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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밥을 보낸다!

배민커넥트 100건 달성기

by sposumer

2021년 4월 1일, 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됬다. 자전거로 배달을 하는 '배민커넥터'가 된 날이다.

<사진 설명: 자전거 안장 위에 살포시 놓아둔 민트색 배민커넥트 자전거 헬멧>

'배민커넥트'를 해볼까 생각하게 된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때문이다. 강동구청과 매우 가까운 위치이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면 송파구다. 강동구와 송파구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전거로 배달을 하는 '배민커넥터'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흠...운동도 하며서 돈도 벌면 괜찮겠는데...' 이런 생각을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은 다니던 회사와 근로계약이 3월말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17년간 10군데 회사에서 근무를 했는데, 보통은 수습 기간이나 계약직 기간 종료 전에 새로운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약직이 종료되는 시점에 다시 정규직으로 입사 지원을 해야 했다. 입사 지원을 하는 것 때문에 서류 접수를 완료하고는 면접까지 여유가 아닌 여유가 생겼다.

<사진 설명: 급한 마음에 정지선 너머에 서있는 배달 오토바이들>

나는 평소에 배달 음식을 즐기기는 않아서, '배달의 민족' 앱을 설치하고, '배민커넥터' 모집 배너를 눌렀다. 나는 어떤 사람, 어떤 배달 수단을 사용할 것인지 등을 차례대로 입력하고, 접수를 완료했다. 접수 완료가 되니 안전교육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가 왔고, 이 링크에 따라서 착실하게 영상을 봤다. 온라인 교육의 마지막은 늘 온라인 시험인데, 기분좋게 온라인 시험도 합격(물론 시험문제가 상식적이라서 떨어지기는 어렵다). 배민커넥트 때문에 큰 투자를 하지는 않았다. 외국계 자전거 회사도 1년간 다닌 적이 있어서, 쓸만한 자전거는 가지고 있었다. '배민커넥터'는 배달 가방을 매고 자전거를 타야하기 때문에 배달 가방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려면, 내 취향과 무관하게 허리를 세우고 라이딩을 하는 MTB(라이딩을 할 산이 근처에 없어서, 산악자전거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를 배달 수단으로 선택해야만 했다. 초기 투자는 바로 '배달 가방'과 자전거용 스마트폰 거치대였다.

<사진 설명: 가게 도착하면 분리 가능한 스마트폰 거치대>

스마트폰 거치대는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 모델에 맞추어서 온라인 주문을 완료. '배민커넥트' 배달 가방은 배민커넥트를 하는 사람들만 구매가 가능하도록 로그인이 된 상태에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온라인 스토어로 가면 구매가 가능했다. 배달가방과 헬멧 세트 상품이 38,750원. 거금을 들여서 구매했는데, 집에 택배가 도착하고 나서야, 자전거 헬멧은 원래 쓰던 것을 쓰면 될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일명 '비앙키' 칼라인 민트색 배민 헬멧은 나쁘지 않다)

<사진 설명: 아산병원 어린이병동에 쿠키 배달. 이 배달통에는 피자가 들어갈까요? 안들어갈까요? 정답은 글을 읽다보면 나옵니다>

언제나 '첫'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은 의미가 있다. 나의 첫 배민커넥트 배달은 내가 상상하던 밥이 아니라, 원두커피였다. 픽업 장소인 동네 커피숍으로 가서 '가게 도착' 버튼을 잽싸게 눌렀다. 커피숍 문을 열면서 '안녕하세요?'를 외치면서 눈은 배달 물품을 찾았다. 비닐 봉투에 든 커피원두를, 아니 비닐봉투에 붙어있는 영수증에 있는 주문번호가 맞는지 확인하고 '픽업 완료' 버튼을 삑!(픽업 버튼은 가게 도착 후 5초가 지나야 놀러집니다) 비닐봉투를 소중하게 배달가방에 넣고, 배달주소를 확인했다. '배민커넥트' 앱을 카카오지도와 연동해두어서, 차를 운전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출발.

배달주소인 아파트까지는 잘 도착했으나, 아파트 입구를 찾지 못해서 아파트 주변을 2바퀴 빙빙.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달가방을 열어서 비닐봉지를 손에 들었다. 비대면 배달이 더 많다고 들었는데, 고객요청에 비대면이 아닌 것이라고 되어 있어서 초인종을 누르는 우리 엄마 나이대로 보이는 분께서 '고마워요'라고 하면서 비닐봉투를 받으셨다. 전달을 마치고 나서 '배달완료' 버튼을 누르니, 이게 뭐라고 아주 뿌듯했다. 그리고 바로 뜨는 '3,000원'이라는 숫자는 더욱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첫 배달은 대면 배달이었는데, 실제로는 비대면 배달이 압도적으로 많다. 문 앞에 배달음식을 놓고 아파트라면 호수가 잘보이게 인증샷을 촬영하고, 이 인증샷이 서버로 전송되어야 '배달완료'가 된다)

무엇이 내가 배민커넥트를 계속 하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내 배민커넥트 배달은 계속되었고, 이제 100건 배달을 완료하고 뱃지도 획득했다.

배달 100건으로 전업으로 배달일을 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내가 완전히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는 이해할 수가 있었다. 첫 번째가 '교통 신호 위반'이다. 자전거로 배달을 하면서 앞에 보이는 빨간 신호등과 정지선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과 다른 것이었다. 특히 내가 배달경로 방향을 잘못 잡았거나, 이미 배달도착 시간이 지난 상태라면 평소와 다르게 자연스럽게 신호 위반을 하게 되었다. 이 불법이 내 수익에 극대화인지 배달 주문자의 편익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두 번째는 주방과의 마찰이다. 나는 가게에 이미 도착을 했는데, 가지고 갈 음식은 언제 나올지 모른다. 여기에 내 앞에도 다른 배달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고, 출입문을 열고 또 다른 배달기사님이 들어온다. 이 정도가 되면 한 마디가 안나올수가 없다. 물론 이 한 마디는 아름다운 말이 아니다. 주방은 주방대로 조리에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배달을 가야하는 사람들은 빨리 배달 음식을 받아야 한다. 참, 세상에는 접점을 찾기 어려운 평행선 같은 일이 많다.

