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으로 그 일은 멋진 일이 틀림없었다
너무나 많은 걸 좋아하고, 모든 게 뒤죽박죽이고 이 별에서 저 별로 바꿔 가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별똥별들을 쫓아다니는 나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다. 밤이 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가진 혼란스러움 외엔 남에게 줄 수 있는 게 나에겐 없었다. – 길 위에서, 잭 케루악
노동법부터 교정,교열 보는 법 그리고 매체별 특집 기사를 기획하는 것까지 매일 하루 여덟 시간 잡지를 만드는 일만 생각했다. ‘잡지 편집자’보다 ‘매거진 에디터’가 되고 싶던 나는 그 일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완성된 번쩍번쩍한 기사만 부러워할 줄 알았던 것이다.
잡지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사진가, 디자이너 등 여러 인력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글을 쓰는 사람이 에디터다. 대중지의 경우 패션 에디터와 피처 에디터가 나누어지는데 패션 이 외의 기타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이 피처 에디터다. 사람들이 궁금해 할 이야기, 한 번쯤 생각해 볼 이야기, 이슈가 되고 있는 이야기 등을 인터뷰, 칼럼, 기획 기사 등의 포맷으로 폭 넓게 다룬다. 잡지 안에서 신문이나 방송의 기자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에디터가 기자나 저널리스트와 다른 점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총괄한다는 점에 있다. 방송으로 치면 프로듀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글이 어떤 형식으로 들어갈지, 취재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시각적인 매체로는 사진을 쓸지 그림을 쓸지 결정한다. 촬영을 하게 되면 포토그래퍼와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의견을 모아야 하고, 장소와 인물 소품을 섭외하는 것은 물론 촬영 당일 진행도 해야한다. 기고를 받거나 인터뷰를 하게 되면 주제에 맞는 사람을 섭외하고 그의 이야기가 풀려 나올 수 있도록 발을 맞춰 달린다. 마치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나면 잡지 디자인 차례다.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페이지를 디자이너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어떤 기사를 기획하는 일부터 세세한 부분의 마무리까지 놓칠 수 없는 것이 에디터의 일이다. 그래서 잡지 에디터라 하면 늦은 시간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떠오르게 된 것 인지도 모른다. 에디터가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듣고 수업을 통해 예행 연습을 했다. ‘방송으로 치면 PD와 같은 거라고? 와 정말 멋있다.’며 몸을 책상에 바짝 붙이고 수시로 눈을 반짝여댔다.
에디터의 일 중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은 다음 많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옮기는 일에 가장 큰 흥미를 느꼈다. 수업을 들을수록 인터뷰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인터뷰를 얼마나 잘 하고 싶은지 골똘히 생각했다. 주변 사람 두 명을 취재해 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나를 재워주시는 친구 어머니와, 반 친구 하나를 섭외했다.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내게 까칠하게 굴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유난히 긴장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에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질문이 담긴 것이며, 읽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 사람을 몇 번이나 돌아봤다. 다른 매체에서 진행한 인터뷰도 쌓아두고 찾아 읽었다. 또 내가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의도치 않게 어떤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진 않았나 거듭 확인했다. 숙제를 마치고 나서도 나는 매주 주변 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연습을 했다. 어느새 만나는 사람을 곰곰이 살펴보고 특별한 점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내 주변 사람을 한 번씩 다시 생각했다. 이 즈음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나의 연습 기사가 되어 주었다. 내가 희망하던 잡지사의 발행인과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고심해서 질문을 고르고 조심해서 말을 주고 받았으며 세심하게 글을 적었다.
수업 시간엔 돌아가면서 인터뷰 연습을 하기도 했다. ‘50살이 되면 20대의 이걸 후회할 것 같다 하는 게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말문이 막혔다. 앞 질문에서 웬만하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산다고 답했던 것과 반대로 가족들과 살갑게 지내지 못한 것, 하다 만 언어 공부, 비웃을까 두려워 프로가 되지 못한 것 등 아무튼 진심을 다하지 못한 날들이 앞다투어 서로 후회스럽다고 말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서까지 후회스러운 지난 날을 마음 아파했다. 그러면서 내게 아직 20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떠올렸다. 당장 지금부터 진심을 다할 수도 있다. 악몽에서 깨어나보니 포근한 침대보에 쌓여 아침을 맞이하게 되어 그 날부터 착한일을 실천한 <크리스마스의 캐롤> 애비니저 스크루지의 기분이었다. 당장 가슴이 진심으로 가득 찰 일을 하러 뛰어 나가고 싶어졌다.
외국에 살면 기회가 제한된다.
자진해서 도와줄 사람을 알지 못하면, 시작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문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애당초 두드릴 문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도 알 수 없다.
