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만든 또 다른 풍경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침에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지각'일 것이다. 임원급 이상은 좀 다를 것 같은데 임원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다. 지옥철, 자가용, 자전거 등 어떤 교통수단으로 출근을 하던지 지각은 피해야만 하는 적이다. 7월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시작했는데 코로나 확산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어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재택근무는 처음이라서 아직 많이 낯설다. 2주간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재택근무를 해보고 느낀 점을 적어본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4살 아들을 얼집(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키도 1m가 넘고 몸무게도 17kg 정도 되지만, 아직도 무등을 타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얼집까지 무등을 태워달라고 한다. 등에는 땀이 줄줄 흐르지만 그래도 아들이 좋아서 어깨춤을 추는 것이 느껴지면 무거운 어깨가 가벼워진다. 얼집에 도착해서 아들이 의젓하게 나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을 해주는 것을 보면서 근거없는 안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 안심은 느긋하지는 못하다. 8시 55분에서 9시 사이에 회사 재택근무 시스템에 로그인을 해야 한다. 8시 40분에 아들과 집에 나와서 등원을 시키고 시간을 확인하면 8시 50분. 바로 돌아가서 로그인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시스템 접속이 안되기 때문에 노트북을 켜고, 전산 보안 때문에 한 세 차례 암호를 입력하고 재택근무 웹사이트로 가서 로그인을 해야 한다.
재택근무 로그인을 하고 나면, 집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커피 한 잔을 만들 수가 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음악도 골라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플레이! 이렇게 하면 주변 소음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가 있다. 집이 사무실보다 시원하지는 않지만, 원래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선풍기를 틀면(선풍기는 꼭 고정이 아니고 회전이어야 한다) 일할만 하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 점심이 된다. 점심도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참 좋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이든 눈 앞에 보이는 컵라면이든 집어서 대충 먹으면 된다. 아침을 많이 먹어서 뭘 먹고 싶지 않다면, 점심시간은 나만의 자유시간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재택근무의 빛보다는 그림자가 더 많이 보인다. 나는 그다지 영특하거나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내지는 못한다. 회의실에서 모여서 말도 안되는 것 같은 논의를 하다가 보면 좋은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재택근무로는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줌(ZOOM)이라는 신기술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줌 회의와 옹기종기 한 회의실에 모여서 진행하는 회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진짜(offline) 회의를 택하겠다.
새로운 고객사, 아니 사람을 만나야만 일이 진행된다고 하면 재택근무의 한계는 더 명확해진다. 물론 이메일로 제안을 보내고 전화로 설득을 할 수 있겠지만, 직접 노트북에 제안서를 담아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설명하는 것과 비교를 한다면 그 효과는 떨어진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있더라도 첫 인사는 실제로 만나서 해야만 업무에서도 성과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만나서 설명을 한다면 고객사의 눈치를 보면서 살짝 제안 내용을 조정해볼 수도 있는데, 줌 혹은 온라인 회의로 이런 것은 불가능하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두었지만 더운 바람이 분다. 부엌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다가 보면, 땀이 뻘뻘 나는데 이럴 때 빨리 샤워를 할 수 있는 것은 참 좋다. 무더운 오후는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오후 3시 30분 정도가 되면 얼집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피해서 근무지를 카페로 옮겨야 한다. 그다지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별다방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아침부터 일하기 좋은 자리에는 노트북을 펴고 앉은 사람들로 꽥 차있다. 다행이 동네에 괜찮은 카페들이 있어서 돌아가면서 가는데, 솔직히 업무가 잘 안된다. 노트북이 꺼지면 안되니까 전원 플러그가 있는 자리어야 하고, 카페는 원래 소통의 공간이니 주변도 시끄럽다. 업무 전화를 카페 안에서 하면 말소리가 잘 안들려서 나가서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조용해서 일을 할만한 카페는 사진 찍기도 명당이라는 것도 문제다. 정말 카페옆 자리에서 몇 백장씩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 때는 정말 힘이 든다. 카페 주인도 이런 손님들이 달갑지는 않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어떤 손님이라면 OK일 수 밖에 없다.
퇴근도 조금 복잡하다. 18시부터 온라인 퇴근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온라인 퇴근을 위해서는 오늘 한 일들을 간략히라도 적어서 첨부하여 결재를 올려야 한다. 그래도 카페에서 야근(?)을 하지 않는다면, 카페에서 걸어서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한 시간 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역 코인라커에 노트북 가방을 넣어두고 잠깐 달리기를 할 수도 있다.
재택근무의 좋은 점들도 있지만, 나는 업무 진도가 빨리 안나가는 재택근무보다는 출근을 하고 싶다. 아, 이제 회식은 꿈도 안꾼다. 이런 재택근무가 언제쯤 끝나려나?
PS. 이 글을 쓰다가 '작가의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그 사이에 소원이 이루어졌다. 우리 팀은 업무진도에 문제가 있어서 앞으로 전원 출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