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군다나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 여자 대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초등학교 이후로 남자라는 종족과 어울려 본 적도 없었다.
여대를 다니면 미팅이나 소개팅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아웃 사이더였던 나는 20대 20 미팅을 딱 한번 나가보고는 미팅이란 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잡하고 정신없고 거기다가 뭔 술을 이리 많이 먹는지, 재미도 없고 지루한 것이 미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졸업하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남자들과 어울려 사는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선 그들은 바쁠 때도 바쁘고 안 바쁠 때도 바빴다. 급한 발표나 미팅이 있을 때는 자료를 만들어야 하기에 업무가 바빴다. 이런 자료를 만든다는 명목 하에 야근을 수시로 했다.
나는 내 사수의 발표를 도와주기 위해 회사에 남거나, 눈치를 보다가 퇴근하기 일쑤였다.
또 그러한 발표가 끝나고 나면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 바빴다. '수고했던 당신, 칭찬해'라는 의미인지 윗사람들이 꼭 회식을 통해 술로 그 노력을 치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자들만의 세계에 익숙해질 무렵, 다른 부서 K 씨와 M언니를 알게 되었다. 둘 다 이 직장에 오래 다녔는데 우리 부서와 협업할 일이 많아서 회식에도 같이 참석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남자 사원들이 K 씨와 주고받는 대화를 들었다.
"어제 것좀 다시 보내줘."
"알았으니까 기다려 봐요"
"지금 무슨 이야기들 하세요? 그게 뭔데요?"
"염도 관심 있나?"
나는 그들의 대화가 궁금했다.
무엇을 말하는지 대충 들어보니, 그건 바로 야동이었다.
내가 첫 직장을 들어갔던 것이 십수 년 전이니, 그때는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던 시기도 아니고 야한 동영상은 능력자들만이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산팀 K 씨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 직원들끼리 그 자료를 공유하고 있었다.
"저도 한번 어떤 건지 보고 싶은데요~"
"그래? 정말? 그럼 알았어."
그 당시의 나는 정말 순수한 호기심으로 자료 공유를 부탁했다. 아마 여자 직원 중에서 그 자료를 공유해 달라는 건 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왠지 얘한테는 공유해도 비밀이 보장되겠다 싶었던 건지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그전에 여러 회식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남자 직원들이 가는 3차를 한번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설마 여자 직원이 3차까지 따라갈까 생각해서 같이 갈 거냐고 권유했을 수도 있는데, 나는 눈치 없이 덥석 따라붙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그렇게 비싸 보이는데 가서 술을 먹는 건가 궁금함이 먼저였다.
세월이 너무 흘러 자세한 것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고, 내가 느낀 분위기와 느낌만 기억난다.
적당히 단란한 방안에 인형 같이 예쁜 언니들이 사람들 옆에 앉았다. 내 옆에도 예쁜 언니 한 명이 앉아서 술을 따라 주었는데 그냥 '이런 데서 마시면 술이 더 달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약속을 잘 지킨 K 씨가 보내준 자료는 음....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충격적이라기보다는 그냥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 건가 정도였다.
그 이후로도 가끔 신상(?)이 나오면 종종 보내주셨는데 나의 퇴사와 동시에 자료 공유는 중지되었다.
그 직장을 나와서 나는 학생이 되었고, 시간 많은 나는 이전 회사에 사람들을 만나러 가끔 가곤 했다.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한 번씩 밥만 얻어먹고 와도 재미있고, 예전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지금은 다들 퇴사해서 그 회사에 가볼 일이 없지만, 아직도 모이는 몇몇 분들은 그 당시 추억을 회상한다고 한다.
그중 내가 3차에 따라간 거,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깡패 같은 아저씨한테 내가 맞짱을 뜨려 했던 것 등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지고 안주거리 삼는다나 어쨌다나.
(아무리 봐도 20대의 나는 똘끼가 충만했던 듯하다.)
나는 다시 공부를 한다고 나왔고 약사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온 후에도 그들은 다들 똑같은 부서에서 똑같은 업무를 하며 같은 일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그런 자료를 공유하고 회식을 반복했던 것은, 지루한 일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 싶어서였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