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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Dec 24. 2020

당신은 지금 이게 필요합니다.

정말? 진짜?

마트에 장을 보러 안 가도 인터넷 '배송' 클릭 한 번이면 물건이 뚝딱~오는 세상.


나의 인터넷 쇼핑은 육아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이가 어리니 나가기도 힘들고, 기저귀며 물티슈는 쟁여 놓지 않으면 쉽게 떨어졌다.

그래서 첫발을 내디딘 위 OO , 가끔 더 싸게 파는 티 O, 그때는  신생이었던 쿠 O.

한번 발을 들여놓으니 최저가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같은 기저귀 브랜드도 브랜드 데이가 채널별로 다르고 어떤 날은 여기가 싸고, 또 어떤 날은 저기가 싸니 자연히 하나 살 때 세 곳을 모두 비교하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한번 물건을 고를 때 똑똑한척하며 모든 사이트를 다 들어갔다 나왔다.

사실  그래 봤자 몇백 원 혹은 몇 천 원 차이인데 검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커피 한잔안 먹으면 모일 돈을 아낀다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렇게 세 군데를 모두 돌고 나면, 나는 분명 기저귀만 사러 들어갔는데 '오늘만 특가'라는 다른 물건이 보였다.

그러니 물티슈도 있는데 또 사고, 육아로 찐 살이 곧 빠질 것이라며 짧은 치마도 사고, 우리 아이가 영어를 곧 할 것 같다는 기대로 영어 팝업북까지!

마치 온라인 쇼핑몰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당신은 이것도 필요합니다!"


육아를 하면서 나갈 수도 없고, 늦게 오는 신랑과 택배 아저씨, 말 못 하는 아이만이 내 세상으로 들어오는 사람이었기에 그 당시 나는 누군가 내게 말 걸어주길 기다렸나 보다.

그때 물건들이 말을 걸어주고 지름신님과 함께 나의 세상을 밝혀 주었기에 나는 그 터널을 통과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카드값뿐.


그런데 그 터널이 다음으로 연결돼 있었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은 긴 터널.

육아 휴직이 끝나고 복직 후에는, 그 카드값이 더 늘어났다. 일 스트레스가 더해지니 물건은 더 늘어났고 난 이제 버니까~라는 생각에 제어가 안됐다.  필요 없던 것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지금은 남아 있는 것도 없고 뭘 샀는지 기억조차 없다. 도대체 내 돈은 어디로 간 것이냐!!!

육아와 직장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몇몇 사건을 통해 나는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살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은 위기감,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나는 진짜 터널을 빠져나왔다.


우울하거나 감정이 상할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쇼핑이다. 나는 나갈 수 없기에 온라인 쇼핑에 빠져 들었고 그것이 단순히 사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이 공허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 물건을 자꾸 사고 있는데 '이건 꼭 필요한 거니까' 혹은 '언젠가는 필요해'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사고 있다면 내 마음 상태부터 점검하자.

혹시 마음이 공허한 게 아닌지, 마음이 아픈 게 아닌지.


나도 정신 차리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못할 것도 아니다.

시작은 새벽에 일어나 내 감정을 적는 것부터 미미하게 출발했으나, 하나의 발걸음이 다음 발걸음을 이끌었고 지속의 힘으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의 감정을 돌보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카드값 영수증처럼 받으면 우울한 게 아니라 몹시 즐거움을 준다.)

스트레스를 물건으로 풀던 내가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하다니!

두 가지만 기억해라.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는다."

" 내 인생 내가 책임진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번 크리스마스는 조용하게 마음 정리부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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