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티포럼 Aug 13. 2017

[김태륭의 상암르네상스] 서울, 이상호, 용기

선수 이상호와 서포터즈

승자독식


K리그 클래식 26라운드, ‘슈퍼매치’에서 승리한 서울은 승점보다 많은 것을 얻어냈다. 라이벌 전 승리, 올스타 휴식기 이후 3경기 무패, 무엇보다 4위권 추격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게 됐다.

스플릿까지 7경기 남은 상황, 승점 한 점으로 시즌 막판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서울보다 높은 순위에 있는 팀에게 획득한 승점은 귀하디 귀한 것이다.



영상 : 이상호 친정팀 방문하던 날


#이상호


이번 시즌 유니폼을 갈아입은 이상호에게 빅버드의 잔디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지난 3월, 양 팀의 첫 대결에서 이상호는 골까지 기록했지만 장소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이었다. 어느덧 벌써 26라운드, 경기 보는 내내 서울 유니폼을 입은 이상호가 빅버드에서 뛰고 있는 모습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마 양 팀 팬들의 심정도 복잡하고 미묘했을 것이다.


100% 만족한다.
by 황선홍


경기 후 황선홍 감독의 인터뷰처럼 이상호의 경기력은 훌륭했다. 심리적인 부담감을 열정적인 플레이로 발산했다. 지난 2008년 울산에서 데뷔한 이상호는 어느덧 프로 10년 차,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서른 살의 베테랑이 됐다. 지난겨울 이상호의 ‘서울 오피셜’은 양 팀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상호는 수원에서 일곱 시즌 동안 리그 경기만 127회 출전했던 수원의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모든 이적에는 이유와 스토리가 있다. 언론에 알려진 정보가 ‘팩트’가 되어 팬들에게 전달되지만, 때로는 언론에서 다루지 못하거나 오히려 구단 측에서 실제 과정과 다소 다른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호 역시 이적 과정에서 당장 말 못 할 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국내 현실상 이적 과정에서 선수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수원에서 서울로 이적한 이상호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전 소속팀을 상대로 경기를 하게 된다. 과거 몸 담았던 팀과 어떻게 이별했던, 선수에게는 ‘재회’ 자체가 동기부여가 된다. 전 소속팀과 아름답게 이별했다면, 자신이 이적한 팀에서 행복하게 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반면 차갑게 이별했다면,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한 마음이 더 클 것이다.


프로선수들에게 팀은 직장이다. 다소 불편하게 이직을 했어도 쿨하게 전 직장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직장과 다르게 프로축구에는 팬이 존재한다. 축구선수 이상호에 대한 서울, 수원 팬들의 생각은 각자 다를 것이다. 아니 서울 또는 수원 팬들 내부에서도 그럴 것이다.


야유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전반전에는 신경이 쓰였다.
by 이상호


이상호의 말처럼, 전반전 그의 플레이에는 힘이 들어간 듯 보였다. 하지만 후반전 들어 이상호는 경기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수원 팬들의 안티콜은 강해졌다. 과거 오랜 시간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린 동료들을 적으로 상대하는 기분은 정말 묘하다. 이적한 선수나 남아있는 과거의 동료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일대일이나 경합 상황 때 짧은 순간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경기 중에는 감정을 조절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종료 휘슬이 울리면 그 치열함은 사라진다. 이상호 역시 경기 종료 후 수원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축구선수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그들 역시 축구선수 이기 전에 사람이다. 더 이상 같은 팀 동료가 아니라고 해서 친구도 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나 이상호 피켓을 든 FC서울 서포터즈

하지만 일부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경기 종료 후, 이상호는 수원 서포터스를 향해 걸어갔다. 수원 팬들은 야유를 보내며 물병을 던졌지만 이상호는 인사를 하며 날아든 물병을 집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마침 목이 말라 시원하게 마셨다. 야유가 나올 줄 알았지만 인사를 하러 갔다. 분위기는 험악했지만 물병을 던지지 말라던 분도 계셨다. 화를 낸 분이 ‘7’이면 말리던 분도 ‘3’은 있었다. 그런 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상호가 수원 서포터스에게 인사한 행동을 높게 산다. 이는 분명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이번 시즌 서울은 두 차례나 수원의 좋은 흐름을 끊었다. 서울은 올해 세 차례 대결에서 2승 1 무의 우위를 유지했지만 10월 스플릿 라운드에서 두 팀이 다시 만난다면 충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때도 변함없이 이상호가 수원 서포터스에게 인사하길 기대한다.


나 역시 과거 선수생활 시절 서포터 문화를 경험했다. 당시 서포터분들을 통해 전달받은 메시지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경기 워밍업을 앞두고 선수들은 필드에 나와 이어폰을 꽂은 채 잔디 상태도 체크하고 상대팀 선수와 짧게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일부 서포터스는 경기 전, 지지하는 팀의 선수들이 상대 선수와 악수하고 반갑게 웃으며 대화를 하는 모습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유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부정 타잖아요.”

수원 원정에서 뜨거운 응원을 보여준 FC서울 서포터즈

어쩌면 그 사람에게 상대팀 또는 상대 선수는 단순히 적이자 타도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 역시 여유를 갖게 되었다. 지나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결국 팀에 대한 사랑의 표현 방법 중 하나가 아녔을까. 선수 역시 소속팀에 대한 충성도와 애정 표현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축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좋아하는 부분이지만 결코 모든 것은 아니다.
by 리오 퍼디난드


리오 퍼디난드의 자서전에 적힌 내용처럼 축구는 단지 축구일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상호는 서울의 선수이고, 82번째 슈퍼매치를 통해 양 팀 관계에 하나의 스토리가 추가되었으며, K리그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영상 : 수원 0-1 FC서울 하이라이트


매거진의 이전글 <김태륭 칼럼> 서울, 공중볼 그리고 카운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