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다시 또 시작하느라 누워있을 시간이 없었다.
좋아하는 잡지사의 에디터가 되겠다고 퇴사부터 저질렀다. 나는 그 잡지의 에디터가 되기는커녕 면접의 기회도 얻지 못했다. 퇴사일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잡지 교육원이라는 기관을 찾아냈다. 청년 실업자의 자격으로 서류와 면접을 봤다. 560시간의 에디터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짧고 굵은 신음소리를 윽! 내지르자마자 차근차근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다. 앓고 누워있을 시간이 없었다.
수업을 듣는 일은 복잡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안되고 (불법수급자가 된다고 했다.) 수업을 듣는 동안 블루투스로 위치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본인 명의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온 휴대폰은 컨트리락이 걸려있어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새로 휴대폰을 구해야 했고, 5개월 간 돈을 벌지 않으면서 먹고 잘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친구의 가정집에 짐을 풀었다. 정작 친구는 4년 째 하노이에서 지내느라 방을 비운 상태였다. 그동안 친구가 먹었을 어머니의 아침 식사를 친구 자리에서 했다.
휴대폰이 없는 것도 나뿐이었고, 가진 돈이 거의 없어 동전 몇 푼에 요란하게 구는 것도 나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억울함에 상황이 더 절박해졌다. 순식간에 궁지에 내몰렸다.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왜 나와서 나를 괴로움으로 몰고 왔는가. 글을 읽고 쓸 때 가장 반짝반짝한 기분이 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걸 당장 업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왜 미리 그걸 몰랐을까. 잡지 교육원에는 전국에 글 좀 쓴다는 사람들 중 활동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모두 모여 잡지 기자를 꿈꾸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당장 가진 돈으로 5개월도 못 버틸텐데. 벼랑 끝에 선 나는 누굴 물어뜯을까 고민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걸 누구 탓을 할까.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어려운 일이라 반대하시는 걸 알지만, 이번엔 저 꼭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부모님께 드리는 말도 매번 반복되자 민망했다. 일본에서 일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드리려던 이야기를 넣었다 뺐다 하느라 꾸깃꾸깃해졌다. 그럼에도 감정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눈을 맞으며 선배가 사주는 수육국밥을 얻어 먹고,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하루 종일 앉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유행하는 영화를 보았다. 일상적인 것들을 익숙한 사람들과 같이 하면서 천천히 억울함과 분노가 풀어져 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으로 배웅을 나와준 친구가 있었다. 그는 샤프에 내 이름을 새겨 선물했다. ‘상서로운 균형’이라는 한자 뜻에서 가운데를 ‘글 서’ 자로 바꿔 ‘글의 균형’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 되었다. 이제 도쿄에 출장 나가면 누구랑 맥주 한 잔 하냐는 불평 말고는 내 결정에 대한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내가 저질러 버린 일에 관심과 응원을 보여주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우리 엄마도 해 줄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찰칵, 그 날 공항에서 아무 맛 없는 카레를 함께 떠 먹던 일은 한 장면이 되어 남았다. 그 순간을 나는 잘 접어 꼼꼼히 마음에 넣었다. 때로 새까맣게 이 날을 잊을 수도 있지만, 분명 어떤 날에 다시 주섬주섬 꺼내 보게 될 것이다. 멈칫하게 하는 말들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용기를 잃고 도망치려는 내게 한 걸음 더 내딛어 보라고 격려해 줄 것이다. ‘친구야. 너가 무슨 머저리같은 일을 해도 언제나 난 너의 편일거야. 그때는 내가 아무 말 없이 너의 결정을 응원할게.’ 부끄러워서 하지 못한 말은 대신 서울에서 어느 날 일기장 한 구석에 적혔다.
“너 어디 믿는 구석 있니?”
