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는 해보셨어요?

아르바이트가 날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냐하면요.

by 조서형

"알바는 해보셨어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가진 돈이 바닥나서 곱창 가게에서 저녁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참이었다.


"오..."

아르바이트라면 열 여덟살 때 호텔 음식점을 시작으로 일본식 카레집, 샌드위치 집, 중국집, 파리바게트, 결혼식 뷔페, 피부 미용사 자격증 모델, 인터넷 강사 블로그 운영, 댓글달기, 번역, 통역, 행사 진행, 카페, 미용실, 이자카야, 공연 인간 바리게이트, 정신과 임상실험, 촬영 보조, 호떡 굽기, 기업 홍보, 광고 배너 디자인, 펍, 게스트 하우스, 설거지, 아이디어 팔기, 구매대행, 영어 회화 과외, 인스타그램 관리, 글 팔기, 엑스트라, 한국어 과외, 전시회 보조, 카페 창업 컨설팅, 논술 과외, 자소서 대필, 인형탈, 대입 상담, 동화책 읽어주기, 케이크 가게, PPT 제작, 입학사정관제 컨설팅이 있었다. 나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크게 가리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는 나를 자유롭게 했다. 뜨거운 물이 내뿜는 증기에 한여름이면 질식할 것 같았던 설거지 알바와 그릇이 무거워 결국 손목 인대가 늘어나고 말았던 카레집 서빙 알바 그리고 머리의 나사가 팅- 하고 튕겨져 나갈 것 같았던 호떡 타이쿤이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일과 수업이 겹치면 나는 그 수업을 시간표에서 아예 빼 버렸다. 누가 돈을 벌어 오라고 윽박지른 것도, 꼭 사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 돈은 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간에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았다면 시간 대비 효율이 더 좋았을지 모른다. 무리해서 몸이 상하도록 일하는 대신 직접적으로 커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걸 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5.png 출처: 영화

열심히 하고 싶지만 감이 잡히지 않는 때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가장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선 정해진 시험 범위도, 선생님이 지정해주는 문제집도 없었다. 어디에 열과 성을 쏟아야 할지 모르는 채로 청춘은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고는 싶은데 가진 특별한 능력도 없이 형편없게만 느껴지던 내게 아르바이트는 어딘가에 힘을 보탤 기회가 되어 주었다. 말을 얄밉게 해서 별명이 '까치(조씨 성을 가지고 있다)'였던 내게 아르바이트는 또 예쁘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앞 쪽에 서명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수증 준비해드릴까요?"와 같은 사근사근한 알바톤을 구사할 수 있게 해줬다. 마감하는 친구를 위해 저녁에 퇴근하는 내가 미리 반찬을 채워두는 게 배려임을 배웠고, 이 돈을 모아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살아있는 눈을 한 친구들도 만났다. 나의 생활 범위 밖의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낯선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존경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가진 역량에 비해 과한 돈을 받게 되었을 땐 끙끙 앓아가면서라도 해내야 하는 책임감도 배웠다. 그동안 그럭저럭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괜찮을거라 생각하던 거만하고 해맑은 나는 밤에 자다가 쥐가 날 정도로 다리가 꽁꽁 뭉친다거나 기분 상하는 요구나 말투를 꼭 참고 들어야 하는 시련을 마주침으로써 스스로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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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스스럼없이 나서기 좋아하고 그에 비해 버벅거리기 일쑤인 부족한 사람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면 나를 모르고 여기저기 나대고 돌아다니느라 피해를 끼쳤을지 모른다. 그동안의 아르바이트가 있었음에도 돈을 모으지 못해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동안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밥을 한 끼 더 살 수 있었고 떠나야 할 때 한 번 덜 주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는 내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수업이었다.

인생은 95%가 고통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다. '나는 나만 그런 게 아니였구나' 안도하면서 동시에 '혹시나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내 마음을 접어야했다. 하지만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낼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근 십 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출근길에 발이 떨어지지 않던 날도 있었을텐데 막상 글로 쓰다보니 그동안의 고생이 꽤 괜찮게 느껴졌다. 어떤 때는 쓰고 싶은 말이 자꾸 머리에 떠올라 곤란하더니, 막상 판이 깔리자 글이 쓰여지지 않아 억지로 단어를 늘어놓느라 곤란했다. 어떤 때 글이 잘 쓰여지는가 골똘이 생각해보다가 당연한 결론에 도착했다. 쉽게 써진 글은 그만큼 오래 생각해 온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글이 안 써진다면 내가 그 분야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글은 머릿속으로 얼마나 정리를 했는가에 달려있었다. 정성을 들이고 고민을 할 수록 좋을 글을 잘 써낼 수 있다고 생각하자 조급하거나 답답할 게 없었다.

