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행은 유독 터뷸런스(Turbulence:기체의 흔들림)가 심했다. 네덜란드로 가는 11시간 넘는 비행 동안 기체가 너무! 심하게! 자주! 흔들려서 두 번 먹어야 할 식사를 한번 밖에 받지 못할 정도였다. 기내식을 받았을 때도 흔들림이 있어서 받은 음료가 엎질러지지 않나 조마조마해 하면서 얼굴을 테이블에 처박다시피하고 기내식을 먹었다. 포크로 음식을 드는 중에도 흔들려서 음식을 떨어트릴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후배가 말한 적이 있다. 공중에서 흔들리는 동안은 비행기 사고가 날 염려가 거의 없다고, 터뷸런스는 비행기를 흔들리게 할 뿐 추락의 원인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오히려 이, 착륙 순간의 위험도가 훨씬 높고 기체 결함이 대부분 사고의 원인이니 아무리 공중에서 흔들린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논리적 사고 과정을 거친 결론 그대로 몸이 반응한다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무에 있겠는가. 살던 동네가 공항과 인접한 일산이라 주변에 항공 관련 직종에 근무하는 이웃들이 많았다. 이웃들은 터뷸런스에 관한 무시무시한 경험담을 들려주곤 했다. 기내식을 실은 트롤리 카트가 비행기 천장까지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면서 복도 쪽 승객과 카트를 몰던 승무원이 다쳤다는 얘기가 가장 끔찍했고, 기내식을 엎은 얘기며 승객이 물건을 꺼내고 덜 닫은 선반의 문이 열려 가방이 떨어져 맞은 얘기, 카트가 복도 끝까지 미끄러져서 사람을 샌드위치처럼 만든 얘기 등등 터뷸런스 경험담은 들을 때마다 스쾃 60개의 효과로 심장박동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더 심박수를 올리는 건 내가 그 비행기 안에 탔을 때다. 몇천 미터 상공 위의 밀폐된 공간, 위급상황에서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무력한 공간에서 기체가 흔들리는 경험은 엄청난 공포심을 불러온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자신의 경험을 상기시키며 심박수를 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 본 사람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한번은 경험해봤을 이 공포감을 12시간 가까이 느끼며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가까스로 도착하자 몸은 이미 피로감을 호소하며 욱신거렸다. 유럽행 비행기에선 터뷸런스가 별로 없다고 자신만만했던 나 자신의 주둥이를 때려주고 싶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꼼짝달싹 못 하고 내렸더니(터뷸런스가 있을 땐 벨트 등의 거의 켜져 있어서 화장실도 잘 보내주지 않는다) 온몸이 쑤셔서 공항 벤치에 벌러덩 누웠다. ‘아, 그래도 내렸다! 만세!’를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항에서 몇 시간 대기를 한 뒤 이스탄불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심한 흔들림으로 당분간 다시 타고 싶지 않은 비행기였지만 별수 있나. ‘아…. 비상구 자리에 앉으면 좋겠다. 다리라도 쭉 펼 수 있게.’가 그나마 바랄 수 있는 소박한 소원이었지만 이미 받은 탑승권은 비상구가 아니었다.
이스탄불행 비행기의 탑승이 시작되었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승무원의 얼굴이 아니었다. 근심에 가득 찬 심각한 얼굴들.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전날 이스탄불 공항에서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착륙하다 추락해서 탑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있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는 날도 진눈깨비가 흩뿌렸다. 출발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암스테르담에서 하루 묵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탑승 안내가 시작된 상황이었다. 기내에는 뭔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승무원들은 웬만한 휴대용 짐들은 다 선반에 넣게 했고 선반의 문을 몇 번씩 점검했다. 안전띠 점검도 한 명 한 명 일일이 확인했다. (원래 하는 것이지만 더 꼼꼼하게) 나도 덩달아 긴장감을 느끼면서 비상구 위치를 확인했다. 여차하면 어디로 튀어 나가야 할지 동선을 눈으로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과연 사고 현장에서는 쓸모있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비상구가 내 앞앞 자리에 있었다.
앞자리가 소란해졌다. 승무원 두 명이 비상구 자리에 앉은 두 사람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손을 내젓고 문을 여는 시늉을 하고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바로 뒷자리 사람들에게 물었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비상구 뒷자리이자 내 앞자리의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고개를 젓는 것이 보였다. 승무원이 한숨을 쉬더니 내게 다가왔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잠시 잠깐이었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얼마만큼의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졸아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리를(a little)…….” L 사이에 있는 T를 굴려 리을로 발음하라는 중학 영어 시절 배운 나의 놀라운 발음 실력 때문인지, 저 정도 단어면 되었던 것인지 승무원이 내게 양손 검지 두 개를 펴 마주한 채 회전시키며 “체인지!”를 외쳤다.
