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아들과 함께 지낸 밤, 생각해본 것들
5월 6일에 태어난 아들이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거쳐서 집에 왔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 때까지가 너의 자유시간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늘 그렇듯 현실은 마주하지 않는 이상 실감할 수 없다. 아내와 아들이 2주간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단호한 충고를 실감할 수 없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회사에는 오전에 산후조리원에 들렸다 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오전 7시에 신생아용 카시트를 장착한 차를 몰고 산후조리원으로 갔다. 산후조리원 주차장이 넓지 않아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한 자리가 비어있어 주차를 했다. 신생아용 카시트를 장착하고 빼는 것을 여러 번 연습했지만, 뒷문을 열고 겨우 카시트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카시트 밑 부분에 바퀴를 펴서 유모차 형태로 만들었다. 차문을 잠그고 산후조리원으로 걸어가다 주차된 차를 다시 보았다. 이제까지는 주차할 때 빈 자리만 있으면 충분했는데, 이제 생각할 점이 한 가지 더 생겼다. 유모차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생아용 카시트가 차 뒷 좌석에 있기 때문에 뒷문이 활짝 열려야만 이 카시트를 분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 대부분의 주차장은 주차를 하고 운전자가 빠져나오기도 비좁다. 산후조리원 주차장도 예외는 아니라서 나갈 때 아들이 앉아있는 카시트를 뒷좌석에 넣으려면 차를 앞으로 이동시키는 수 밖에 없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내가 있는 산후조리원 객실로 말끔하게 목욕을 마친 아들이 도착했다. 유모차에 앉는 것을 싫어하면 안될텐데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 유모차에 앉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가만히 잘 있었다. 2주 동안 아들을 예뻐해주고 잘 보살펴주신 산후조리원 직원분들께 인사를 하고, 바로 BCG 접종을 하기 위해서 근처 소아과로 갔다. 소아과까지 거리는 얼마되지 않는데, 골목길로 이동을 하니 꽤 차가 막혔다. 산후조리원에서 약 30분쯤 차로 이동을 해서 소아과에 도착했다. 내가 소아과에 미리 전화를 해서 주차장이 있는지 확인을 했었고,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있는 소아과이기 때문에 상가 건물 뒤쪽으로 주차장이 있다고 했다. 주차장은 있었다. 다만 주차 관리인 아저씨는 뻐끔뻐끔 담배를 피고 있었고, 차를 빠꾸로 들어와서 주차를 하라고 하셨다. 열심히 후진을 해서 좁은 공간에 평행주차를 하고 보니, 아들 옆에 앉은 아내가 문을 열고 내릴 수가 없었다. 다시 차에 시동을 켜고 조금 이동해서 아내가 먼저 내리고 주차를 했다. 운전석 뒤쪽 문을 열때 주차 관리인 아저씨는 담배를 다피우셨고, 문도 활짝 열 수가 있어서 카시트는 어렵지 않게 분리했다. 카시트를 유모차로 변신을 시킨 후, 아파트 상가 건물 3층에 있는 소아과로 갔다. 나는 평소에 운동 삼아서 10층 이하는 계단을 이용하는데, 당분간 아들과 함께 외출을 하면 꼼짝없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유모차가 들어가니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소아과에 도착했다.
어른도 싫어하는 주사를 신생아가 맞을 때 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들은 신생아답게 적당히 울었다. 마침 분유를 먹을 시간이라 젖병을 입에 물리자 바로 울음을 그쳤다. 나는 아내와 아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사무실로 가야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운전을 해서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집에 약 3주만에, 유모차에 탄 아들은 처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가 집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집 근처 지하철역에 내렸다고 카톡이 왔다. 카톡으로 길을 안내해드리고, 몇 분이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처음 보는 손자를 안고 좋아하셨다. 문득 내가 다른 뭘해드려도 저렇게 기뻐하시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들통을 달라고 하시더니 능숙하게 미역국을 끓이셨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고, 나는 바로 사무실로 갔다.
오후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아내가 카톡으로 아들 사진을 보내주었다. 집에서 잘 있는 것 같았지만, 모유수유를 거부하고 분유를 먹겠다고 해서 한 30분을 빽빽거리면서 울었다고 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아들이 먹을 분유를 주문했다. 온라인 최저가 검색도 아니고, 맘카페 중고장터에 올라온 것을 찾아 판매자와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주문을 완료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 외에 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산후조리원은 신생아실 소독 시간을 제외하면 언제든지 아들을 신생아실에 맡길 수가 있었다. 분유가 부족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전화 한 통만 하면 쉽게 도움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제 도와줄 사람이 없는 밤이 왔다. 출산 후에 여러가지 이유로 잘 먹지 못한 아내를 위해서 저녁에는 호주산 갈비살을 구어주려고 사다두었는데, 아내에게는 아들의 밥이 먼저였다. 아내가 유축을 마치고 저녁 8시 30분에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녁밥을 먹는 동안 아들은 잘 잤고, 이후에 대변을 한 번 보았다. 아들이 대변을 본 후에 화장실 세면대로 데려가서 엉덩이를 닦아주는 일도 조리원에서 했던 일이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와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면 자정이 넘어서 마지막 수유를 한 후에도 아들은 우리와 지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집에 있는 아기 침대에 누운 아들이 흑백 모빌을 보면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내와 나는 우리의 의지대로 밤잠을 잘 수 없었다. 아들은 새벽 1시와 새벽 4시 30분쯤 한 번씩 일어나서 분유를 먹었다. 한 사람이 분유를 타면, 다른 한 사람은 아들을 달래주어야 하고, 아내와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서로 도와야만 했다.
새벽 6시 정도에 잠에서 깼다. 멍하니 누워서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에 참 여러가지 생각을 했는데, 실체를 부여할 수 있게 정리된 문장은 하나 뿐이었다.
아들이 나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우리집에서 지내는 것이 행복한 현실이라면, 나와 아내가 마음대로 밤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행복한 현실을 위한 불가피한 조건이다.
산후조리원에서 매일 아침 목욕을 하는 습관 때문인지, 아들은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아들과 함께한 정신없던 첫날밤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