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안티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니들도 고생이 많다.

by 에너지드링크

회사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

하지만 내 회사 생활을 힘들게 하는 안티들이 회사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꼭 필요하기에, 버릴 수도 없고 내칠 수도 없다.

결국 난 그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나의 안티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1. 데스크톱 컴퓨터

우리 병원에서는 자동으로 설정된 시간에 맞춰 약이 나온다. 하지만 급하게 약을 찾을 때는 처방을 검토하고 컴퓨터 모니터에서 '마감'이라는 걸 눌러야 약봉투 프린터, 자동 조제 기계가 움직다. 전산 처리를 할 일이 많으니 컴퓨터를 많이 쓰고 당연히 과부하가 걸려 멈추는 일이 있다.


그런데 멈추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가끔 이 녀석이 인공 지능인가 의심되는 이유는, 다급하게 약을 찾을 때 딱 멈춘다는 것.

내 앞에 약을 타러 온 조무사나 간호사가 서있는데, 컴퓨터는 멈추고.

이럴 때는 재부팅마저도 오래 걸린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속만 타어간다.


2. 자동 조제 기계

약국에서 포장된 약을 받다면, 그 약국에 자동 약 조제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제 기계 안에는 '카세트'라 부르는 작은 통들이 있고 여기에 약을 부어 넣어 두면, 처방전에 따라 약이 나온다. 그런데 가끔 약이 사라지고 빈 포장지로 나올 때가 있다.

특히 향정신성 의약품이 사라지면 초긴장 상태!

우울, 불안, 긴장 등 정신과 약에 주로 들어가는 약은 식의약처에서 관리하는 품목이라 매일 개수를 는 약인데 사라면 큰일이다.

오랜 경험상 당황하지 말고 기계를 열어 내부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마치 일부러 구석에 숨겼던 것처럼 기계 사이에 끼어있는 약을 찾으며 생각.


기계~~ 너 혹시 정신과 약이 먹고 싶었던 거니? (너 긴장하고 있구나)


3. 에어컨

병원 약국은 24시간 4계절 내내 에어컨이 돌아간다. 이유는 바로 약 보관 온도 때문. 실내 온도나 습도가 올라가면 약들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여름만 되면 에어컨이 자주 고장 난다. 약도 약인데 더워서 내 등에는 땀이 질질 흐르고.

어제까지도 이틀간 에어컨 고장으로 더위와 투쟁했다. 겨우 고치고 진정이 되니 살만하다.


널 한시도 잊은 적 없어.

날 땀나게 한건 네가 처음이야.


이밖에도 다양한 기계들이 나의 안티다. 일을 하려다가 멈추게 되는 다양한 경우가 기계 문제일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나의 안티들은 모두 24시간 풀 근무 중이다. 입원 환자가 24시간 상주하는 통에 단 하루, 몇 분도 쉬지 못한다.

사람도 오래 일하고 쉬지 않으면 과부하가 걸리듯 이 녀석들도 쉬고 싶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듯하다.

그래, 내가 비록 안티라고 부르지만 너희들 없으면 일도 못하지.

토닥토닥. 잘해보자 우리.


#그림: PNG image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계약직으로 살아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