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가 초보 아빠에게 남긴 것

아내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인 제왕절개 수술, 나에게는 다른 의미가...

by sposumer

2018년 5월 5일. 남들에게 어린이날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출산예정일 D-4일이었다. 아내와 우리 아기가 오늘 나오면 어린이날 선물이랑 생일 선물을 합쳐서 한 번만 주면 되겠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TV로 영화 '패딩턴 2'를 봤다. 이제 잠을 자려는데 아내가 진통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자정에 와이프가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고, 산부인과에서는 건조하게 내원하시라고 답을 했다. 새벽 1시에 산부인과에 도착을 했다. 나는 잠깐 입원실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고, 아내로부터 관장약을 먹고 관장을 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잠시 후,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아내를 만날 수가 있었다. 아내는 스마트폰 앱으로 계속 진통 주기를 체크하면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아내와 의자에 앉은 나는 손을 잡았다. 둘 다 손바닥이 땀에 축축해졌다. 초초한 시간은 느긋하게 흘러갔다. 진통이 4시간 이상 계속되었지만 아내의 자궁은 3cm 정도가 열린 상태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통증을 덜어주는 '무통' 주사도 아내에게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울먹이면서 "엄마!"를 세 번 정도 부르던 아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했다. 자궁이 10cm 정도는 열려야 아기가 빠져나올 수 있는데, 아내의 상태는 유도 분만을 하기도 힘들고, '제왕절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래, 제왕절개하자. 괜찮아."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나는 입원을 할 정도의 수술을 받은 적이 없지만, 주변에서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생 때 담낭 제거 수술을 받으셨는데, 절개 부위를 봉합 후에 지혈이 되지 않아서 고생하셨다. 아무리 별 것 아닌 것 같은 수술도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는 없다. 내가 간호조무사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간호조무사는 당직 의사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새벽 6시쯤 당직 의사가 내려왔다. 아내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원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보호자인 나를 입원실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당직 의사는 두꺼운 수술 동의 서류를 내게 보여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제왕절개 수술이란 산모의 아랫배와 자궁을 절개하고 아기를 꺼내는 수술이다. 절개 시에는 흉터가 보이지 않게 가로로 최소한 절개만 한다. 나머지는 어느 수술이든 공통적인 이야기였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부제처럼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보호자인 내가 수술의 위험을 인정하고, 수술에 동의해야만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나는 다시 수술실 밖에 앉아서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쓸데없는 걱정을 반복하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한 시간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그 한 시간은 정말 길었다. 아침 7시가 지나서 갑자기 병원 벽에 붙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벽에 어울리는 보리밭이 그려진 풍경화였는데, 내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풍경화 자체가 아니었다. 풍경화는 오른쪽 모서리가 삐쭉하게 솟아 올라, 약간 삐뚤게 걸려있었다. 물론 내가 삐뚤어진 풍경화를 똑바로 걸어야 할 의무는 없다. 나는 '그래, 그대로 두자'라고 혼잣말을 하며 풍경화를 등지고 두 발짝쯤 걸었다. 그러다 삐뚤어진 풍경화가 아내의 제왕절개 수술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풍경화 앞으로 갔다. 풍경화 앞에서 생각해보니 이 풍경화는 내가 아니면 똑바로 걸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 걱정에 바쁜 사람들이 모인 산부인과 복도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이다. 이 복도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온통 새로 태어날 아기와 산모 만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풍경화가 측은하게 보였다. 조심스럽게 풍경화를 양손으로 잡고 수평을 맞췄다. 몇 걸음 떨어져서 살펴보고 다시 한번 수평을 조정했다. 똑바로 걸린 풍경화를 보니, 아주 잠깐이지만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오전 7시 21분,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무사히 아내 뱃속에서 꺼냈다. 간호조무사가 아들을 안고 나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손가락, 발가락까지 각각 5개씩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아들을 한 번 안아봐도 좋다고 했다. 약 10초 정도, 아주 작고 따뜻한 덩어리가 내 품에 있다가 사라졌다. 나는 아들이 태어난 것은 정말 기뻤지만, 다시 아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복도를 쉬지 않고 서성이다가 내가 똑바로 걸어놓은 풍경화를 몇 번이나 다시 살펴보았는지 모른다. 오전 8시가 지나자 간호조무사가 나를 아내가 안정을 취하고 있는 대기실로 데려다주었다. 아내에게 수고했다고 말을 했지만, 마취가 덜 깬 아내는 아들을 품에 안아보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 후, 5일간 입원 기간에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힘들어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아내에게는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기억만 주었다.