후련한 표정을 하고 홀홀 다시 거지꼴로 서울로 돌아온 내게 언니들은 밥을 사주며 물었다. “그럼요.” 허겁지겁 입에 소스를 묻힌 채 밥을 먹다 대답한 말에는 돈이나 빽은 없었다. 대신 날 믿는다고 말해줬던 사람들이 있었다.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준 친구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묻는 대신 직접 만든 빨간 명함 케이스를 내밀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번 생은 성공이라며 축하해 준 친구도 있었다. 언니, 오빠들이 사먹인 밥과 동생들이 잡아준 손과 친구들이 남긴 댓글이 나의 반복되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에 조금씩 자신감과 속도를 붙여 주었다.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선택을 믿는 일이 한결 쉬워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해나가는 일이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나는 내가 원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가 일하는 헬스장에서 땀을 쏙 빼고 나오자,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 ‘덕분에 멀끔한 기분이 되었어. 고마워.’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 보름달 떴는데, 우리 다같이 손잡고 강강수월레 하는 걸 잊었어!’ 라는 답장이 왔다.
그때그때 되는대로 사는 것 같지만, 그래도 밖에서 일어난 사건보다는 내 마음이 끌리는 방향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행복했다. 나는 기회가 오면 주로 오케이라 말하는 편이었다.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 멋있어 보이는 편을 골랐다. 내게 고민하는 시간은 불편했다. 길어질수록 안달만 났다. 빨리 유명해져서 빨리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새로운 걸 시작하는 일은 지루한 날들에서 벗어나게 해 줄 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시작하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막상 가진 것을 붙들고 애써보는 책임감은 부족했다. 지지부진한 이야기의 책 몇 권을 빌려 읽었다. 겉만 보고 집어 들었다가 속았다는 배신감이 들었다. 누군가가 읽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도 있으니, 남이 보는 글을 쓸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주절주절 쓰여지다가 희미하게 마무리 지어진 내 글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 벌인 일에 앞서 내 글과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교육원 수업이 시작되었다. 각자 지망하는 잡지를 써서 내라고 했다. 지하의 잡지 박물관에 내려가서 천 개가 넘는 종류의 잡지를 들춰보았다. 유명한 패션지부터 월간 닭고기, 월간 붕어, 월간 버섯과 같은 전문지까지 한참 들춰보았다. 누군가는 이 책 한권을 위해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전체 테마를 정하고 그에 따른 페이지를 나눈 다음 단어 하나, 사진 한 컷 골라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여길 가도, 저길 가도 재밌을 것 같았다.
하루에 들어야 하는 수업도 많았고, 그에 따른 숙제도 끊이지 않았다. 열 일곱살도 아닌데, 너무 잘하고 싶어 어쩔 줄을 몰랐다. 기린은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큰 동물이며 물 없이도 몇 주를 버틸 수 있다. 하루에 20분만 잠을 잔다. 뿐만 아니라 평생 선 채로 먹고, 자고, 새끼까지 낳는 대단한 동물이다. 그러나 기린이 내는 소리를 우리는 평생 절대 들을 수 없다. 그들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낮은 음역으로 소통한다. 기린은 어린이나 좋아하는 동물이라 생각하고 깊이 알 것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 앎에 갇혀버린다. '너는 나이가 몇인데 기린 타령이냐' 얘기하는 당신이라면 나와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지투라는 래퍼가 있다. 하루는 그가 출연한 라디오를 들었다. 진행자가 지투에게 예능 출연이 잦다며 은근히 놀리는 이야기를 했다. 래퍼의 자존심을 건들이다니! 조마조마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맞아요. 그 프로에 나왔어요. 저는 예능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어요. 기회가 되면 연기도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기대했던 힙합 외길 인생 어쩌고 하는 얘기와는 결이 달랐지만 그는 적어도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떻게 될지 뻔하니까 널 생각해서 말리는 거라'는 조언을 자주 듣는다. 예상 가능한 결과 일 수는 있지만 그게 꼭 별로일 리는 없다. 미래가 없고 너랑 안 어울리고, 이 업계는 빡세고 저 업계는 포화상태라고 백날 말해줘도 괜찮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나에게는 모두 괜찮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됨으로써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게 되겠지만, 예를 들면 신세 한탄이나 겁 먹은 표정 같은 어떤 것도, 그에 대한 구원은 스스로 구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