- 빵 굽는 타자기 , 폴 오스터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가면 어디서 문을 찾아 두드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문장에 박수를 쳤다. 내가 진심으로 이 문장에 공감하도록 도와준 지난 집 밖의 날들을 떠올렸다. 어느 아침에 눈을 떴더니 기막힌 첫 문장이 떠올랐다. 교실이 있는 7층까지 계단을 오르고, 친구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물을 떠오고, 출석 QR코드를 찍고, 웃고 떠들다보니 그 문장이 사라져버렸다. 적어 둘 걸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요지는 이랬던 것 같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설픈 건 내가 늘 애매하게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있게 떠나지도, 굳은 심지를 가지고 한 곳에 뿌리내리지도 못한 마음이 이제는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어제 들은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후배가 잘 챙겨 먹고 아프지 말라고 보내준 기프티콘을 그대로 고마워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누는 대화의 어색함을 그대로 견디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 숙소에 머물 수 있을지 몰라 짐은 풀지 않았다. 아침이면 캐리어 속에서 옷가지를 뒤적였다. 날씨가 아직 차가워서 여름 옷과 얇은 긴 팔을 여러 개 겹쳐 입었다. 책은 빌려 읽고 밥은 아껴 먹었다. 물건을 사더라도 이동할 때 버리거나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골랐다. 한 때는 내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유연함과 유약함은 언뜻 매우 비슷하지만 어마어마하게 다른 의미를 가졌다. 유연한 건 얼마든지 늘어나고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가볍고 질긴 것이다. 일본을 떠나던 때 친구에게 이미 들었던 이야기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에디터가 되던, 또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던 다시 만났을 때 그 선택에 확신을 갖고 있길 바라." 길을 자주 헤매느라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는 나의 유약함을 유연함으로 바꿀 수 있는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남기로 했거나 떠나게 되었을 때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의 결정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 어떤 길에 서서도 자신있게 행복하지 못한 기억이 맴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려주는 문장이 떠올랐지만, 그렇게 사는 일은 이제부터 내가 해야할 몫이었다. 잡지 교육원에서 취재 기자 교육을 받은지 한 달이 되었다. 번개처럼 눈이 뜨이던 아침이 어느새 끝없이 늘어져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수업은 계속 되었고, 숙제도 계속 되었고, 친구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일도 계속 되었다. 의미 부여와 자극 받기도 계속 되어야 했다. 가끔은 아침에, 때로는 저녁에 샤워를 할 때마다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 얘기해줬다.
하루종일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던 고등학생 때 처럼 우리는 점심 시간을 애타게 기다렸고, 누군가의 자리는 늘 편의점 못지 않게 주전부리 잔치가 열렸고, 이론 수업 시간에는 컴퓨터 뒤에 엎드려 스르르 감기는 눈을 숨겼다. 혹시 에디터 되기도 전에 벌써 흥미를 잃은 것일까 두려웠다. 나는 흥미를 잃게 되는 일이 무섭다. 재미가 없다는 생각만 해도 이 곳을 떠나야 한다는 신호가 오는 것 같아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너 죽을 줄 알아.”와 비슷한 말로 “너 재미 없을 줄 알아.”라고도 하지 않는가. 재미없는 일은 이처럼 정말 무서운 일이다. 기분 전환을 위해 마트에서 산 와인을 마시고 엎드려서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버린 날, 아침에 일어나 “아이고 아까운 저녁 시간을 날렸네.” 아쉬워 하는 나를 보면서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구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오토바이 여행을 하며 블로그로 알게 된 사람이 카페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사를 할 겸 들렀다가 캠핑을 같이 가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배낭을 매고 산에 올라 텐트를 치고 자는 일은 조금 긴장되지만서도 절대 거절할 수가 없다. 그는 매달 몇명의 사람들과 떠나는 자신의 여행에 ‘낭만캠프’라는 이름도 붙여놓고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나의 낭만은?’ 이라는 대화 주제도 내어 놓았다. 블로그 댓글만 몇 번 주고 받은 게 전부인 어색한 사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장비를 빌려주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산으로 이끌고 올 만큼 단단했다. 또 자신이 데리고 온 산이 군 훈련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출입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휙 방향을 바꾸고 씩 웃어 넘길만큼 유연했다. 오토바이 여행을 하며 세상을 구경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는 매 순간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호기심으로 자꾸 쳐다보게 되는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에 몰입했다고 했다. 그의 시간은 결국 ‘낭만 캠프’라는 활동과 ‘클라우프’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창의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산에서 밥을 지어 먹고 일곱 명의 낭만 이야기를 들었다. 꿈을 찾고 싶은 게 꿈이라는 이야기, 하고싶은 대로 하면서 베짱이처럼 살았더니 어느 순간 아무것도 재미가 없어진 이야기, 매사에 노력해서 못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뛰어나지도 않은 3등급 만큼의 인생이었다는 이야기, 직업을 당당하게 소개하고 싶다는 이야기와 철학자의 여행법, 코스모스, 오래된 미래와 같은 책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다들 얼마나 오래 생각을 해왔을까. 감동하고 공감하느라 정작 내 차례가 왔을 때 미세하게 떨리는 염소 목소리가 나왔다. 고작 턱걸이를 하고 싶단 말을 꺼냈다. 팔굽혀펴기는 하면서 이상하게 턱걸이는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올해 더도말고 덜도말고 두 팔로 내 몸 하나 번쩍 들어올릴 수 있게 되길 바랬다.
내가 원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세상에 나가서 나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되도록 많은 것을 탐색하고 싶었다.
항상 눈을 뜨고 있으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뭐든지 유익할 수 있고,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가르쳐 주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태도가 좀 고리타분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젊은 작가.
좋든 나쁘든, 다른 방식은 나한테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원기 왕성했고, 머리는 착상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만 같았고,
발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생각하면, 안전한 곳에 편안히 들어 앉아 있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 빵 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