한참 패션지의 화려한 문장을 따라하느라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무렵, 에디터 수업은 인터뷰 실무 버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30년 간 잡지 기자 생활을 해 온 선배가 말하는 인터뷰 요청 메일 보내는 팁은 간단했다. ‘잘 정리해서 설득할 수 있도록 보낸다.’ 그게 끝이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은 한 번 거절당했을 때 다음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정성을 총동원하여 한 방에 해내야 한다며. 가진 마음을 요약하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자세어야 하며, 사전 조사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거리를 미리 찾아두어야 한다. 글이 좋아 에디터를 시작했지만, 에디터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기보다 좋은 이야기를 찾는 사람에 가깝다. 이야기와 사람을 찾아 좋은 콘텐츠로 엮어낼 생각만으로 나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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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로는 무서웠다. 이젠 누군가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두려워하고 있었다. 언젠지 모르지만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내가 새로 시작한 이 일에 권태를 느끼고 스스로 떠나게 될 일을 떠올렸다. 매 달 다른 주제로 새로운 책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은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또 반복되는 마감이 식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이 질문에 대해 선배 기자는 답했다. "잡지를 만드는 일은 같은 일의 중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시작의 번쩍거림만 좇다가 그 빛이 익숙해질 때가 되면 ‘아, 매일 같은 일이 지루해.’라고 생각하며 뒤돌아 나와버렸던 내게 큰 울림이었다. 차이의 반복이라는 개념을 생각한 선배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속에서 울려대느라 날 설레게 했다. 다른 일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동안 부족한 점은 보완될 것이고 그 과정은 나 자신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잡지를 만드는 일은 분명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취재 기자를 리포터, 편집 기자를 에디터라 부른다. 그리고 양자의 총칭으로써 저널리스트라는 말을 사용한다. 여기에 사진 기자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욕심이 많은 나는 역할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기자이고 싶다. 유연함은 유약함과 달리 질긴 힘을 가지고 있고 고집과는 다른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심에서 퐁퐁 솟아난 기획 아이디어가 열띤 취재를 향한 에너지가 되었으면 한다.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할 수만 있다면 영상과 사진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앵글 속에 대중들이 알아야 하는 무엇이 빠짐 없이 담겼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호불호가 잘못된 방식으로 기사에 묻어나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 균형 잡힌 기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정하게 만든다고 했다. 속 빈 강정 같은 기사를 그럴듯한 단어와 문장으로 포장하여 내 글을 읽게 된 사람의 시간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한 허례허식이 덕지덕지 붙어 정작 중요한 기사를 읽기 싫은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해 왔던 잡지 기자 일을 프로로써 하게 될 날을 앞두고 나는 매일 다시 경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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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집을 빌려준 친구의 생일을 맞아 케이크를 사 들고 집에 들어갔다. 불을 붙여놓고 작은 파티를 했다. 이번 주에도 나는 돈을 쓰느라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느라 돈을 썼다. 돈을 아끼느라 골머리를 앓았고 그랬음에도 그 고민이 효과적이지 않았기에 통장의 비웃음을 샀다. ‘다음 주에는 돈을 더 아껴써야지. 밥을 많이 먹지 말아야지.’ 이번 주에도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안달했다. 잘하고 싶고 즐겁고 싶었다. 오늘부터는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 세 장의 글을 쓰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쓰는 글은 의외의 창의성을 발휘하여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고 말하는 책을 읽었다. 아침에 쓰는 노트에는 내내 걱정과 불안이 쓰여졌고, 오늘 해야할 일이 겹겹이 기록되었다. 그럼에도 일찍 일어나 뭔가를 적어보는 일은 꽤나 즐거웠나보다.

7.png 출처: 영화 <On the road>

아침의 침대는 유혹적이다. 언제라도 마음 바꾸어 다시 기어 들어갈 수 있다. 옳다구나! 하고 꿀잠이 반겨줄거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인터뷰이에게 인터뷰를 설득하는 것처럼 한 방에 해치워야한다. 두 번째 설득은 성공률이 팍 떨어지고 노력은 몇 배나 더 든다. 이불을 확 걷어차고 뜨거운 철판 위에 놓인 것처럼 침대를 팟하고 벗어나야한다. 이렇게나 일어나기 어려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는 일이라면, 분명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을 곰곰히 살펴보자. 글을 쓰기 위해 아침에 일어났다면 그 글은 소중하게 쓰일 것이다. 또는 글 쓰는 일은 내게 소중한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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