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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Feb 18. 2021

엄마는 꿈이 뭐였어?

나의 첫 꿈.

이틀 전이었다.

아이들과 잠자리 정리하고 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첫째 아이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는 어릴 꿈이 뭐였어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엄마는 맨 처음에는 선생님"


초등학교 담임 생님에 대한 사랑은 곧,  '선생님'이는 직업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나도 저 선생님처럼 멋진 어른이 돼야지'


하지만 그 꿈이 오래가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음악 과목 담당이던 여자 담임 선생님은 자주 우리 엄마를 학교로 불렀다.

그 당시에도 공부를 잘한 편이었는데,  상을 받을 때가 되면 담임 선생님이 꼭 '엄마 모셔와라~'하 나를 렀다.


처음에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은  사라진 '촌지 문화'가 있었다. 

'촌지'는 은혜를 입었을 때 고마움의 뜻으로 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선물이라지만  당시는 일종의 뇌물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참 자주 아팠다. 어디가 크게 아팠다기보다는 늘  여기저기가 안 좋다.

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늘 누워 있거나 약을 먹는 모습이라, 선생님이 부른다고 엄마가 학교에  잘 나타나진 않았다.


그날도 전에 치른 시험을 잘 봤었고 엄마는 역시나 학교에 와보 않았다.

 나는 반 환경미화 부였고 그날은 학교 환경 미화가 있어서, 교실에 남아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세월이 너무 오래돼서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담임 선생님이 와서 내게 무엇인가 말했, 나는 가볍게 대꾸를 했는데 갑자기 내 앞에서 별이 번쩍했다.

선생님이 내 뺨을 때렸다.


순간 아픔과 놀람, 남아 있는 아이들 대여섯 명 앞에서 맞았다는 사실이 엄청 충격으로 다가왔다.

흐르는 눈물을 겨우 멈추고 집으로 가서 엄마에게  이유도 모르고 뺨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내 앞에선 담담히 나를 위로했지만 아마도 많이 우셨을 거다.


"내가 가봤어야 하는데, 내 잘못이다."

"아냐, 내가 실수한 게 있을 거야."


다음날의 기억도 잊지 못한다.

내 엄마가 학교에 나타났다. 하늘 거리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여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엄마가 다녀가신 다음, 담임 선생님의  온화한 미소도 떠오른다.


그 미소를 보며 결심했다.

'절대 난 선생님은 안될 거야.'


내 꿈은 아주 잘게 조각났고, 그 이후의 모든 선생님들이 다 좋은 분이셨다. 그래도 그 기억은 나와 엄마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기억 속 그분은 여전히 젊고  짙은 화장을 하고 내 앞에 있다.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의 용서 지수는 꽝이다.

문득 기억이 났으니, 나도 이참에 용서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내 첫 꿈을 깨 주셨지만 덕분에 다른 꿈도 꾸며 잘 살고 있어요. 그때는 힘들었지만 이제 용서할게요. 이제 내 기억에서 사라져 주세요. 잘 살아요'



 

*사진:글 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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