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란 테마에 무엇을 담고 싶은가.
멀쩡한 직업 내버리고 재밌어 보이는 새로운 직업을 구했다. 남이 하고 있는 재밌는 일들에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했다. 신문 기자와 매거진 에디터가 다른 점이 있다면, 에디터는 많은 새로운 소식 중 재밌는 기사를 다시 모아서 편집한다는 것일지 모른다. 기획안을 내고서 “재밌을까? 잘 모르겠는데? 재미없을 것 같아.”라는 미지근한 피드백이 돌아오면 그렇게 힘이 빠질 수 없었다. 재미가 없다는 건 생각만해도 소름이 오스스 돋는 일이다. 옛날 영화에서는 “너 죽을 줄 알아”라고 말하는 대신 “너, 재미없을 줄 알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 않았는가. 에디터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어떤 매체에 들어가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여러 분야에 걸쳐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를 모으느라 매 주 진땀을 흘리고 애를 썼다.
하루는 서울에 출장 온 아빠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미루던 이야기는 그때서야 흘러나왔다. “일본에서 힘들게 직장 구해놓고서, 왜 그만뒀어?” “재미가 없었어요.” 대답을 뱉고선 거의 바로 나는 미안했다. 아빠는 한 번도 일하는 걸 재미없어 하지 않으셨다. 일이 늘 재밌지만은 않았을텐데도 그랬다.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재미없다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를 키우는 게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는 걸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이 몰려오는 바람에 포항으로 다시 내려가는 아빠와 작별 인사가 조금 어색했다. 죄인이 된 것 같아 평소처럼 애틋한 인사를 나누기 뭐했다.
아니다. 애써 키워주신 부모님께 미안해하지 말아야겠다. 죄송하다는 생각에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주저하거나 중심을 잃고 휘청이지 말아야겠다. 얽힌 관계에 매번 절절매기보다 지나서 나중에 고맙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겠다.
그 무렵 나는 친구 어머니 댁에서 지내는 일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하는 곱창집 근처 작은 방으로 이사를 했다. 방은 오래 되었고, 화장실은 좁고 길어 옆으로 앉아 용변을 봐야 하는 이상한 구조를 하고 있었지만,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저렴했다. 일본에서 15kg 짜리 캐리어 하나 끌고 귀국했었는데, 친구 집에서 지내는 몇 달동안 짐이 조금 불어난 모양이었다. 바퀴 달린 가방을 덜덜 끌고 꾹꾹 옷가지를 챙겨 넣은 배낭까지 앞뒤로 매고서 걷다가 지하철을 타다가 하며 짐을 옮겼다. 이렇게 요란한 이사라니. 해가 진 골목길을 드르륵드르륵 오래된 캐리어 바퀴 소리가 가득 채웠고 나는 새벽까지 방바닥을 닦고 짐을 풀고 부지런을 떨었다. 집을 제대로 알아보는 일이 복잡하고 싫어서 누구보다 인생을 복잡하게 살고 있었다.
<컨셉진>이란 유행하는 잡지에서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에디터 스쿨을 하나 더 등록했다. 그러느라 벌어놓은 약간의 돈을 다 들여야 했다. 잡지 교육원에서 실무를 배운다면, 여기선 마음가짐에 가까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에디터는 리더가 되어야해요.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어떤 물건이나 이야기에 힘이 붙어야 하니까요.”, “에디터는 좋은 취향과 안목을 지녀야 해요. 좋은 취향은 어떤 것일까 고민이 될 땐, 내가 속해 있는 매거진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돼요. 그리고 그 취향을 이야기할 때는 사회적인 책임감을 지녀야 해요. 내 이야기에 담긴 뉘앙스에 누군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잡지교육원 수업을 마치고 토요일에 에디터 스쿨에 가면 ‘아침’을 주제로 에디터의 역할을 시도해보았다. 기획안을 만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기사를 쓰고, 인터뷰도 진행했다. “뭐가 재밌을까? 어떻게 해야 웃길까?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기획의 목적을 먼저 생각하세요. 이 경우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은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를 고민하며 쓴 기획안이 되어야 해요.”