승무원은 얼이 빠진 나에게 벨트를 풀라고 하더니 나를 데리고 비상구 석으로 갔다. 비상구 앞에는 백발이 성성하고 깡마른, 몸집이 작은 노인 두 분이 앉아 계셨다. 승무원이 비상구 석에 앉은 노인을 내 자리로 가라고 하고 나를 비상구 옆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곤 내가 메고 있던 작은 크로스백을 벗게 하더니 내릴 때 주겠다고 하곤 어디론가 가지고 갔다. 승무원의 영어 설명이 시작됐다. 어제 사고에 대해 들어서 아느냐? 오늘도 기상 상황이 그리 좋지 않고 이스탄불 공항 활주로 상황이 나쁠 수도 있다. 우리는 곧 이륙할 건데 비상시에 비상구를 개방해야 할 수도 있다. 그때 이 문을 네가 열어줘야 한다. 비상구를 열 힘이 있는 젊은이이지만 덩치가 너무 크면 안 돼서 자리를 바꾸게 했다. 네가 우리를 도와줘야겠다. 요약하면 이런 설명이었다. 심장이 스쾃 100개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상구 손잡이는 배의 조타 핸들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작았고 승무원이 직접 여는 법을 시범 보이더니 나보고 한번 해 보라고 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힘껏 돌렸다.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졌는데 실제 무게가 그런지 긴장감으로 인한 착각인지 모르겠다. 승무원이 엄지를 치켜세우더니 자기가 건너편에 앉아서 “오픈!”을 외치면 문을 열라고 했다.
오.마이.갓! 주변에 앉은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는지 다들 뭔 상황인지 궁금한 표정으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며 내 작은 손을 내려다봤다. “젠장, 저는 악력기 다섯 개도 못 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제가 무슨 비상구를 열어요! 엉엉….”이라고 울부짖고 싶었는데 악력기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만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의 도리도리 잼잼과 함께 비행기는 이륙했다. 와, 12시간의 터뷸런스는 터자도 내밀지 말지어다. 비행기가 무지하게 흔들렸다. 미소를 띠던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암스테르담 12시간에 공항 대기 다섯 시간 동안 한잠도 못 자서 눈이 때꾼해진 지 오래지만,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터뷸런스가 심해질수록 나는 비상구 손잡이로 자꾸 눈길이 갔다. 머릿속으로 손잡이를 돌려 문을 밀어 여는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앗, 그럼 나는 언제 내리지? 승무원 보조면 다른 사람 내리는 거 다 도와줘야 하는 건가? (정의감) 아니야, 비상구에 사람이 있으면 입구가 좁아지니까 열고 내가 먼저 내리는 걸 거야. (비겁한 합리화) 아니다, 옆에 할머니는 내려주고 내려야겠지? (일말의 양심) 내 가방은? 거기 여권이랑 돈이랑 다 있는데…. 우쒸… 여권이라도 빼놓을걸. (가장 비현실적인 현실감각) 아니 근데 이 자리에 구명조끼는 어딨는 거지?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다고 부러워했던 비상구 좌석에서 고개를 의자 밑에 파묻은 채 구명조끼를 찾고 있는 가련한 타조와 같은 나를 비웃듯이 비행기는 세 시간여의 흔들리는 비행 후 무사히 이스탄불 공항에 착륙했다. 나는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으로 벨트를 풀어 재끼고 발딱 일어섰다. 승무원이 나를 보며 으레 그 엄지를 다시 치켜세웠다. 뭔가 큰일을 해낸 기분이었다. 내릴 때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했다. 내 뒤의 승객이 내릴 때 인사인 줄 알고 손을 들었다가 승무원이 무시하자 ‘니들 뭔데?’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평상시 비상구 좌석이 내게 배정됐다면 그저 좋아서 씨익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뒤에 선 승객이 니들 뭔데? 하는 표정을 보일 때 씨익 웃었다. 비상구 자리를 벗어난다는 해방감과 더불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일상을 흘려보내지만, 위기의 순간 힘을 합쳐 세상을 참사에서 구한 외로운 영웅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뿌듯함과 연대감으로 씨익 웃었다. 이쯤 되면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생각하며 복도를 걷는데 뭔가 허전하다. 아뿔싸! 뒤를 돌아 비행기로 달려가니 승무원이 아까의 나처럼 씨익 웃는 얼굴로 손에 뭘 들고 흔든다. 내 크로스백이었다. 하마터면 여권도 없는 영웅이 되어 입국장에서 쭈그려 앉아 울고 있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