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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Mar 04. 2021

나는  미래의 시어머니입니다.

아들의 여자

둘째 다니는 어린이집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6살.


이곳은 3살부터 7살까지 한 반 친구들이 새 반으로  같이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학기 중간에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긴 친구도 있고, 6살이 되니 유치원으로 옮긴 친구도 있다.

한 반 친구들은 15명으로 시작해 올해 12명  남았다.


선생님을 통해 그녀의 이름을 들은 건 작년 가을쯤이었다.


"어머님 요즘  우리 도담이가  서연이랑 친해요."

"네? 서연이요?"

"네. 둘이 얼마나 웃기는지 몰라요."


헉. 우리 아들에게 여자가 있었다니!


"도담아, 너! 서연이 좋아해?"

"몰라."(엄청  시크한 척)

"근데 서연이가 누구야?"

"잰데~".


가만히 문틈으로 그녀를 살폈다.' 살짝  몸은 작고, 귀엽게 생겼군. 우리 아들 취향이 저랬구나.'  


내 속에서  겨우 다섯 살 '아들의 여자'에 대한 질투랄까? 뭔지 모를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게 시어머니들이 느끼는 감정일까? 내 자식이  나 말고 딴 여자를!


너의 사랑은 엄마라면서!

심한 배신감! 크윽 ~이 녀석 언제 렇게 컸지?

그리고  얼마 후 코로나 덕에 당분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정 보육을 부탁한다는 어린이집 공문이 내려왔다.

나는  맞벌이니까 맡길 곳도 없고, 어린이집에 당연히 매일 아이를 맡겼다.


어느 날 저녁,  우리 아이가 슬픈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엄마, 서연이가  할머니 집에 가더니 어린이집에 안 와요~슬퍼."

헉! 너 진심이었던 거니!  

이 녀석 나름  순정파였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데  그중에서도 그녀만을 바라보다니!ㅋㅋ


그리고 드디어 올해 새로운 반이 되었다. 과연 그녀는 어린이집에 나타날 것인가!

화요일에는 둘째와 따로 가는 곳이 있어, 서연이가  왔는지 물어볼 틈도 없이  그곳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엄마, 이제 서연이도  안 오고 민지도 안 와. 나 너무 슬퍼. 민지는 아침에 나 만나면 먹을 것도 주고 친했는데.  서연이는 할머니 집 가더니 안 오고."

" 그랬구나. 슬프겠다. 그래도 또 새로 오는 친구들도 있을 거야. 힘내 파이팅"

"네.(풀 죽은 목소리)"


'이제 서연이는 갔구나.  그런데 이 녀석은 왜  남자애들하고 안 노는 거야? 민지는 또 왜? '


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다시 마주하니 이 녀석이 커서 결혼할 여자를 데려오면, 나는 깐깐한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문득 떠오른다. 10년 전 우리의 웨딩사진을 보고 내가 깜짝 놀랐던 순간을.


신랑과 내가 팔짱을 끼고 있고, 신랑이 다른 한 손으로 어머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왠지 그 동작 하나가 '엄마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어.' 하는 것 같아 당황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들을 키우다 보니 그 동작에 그런 의미를 부여할 정도 아니었다.

결혼으로  인해 품 안  자식을 떠나보내는 머님과, 그 곁을 떠나는 아들의 마음이  '손을  잡 동작'으표현되었으리라.

내가 부모가 되보니 어떤 마음인지 왠지 알 것 같다.


'도담아, 너도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언젠가 독립하겠지. 그때까지 엄마  아들로 잘 살아줘. 가끔 엄마가 귀여운 질투를 해도 이해해야 해.  엄마 마음은 다 그런 거라고.'


오늘 어린이집에 등원하니 그녀, 서연이는 다시 어린이집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안 다니는 게 아니라 단며칠 안 나온 거였군.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그래 사이좋게 지내라~'면서 웃으며 어린이집을 나왔다.


나는 마음 넓은 시어머니가 돼야지. 하하하.(과하게 웃고 있다.)



아이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

그림:  글 그램 및 내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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