두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상 3,776m 높이에 비하면 반쯤 밖에 되지 않는 해발 2,305m였지만 구름이 이동할 때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꽤나 맑은 날이었는데도 우리는 전조등을 켜고 10km로 속도를 유지하며 거북이처럼 기어내려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모두가 안전벨트를 붙들고 있었다. 납작 엎드린 우리 차 옆으로 관광버스들이 익숙하다는 듯 산길을 능숙하게 타고 내려갔다. 이렇게나 다들 잘 내려가니까 안개같은 건 괘념치 말고 그들과 속도를 맞춰야 할 수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자신과의 싸움이니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운전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온갖 것이 의미가 되어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혼란스럽게 하던 때였다. 특히나 나는 이 쯤엔 실패들이 날리는 카운터 펀치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주 흔들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책에서 읽는 문장 하나 영화에서 지나가는 대사 한 마디 허투루 보내지 못하던 때였다니까.
그럴 때 하면 좋은 생각 뒤집기
그럴때는, 안개가 내 주변을 뒤덮어서 눈 앞이 보이지 않고 저 멀리의 길까지 가려졌을 때는, 주차장에 차를 대 두고 잠시 구름 속에 갇혀지내보면 될 일이다. 이미 만 번쯤은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해 와서 눈 감고도 운전할 프로 기사님들께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이를 이겨낸다면 나는 이 인생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며 어설픈 아집을 부릴 필요도 없다.
차에서 내리자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좋은 냄새가 났다. 콧 속 가득 촉촉해지는 겨울의 가습기 같았다. 구름이 지나가고 무사히 산에서 내려왔다. 점심 세트를 600엔(한화 약 5,800원)에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보여 들어갔다. 스피커를 통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식당에서 후지산을 올려다보며 중국음식을 양껏 먹었다.
'나는 거절을 당하느라 뒷걸음질 치는 게 아니었다. 어떤 세상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탐색하는 과정에 있었다. '고작 이 생각에 이르느라 별 특별한 일도 벌어지지 않은 1박 2일의 후지산까지 와야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좋아하는 게 많아 유난히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만큼 세상은 내게 재미있어보이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 이 방황이 쓸 데 없이 보이더라도 앞으로도 재밌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좋겠다. 그건 또 그대로 멋진 삶이 될 것 같으니까.
꿀 안 발린 인생을 찾습니다.
후지산에서 돌아와 나는 다시 호떡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모짜렐라 치즈 핫도그를 신메뉴로 내 놓은게 적중하여 그 새 일본의 방송까지 몇 번 탔다. 따뜻한 볕에 가을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오는 주말이니 손님들은 긴 줄도 마다하지 않고 호떡과 핫도그를 먹기 위해 기다렸다. 말도 안되게 바빠서 작은 가게에 세 명이 엉겨붙어 쉴 새 없이 일했다. 밥을 먹을 시간도, 돌아가면서 잠시 앉아 쉴 시간도 없었다. 누군가가 사다 준 햄버거는 이미 차게 식었고 고기 패티에서 흘러 나온 육즙이 포장지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잠시 틈을 내어 한 입씩 빵을 뜯어 먹으면서 우리는 웃었다.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아. 오~ 진짜 죽겠는데?”라는 말이 허리를 펼 때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한 편 “아 이거 완전 낭만적이야. 이게 바로 우리 바이브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곳이 지옥이라면,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고, 우리끼리만 그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극한에 닿을랑말랑하는 순간에서의 쾌락을 나는 즐기고 있었다.
2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우리는 무섭도록 뜨거웠다. 손님이 줄을 이루는 바람에 생긴 의도치 않은 경우였지만, 내일 몸져 누워 출근길이 천 리 길이 되겠지만. 호떡집에 불난듯한 열정과 터질 것 같은 흥분은 우리가 늘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잘 시간에 눈을 뜬 채로 꿈을 꾸고, 식사시간엔 밥을 굶고 창고에서 새우잠을 자더라도, 그래도 고래꿈을 꾸자. 꿀 알바나 꿀 직장 같은 꿀 발린 쉬운 일들은 거절한다. 우린 소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