아내는 아들과 함께 아직 산후조리원에 있다. 산모들은 모유수유를 시작하면서 겪는 젖몸살이 만만치 않다. 아내는 젖몸살은 물론이고 아직도 여기저기가 아픈 곳이 많다. 아내가 아픈 이유가 제왕절개 수술 때문인지는 다른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퇴근 후에는 산후조리원으로 가서 아내를 도와주고 도서관에서 빌린 육아 관련 책들을 틈틈이 읽고 있다. 이번 주에 '아이가 똑똑한 집, 아빠부터 다르다'라는 책을 읽다가 제왕절개 수술과 부성애에 대한 내용을 발견했다.


일부 영장류의 수컷들은 야생 상태에서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잘 돌봐준다. 아메리카 대륙의 마모셋 원숭이나 타마린(Tamarin)종의 원숭이들은 거의 수컷들이 새끼를 키운다. 이 수컷들은 암컷이 새끼를 낳을 때 도와주며, 새끼가 태어나면 처음 몇 달 동안은 낮에 새끼를 돌보고, 음식물을 잘게 씹어 새끼들에게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들이 엄마들에 비하여 부성애가 부족하고,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을 돌보고 직접 먹을 것을 줄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린트(Lind)는 자연 분만된 아기의 아빠와는 달리 제왕절개로 분만된 아기의 아빠가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제왕절개로 분만된 아기의 아빠는 제왕절개로 회복이 더딘 엄마 때문에 처음부터 할 일이 많다. 자연 분만한 엄마보다 출산 후 힘들고 회복이 늦어지기 때문에 아빠가 양육의 짐을 일부 같이 져야 하고, 자연히 아이와의 접촉이 증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병원에서 아이를 돌보던 아빠들은 3개월 후 집에서 아기를 더 잘 돌본다고 한다. 요컨대 일찌감치 아빠의 역할을 익히면 익힐수록 출산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빠들에 대한 연구를 보면 엄마들은 임신 초기부터 태교를 시작하는데 반해, 아빠들은 대부분 태동을 느끼는 때부터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흡연을 하는 아빠들은 엄마가 임신 5개월이 되어서야 옆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 아빠들도 엄마의 임신 초기부터 아빠의 역할을 익혀야 한다. 임신 초기부터 태교에 관심을 갖고 출산 예비수업에도 참여하여 엄마의 분만 과정에서 엄마를 도와야 한다. 그래야 아기가 태어난 다음에도 아기를 잘 돌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빠의 부성애는 충만해지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 '아이가 똑똑한 집, 아빠부터 다르다' 32 - 33 페이지 중에서 인용>


내가 산후조리원에서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들을 안고 분유를 먹이는 시간이다. 아내는 아들에게 영양만점인 모유를 줄 수 있지만,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분유뿐이다. 위에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갓 태어난 아들을 내가 아내보다 먼저 안아보았다는 것도 무척이나 감격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몇 초간 아들을 내 품에 안고 느꼈던 생명의 신비와 따듯함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들에게 분유를 먹이는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감동을 매일매일 느끼고 싶은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왕절개 수술은 아내에게는 고통스럽기만 한 기억이다. 그렇지만 초보 아빠인 내게는 아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계기가 됬다. 퇴근 후, 산후조리원으로 걸어가다가 '제왕절개야, 고마워!'라고 혼잣말하고 피식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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