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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드링크 Apr 02. 2021

소녀가 갔다.

많이 보고 싶어요.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길을 떠나며 나에게 상냥하게 말한다.


"안녕~"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그 젊은 여자가 떠나는 걸 보면서 같이 인사한다.


"안녕, 할머니"


꿈속에서 나는 그녀가 내 할머니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꿈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바깥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니  엄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부산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부산 내려갈  준비 해라."

 회사에 할머니 부고 소식을 전하고  경조 휴가를 받았다.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유독 나를 좋아하셨다.  

일곱 명의 형제들 사이에 막내로 태어나 이름도 '막례(막내)'

그리고 우리 외할아버지에게 시집 가 부모님처럼  똑같이 7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막내딸이 바로 우리 엄마.

서울에 삼촌 한 분이 더 계셨지만 서울에  일이 있으면 우리 집에 더 오래 머무르셨다. 사람 좋은 아빠는 어릴 적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누구보다 살갑게 할머니를 챙다. 나 또한 할머니를 참  좋아했다. 할머니의 보드랍고 따뜻한 가슴에 안겨 잠이 드는 것도 좋았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팥빵을  사서 어린이  대공원에 둘이 놀러 갔던 기억도 오른다.

내게 할머니는 늘 행복한 기억을 가득 주시는 분이었다.

봄꽃같이 아름답던 내 어린 시절이 가고  나도 할머니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본인 스스로 소식하시고 건강을  잘 챙기셔서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100 넘어까지 장수하거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매번 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결혼해야 할 텐데~"


그런데 85세가 되던 해, 할머니가  버스에서  다 내리지 않았는데 버스가 급히 출발해서 사고가 났다. 할머니는 다 수술을 받았고,  다리가 약해지 서서히 거동이 불편해졌다. 급기야  움직임이 둔해져 계속 누워 계실 수밖에 없었다. 전담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양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예전보다 덜 걷고, 점점 찾아오는 사람이 적어지니 기억도 흐릿해졌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뵌 건 돌아가시기 9개월 전이다.  엄마와 둘이 부산에  할머니가 계신 병원에 들고 여행도 겸사겸사하기로 했다.

사는 게 바빠  못 보다가 오랜만에  할머니를 뵙고 깜짝 놀랐다.

그새  너무나 수척해고 심지어 나를 못 알아보셨지만, 자기 딸인 우리 엄마는 알아보셨다.

요양 병원 밖을 나오며 엄마와 나는 많이 울었다. 그때 뵌 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번 주 월요일이 할머니 기일이었다.  꽃같이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가시던 것만 기억 남는다.   사이 10년이  나는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직도 많이 보고 싶어요. 할머니.

십 년이 지났는데도 보고 싶어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사랑합니다.


그림: 글 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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