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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과 똥
제목 참 거시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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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드링크
Apr 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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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딸이 드디어 결심했다며 강하게 외쳤다.
"
나도 바이올린 살래요."
작년부터 음악 수업이 있었지만, 학교를 가야 수업이라도 할터.
간간이 있던 바이올린 수업은 학교 악기를 빌려서 일 년을 버텼다. 그런데 이제 매일 등교를 하게 되니 바이올린에 관심도 생기고 음악 수업이 재미있어져 악기가 꼭 필요하단다.
바이올린을 사려고 고르다 보니 내 기억 속에
묻어둔 이상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 해에 언니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뜬금없이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하니 엄마도 황당해하며
네가
알아서 구입하고 레슨도 받으라고 했다.
언니가 알아본 레슨 선생님 비용과 악기 구입
비용은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하던가? 부산에 사는 친척 언니가 쓰던 바이올린이 있는데 심지어 매우 좋은 것이란다. 가지러만 오면 바로
준다는 소식이 들
렸
다.
언니와 나는 여행 겸 고속버스를 타고
바이올린을 가지러 부산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우리 두 명 외에 혼자 오신 아저씨 두 세분이 계셨고 자리 여유가 있었다.
언니와의 버스 여행은 처음이라 그날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아저씨 한분이 신문
을
들고 뒤쪽으로 이동하셨다. 자리가 많으니 뒤에 누워서 가시려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조금 후부터 진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논밭을 지나갈 때 많이 맡았던 바로 그
자연의 냄새.
분명 고속버스 안 창은 닫혀 있는데 이게 무슨~
냄새는 점점 더 강렬해져서 속이 안 좋았다. 순간 뒤에 갔던 아저씨가 신문지를 말아 쥐고 기사님 앞으로 다가갔다.
"
아니 잠시 세워 달라면 되지. 이게 뭐예요?"
잠시의 정차 후 아저씨는 정체불명의 물건을 버리고 오셨고 열리는 창이 아니었던 버스 안에 한동안 그 냄새가 가득 베여 모두 코를 막았다.
다음 휴게소에서 정차 후 앞문을 열어 두었고 잔향이 어느 정도 가시고 우리 자매는 너무 황당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어느 누구도 버스에서 똥을 눈 그 아저씨를 욕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다들 양반들만 탔던 건지, 대학생이던 우리도 그분이 2차 생물학적 테러(?)를 할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렇게 냄새 테러를 겪으며 가져온 바이올린으로 언니는 열심히 연습을 했다.
집에서 연습을 할라치면 윗집에서 내려
왔
고 결국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언니 혼자 연습을 하고 오곤 했다.
언니가 연습하던 곡은 동요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삘릴리 삘릴리 삘릴릴리 ~:바이올린 소리라고 생각해주세요^^)
앗, 나비야 동요가 이렇게 슬픈 거였나.
구슬픈 '나비야'를 끝으로 언니도 더는 바이올린 연주에 흥미를 갖지 못했다.
힘겹게 가져온 바이올린은 그때부터 친정 옷장 위 구석으로 들어가 아직도 그곳에 고이 잠들어 있다.
딸에게 새 바이올린이 생겼다!
딸 나이에 맞는 1/2 사이즈 연습용 바이올린을 사줬다.
뭘 건드렸는지 오자 마자 바이올린 줄을 날려먹었지만 고치게 되면 슬픈 나비야 말고 다른 걸 연주해 다오ㅋ
그래서 엄마에게 남아 있는 '바이올린'과 '똥'과 '슬픈 나비야'의 기억을
행복하게 바꿔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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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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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계약직,정규직, 파견근무, 회사원, 전문직 두루두루 경험하고 있는 직업 체험인. 현재 병원 근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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