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에서는 자동으로 설정된 시간에 맞춰 약이 나온다. 하지만 급하게 약을 찾을 때는 처방을 검토하고 컴퓨터 모니터에서 '마감'이라는 걸 눌러야 약봉투 프린터, 자동 조제 기계가 움직인다. 전산 처리를 할 일이 많으니 컴퓨터를 많이 쓰고 당연히 과부하가 걸려 멈추는 일이 있다.
그런데 멈추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가끔 이 녀석이 인공 지능인가 의심되는 이유는, 다급하게 약을 찾을 때 딱 멈춘다는 것.
내 앞에 약을 타러 온 조무사나 간호사가 서있는데, 컴퓨터는 멈추고.
이럴 때는 재부팅마저도 오래 걸린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속만 타들어간다.
2. 자동 조제 기계
약국에서 포장된 약을 받는다면, 그 약국에 자동 약 조제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제 기계 안에는 '카세트'라 부르는 작은 통들이 있고 여기에 약을 부어 넣어 두면, 처방전에 따라 약이 나온다. 그런데 가끔 약이 사라지고 빈 포장지로 나올 때가 있다.
특히 향정신성 의약품이 사라지면초긴장 상태!
우울, 불안, 긴장 등 정신과 약에 주로 들어가는 약은 식의약처에서 관리하는 품목이라 매일 개수를 세는 약인데 사라지면 큰일이다.
오랜 경험상 당황하지 말고 기계를 열어 내부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마치 일부러 구석에 숨겼던 것처럼 기계 사이에 끼어있는 약을 찾으며 든 생각.
기계~~ 너 혹시 정신과 약이 먹고 싶었던 거니? (너 긴장하고 있구나)
3. 에어컨
병원 약국은 24시간 4계절 내내 에어컨이 돌아간다. 이유는 바로 약 보관 온도 때문. 실내 온도나 습도가 올라가면 약들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여름만 되면 에어컨이 자주 고장 난다. 약도 약인데 더워서 내 등에는 땀이 질질 흐르고.
어제까지도 이틀간 에어컨 고장으로 더위와 투쟁했다. 겨우 고치고 진정이 되니 살만하다.
널 한시도 잊은 적 없어.
날 땀나게 한건 네가 처음이야.
이밖에도 다양한 기계들이 나의 안티다. 일을 하려다가 멈추게 되는 다양한 경우가 기계 문제일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나의 안티들은 모두 24시간 풀 근무 중이다. 입원 환자가 24시간 상주하는 통에 단 하루, 몇 분도 쉬지 못한다.
사람도 오래 일하고 쉬지 않으면 과부하가 걸리듯 이 녀석들도 쉬고 싶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