나는 크고 뜬금없는 ‘아침’이란 주제에 어떤 마음을 담을지 생각했다. 타임루프에 갇혀 같은 아침이 반복되는 남자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이야기했고, 소설을 쓰는 하루키는 아침 네 시에 일어나서 대 여섯시간 일한 뒤 10km를 달리거나 1.5km 수영을 한다고 알려줬다. 아침에 하기 좋은 일은 의외의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하루의 마무리를 짓는 밤에 쓰던 일기를 아침에 쓰면 새로운 것이 잘 떠오르며, 고요한 밤에 혼자 영화를 보는 대신 이른 아침에 영화를 보면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와 같은. 출근 전 아침 시간을 이용하면 하루를 길게 쓰는 것 같은 뿌듯함이 든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주어진 시간이 많이 남은 것처럼 느껴져서 없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해야하는 일’에 밀려 자꾸만 뒤로 미뤄지는 ‘하고싶은 일’을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한다면, 단지 우선순위가 바뀌었을 뿐인데 하고 싶은 일이 먼저가 되어 삶이 풍요로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콘텐츠가 풍부해질수록 이상하게 ‘아침형 인간, 이렇게 되라.’의 제목을 가진 자기개발서 같이 되어버렸다. 좋은 기획 의도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중간 과정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했다.
즉석 역할극을 듣고 기사로 쓰는 시간도 있었다. 에디터 역할 하는 사람 하나와 에디터의 질문에 랜덤으로 답을 하는 사람이 앞에 선다. 둘의 대화를 듣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각자의 방법으로 기록한 뒤 15분 내에 기사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상한대로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인터뷰이는 기사에서 온화한 인물이 되기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사기꾼이 되기도 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실시간 디지털 콘텐츠까지 만들어 내야하는 에디터에게도 세상은 각자가 바라보는 대로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대신 충분한 자료 조사를 통해, 넘겨 짚는 대신 찬찬히 뜯어보면서 속도와 균형을 유지하는 에디터가 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시 간절하게 바라는 날들이었다.
잡지교육원 숙제는 더 빠르게 쌓였다. 한 달 넘게 매일 모여 여덟시간씩 잡지 공부를 한 우리는 이제 제법 서로의 기사를 읽고 품평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비판의 능력은 자주 지성의 척도로 여겨진다. 커피 공부를 하던 때도 “음~ 이 커피는 첫 맛에 느껴지는 향이 좋지만, 무게가 없고 잡내가 남음으로써…”와 같은 우등생의 후기는 확실히 뭔가 있어보였다. 홀짝, 츄릅 한 모금씩만 마시고 길게 이야기를 남기는 프로들과 달리 나는 멍청하게 커피를 바닥까지 들이켰고 이것도 맛 좋고, 저것도 향 좋아다며 마냥 해맑은 학생이었다. 그때와 다를 바 없이 나는 이 친구의 개인방송 BJ 체험 기사도 신기했고, 저 친구의 불법 휴대폰 르포 기사도 대단해 보였다. 매 기사에 독특한 제목을 지어 붙이는 친구도, 노래 가사를 읊듯 흥얼흥얼 글에 리듬을 담는 친구도, 아직 유행이 되기도 전의 아이템을 신속하게 기사로 뽑아오는 친구도 내겐 경외의 대상이었다. 나는 매 수업마다 숙제 검사 시간이 되면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어느새 감탄하는 일이 한심하고 바보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좋은 비판을 위해서는 감탄하는 취미가 먼저 붙어야 한다고 했다. 친구들이 쓴 기사를 대단하다 생각하는 동안 내가 그들의 장점을 흡수하고 더 높은 수준을 갖추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순수한 경탄을 통해 우리는 가장 많이 배운다고 한다. 친구들이 해 온 숙제에 감탄하는 동안 기회는 생각보다도 더 빨리 찾아왔다. 어느새 감탄만으로 충분한 시간은 지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