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영화 3] 레이스

트렉 위에선 누구나 자유다!

by sposumer

<레이스> 2016, 스티븐 홉킨스

https://www.imdb.com/title/tt3499096/?ref_=fn_al_tt_1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 1988년 서울 올림픽 육상경기를 작은 TV화면으로 보면서 생각했다. '달리기는 흑인 선수들이 짱'이구나!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이 맞붙은 남자 100m 종목 뿐이 아니었다. 여자 100m, 200m, 400m 계주에서 우승했고, 트랙 위의 패션모델으로 불렸던 그리피스 조이너의 당당한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육상 종목의 선수들이 각 종목에 걸맞는 멋진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 조각상처럼 가장 멋진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칼 루이스였다. 칼 루이스는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100m, 200m, 멀리뛰기, 400m 계주까지 우승하면서 육상 남자 단거리 4관왕이 되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칼 루이스의 업적을 48년 전에 달성한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가 주인공인 '레이스(RACE)'다.

Race 01.jpg <사진 1. 왼쪽에서 두 번째 붉은 싱글렛을 입은 오하이오 주립대 육상부 시절 제시 오언스 / 사진 출처: IMDB>

영화는 가난한 가정에서 오하이오 주립 대학 육상부로 진학한 제시 오언스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제시 오언스는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팀 훈련에 매진하지 못하고, 미식축구팀으로부터 흑인이라는 이유로 샤워실을 함께 사용하지 못하는 인종차별을 당한다. 하지만 육상팀 코치인 래니 스나이더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서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다. 영화는 흑인 올림픽 4관왕이라는 결과 만을 알고있는 관객들에게 이 4개의 금메달에 가려진 사소한 사실들을 담담히 보여준다.

제시 오언스가 미국 내 육상 경기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면서 결혼 상대자가 아닌 여성과 교재로 흔들리는 모습,히틀러가 베를린 올림픽을 이념적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로 미국 올림픽위원회 내에서도 찬반 논의가 치열해서 미국 대표팀 참가가 마지막까지도 불확실했던 것, 흑인인권단체들이 제시 오언스에게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지 말라고 부탁해서 괴로워하는 것, 스포츠맨십을 바탕으로 제시 오언스를 도와준 독일 멀리뛰기 대표 선수 루츠 롱, 올림픽 준비 위원장인 괴벨스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제시 오언스를 영상에 담아서 후세에 전달하고 싶어하는 여성 영화 감독 레니 리펜슈탈, 괴벨스의 덫에 걸려 부적절한 결정을 하게되는 미국올림픽위원회 에이버리 브런디지까지...영화를 보면서 내가 모르고 있던 사소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래니 스나이더 코치의 헌신도 대단하다. 미국 올림픽 대표팀 코치진으로 선발되지 못했지만 사비로 베를린까지 동행하고, 살벌한 분위기의 베를린에서 유명한 스파이크 제조자인 아디 다슬러(아디다스의 창업자)를 찾아 제시 오언스의 스파이크를 받아온다.
영화 속의 제시 오언스의 훈련, 경기 장면은 레트로한 트랙 스미스 의류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최선을 다하는 육상선수들의 모습은 여러 번 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멋지다. 제시 오언스가 타고난 재능 외에도 래니 스나이더 코치와 함께 100m를 달리는 동안 스텝(step)수를 파악하고 맞추기 위해서 훈련하는 장면, 스타트 시에 최대한 상체를 낮춘 자세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훈련하는 장면도 흥미롭다.영화에서 아쉬운 장면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할 수 밖에 없는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의 모습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실제 촬영한 육상 경기 모습과 합성을 했기 때문에 다소 어색한 느낌이다.

물론 이상 언급한 사소한 사실들을 알게 되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긋지긋한 인종차별이다. 영화는 올림픽 4관왕이라는 성과를 올린 제시 오언스에 대한 인종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레이스(race)'라는 영어 단어는 '경주'라는 뜻 외에도 '인종'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영화는 제목에서 이 중의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직도 흑인 인종차별은 계속되고 있고, 아래 소개할 충격적인 사망 사고 때문에 '레이스'라는 영화를 꼭 소개하고 싶다.

2020년 2월 23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조깅을 하던 25살 흑인 청년 아머드 알버리가 백인 남성 그레고리 맥마이클(64)과 그의 아들 트래비스 맥마이클(34)에게 총격을 받아서 사망했다.

동네를 조깅하던 청년이 총격으로 숨지는 36초 영상이 공개되면서 미국 내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었고, 맥마이클 부자는 사건 발생 74일 만에 체포되었다. 미국에서는 아머드의 생일인 5월 8일에 총격 사건 발생일인 2월 23일을 상징하는 2.23마일을 걷거나 달린 후에 소셜 미디어에 인증 사진과 #IRUNWITHMAUD을 함께 게시하는 추모 행사(dedicated distance run)도 진행되었다.

'레이스' 영화 포스터에 헤드 카피인 "트렉 위에선 누구나 자유다!" 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인종차별이 없어지는 날까지 달려야겠다!!


PS 흑인 인종차별과 관련된 스포츠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등번호 42번을 영구 결번으로 남긴 야구의 레전드, 재키 로빈슨의 이야기 '42'를 추천한다. 'LA컨피덴셜' 각본으로 잘 알려진 브라이언 헬겔랜드 감독,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만 주연에 해리슨 포드까지 조연으로 등장하니 믿고 봐도 좋다!


* <달리는 비디오> 시리즈는 <러너스월드 한국판> 인스타그램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unners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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