배달을 하면서 깨달은 점도 있다. 첫 번째는 AI는 아직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 강동구에서만 배달을 하다가 송파구에 배달비가 더 비싸게 책정되어 있어 송파구로 진출을 했다. 송파구는 재건축 이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된 곳들이 많다. 규모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파트를 따라서 한 바퀴 달리면 3-5km가 나오는 단지들이다.(내가 그렇게 달려본 적이 있어서 안다) 하지만 주소 체계에서는 이 아파트들은 동일하다. 101동에서 301동까지 갈때 3km 거리라고 해도, 도로명 주소 앞은 동일하다. 그리고 고층 아파트를 엘리베이터로 이동해야 하는 것도 고려하지 못했다. 아파트 앞에 도착했지만 28층까지 배달을 가는데는 얼마나 거릴까? 운이 정말 없으면 10분이 걸린다.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간이라면, 3분 이상 기다려서 탄 엘리베이터가 한 5번은 서야한다. 배차 방식은 일반 방식과 AI 배차 방식이 있는데, AI가 배달 동선을 잘 구성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위 경우처럼 좀 모자란 경우들이 있었다.

<사진 설명: 25층이면 양호한 편. 급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동으로 배달음식 봉지를 한 손에 쥐게 된다>

배달을 하면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간단한 자전거 고장 정도는 괜찮았다. 그 정도는 대강 고칠 줄 안다. 배달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긴 피자와 전 세트를 받았을 때도 좀 당황했지만 피자를 넣는 비닐에 넣어서 한 손에 들고 배달했다. 정말 당황스러웠던 적은 배달주소가 잘못 기재된 것이었다. 주문한 사람에게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고, 전화를 한 번 더하니까 받았다. 그리고 너무 태연하게 자신은 배달 주소를 그렇게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있는 주소를 캡쳐해서 보내주고 싶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 정말 어렵게 배달을 완료했는데, 비대면 배달도 아니라서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는데도 너무 태연하다. 주문한 사람 품에 안겨있는 강아지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배달을 하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인사 한 마디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배달일이 어차피 용역 서비스이고, 가게에서 배달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기사님, 수고 많으세요. 잘 부탁드려요'라고 말하는 가게랑 개인통화를 하느라 눈길도 안주는 가게 중에서 내가 소비자가 된다면 어떤 곳을 갈까? 나는 배민커넥트 일을 하고 나서 가기 시작한 가게들이 생겼다. 한 곳은 200ml도 안되는 음료수 한 캔 때문에 가게 되었다. 모텔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들어있는 그런 음료수들 말이다. 배민커넥트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가게들이 3만원 이상 주문을 하는 고객들에게는 음료수 한 캔을 서비스로 주는 경우들이 많아다. 그런데 이 음료수 한 캔을 서비스로 주는 사장님들의 부탁 방법에 차이가 있다. '아저씨, 음료수 드시지 마시고 꼭 배달하세요! 저번에도 음료수 마셔 버려가지고...' 이런 사장님이 있다. 반면에 '아저씨, 더우시죠. 여기 음료수 두 개요. 한 개는 더우니까 아저씨 드시고, 하나는 같이 배달해주세요. 고맙습니다!' 배민커넥트를 하고 나서 내 돈을 내고 음식을 사먹은 가게는 당연히 후자다.

아, 정말 웃긴 일도 있었다. 라디오 방송 사연으로 나올 만한 이야기다. 배달주소에 따라서 건물은 찾았는데, 건물 출입구를 못 찾아서 뺑뺑 돌면서 진땀을 빼고 있는데, 내가 다녔던 자전거 회사 업무용 차가 나타났다.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진땀을 빼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미 배달 시간에 늦었고, 직원들도 업무시간 중이라 같이 사진 한 장만 찍고 해어졌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우연이다.

예전에 레몬 슬라이드를 병입구에 끼워서 마시던 맥주인 '코로나'를 참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제 어디가서 나 코로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다. 맥도날드에 가서 카운터가 아닌 무인 주문을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얼마 전에 장인어른을 모시고 프랜차이즈 갈비집에 갔는데, 로봇이 음식 서빙을 하고 있었다.(시범운영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캡슐 커피가 아무리 좋아져도 나는 사람이 직접 정성껏 내린 드립 커피가 좋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업무시간 주에 돌봐주고 있는 것은 로봇이 아니다. 말도 안통하는 여러 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보육교사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푼 돈을 지불하면 되는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어떤 서비스를 대신해주는 그 누군가도 감정을 지닌 사람이다.

난 앞으로도 배민커넥트를 살살할 생각이다. 비대면 배달 요청이 더 많기는 하지만, 품 안에 꼬물꼬물하는 아기를 안은 아기 엄마의, 떡볶이가 왔다고 펄쩍펄쩍 뛰는 꼬마의, 식탁에 수저를 놓으라고 외치는 할머니의 '고맙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들을 때에 참 기분이 좋다. 이 한 마디는 배달 한 건을 하고 나서 받는 몇 천원보다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배민커넥트 앱을 켜고 10분 동안 동네를 돌아도 배달요청이 안들어올 때, 내가 불안한 것은 이 '고맙습니다'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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