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퇴사를 하면서...
2004년, 군대를 전역하고, 라면이 대표 상품인 식품 브랜드 신입사원이 되었다. 17년이 지난 2021년 7월, 9번째 회사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갑자기 '퇴사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앞서 거창하게 소개한 식품 브랜드는 입사 5개월 만에, 공채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퇴사했다. 이후에 가장 오래 다녔던 곳은 제안서 파워포인트 파일을 만드는 알바로 시작했던 홍보대행사이다. 입사할 때 사무실 한 층을 사용하던 이 곳은 나중에 전체 직원수가 세 자리수가 넘는 곳으로 성장을 했다. 이 대행사에서 두 번째 퇴사 때는 정말 성대한 퇴사 행사(?)를 했다. 소속팀은 물론이고, 다른 팀에 친한 직원들이랑 밥도 많이 먹고, 술도 많이 마셨다. 퇴사하는 날 마지막 이메일에는 한 달 정도 고민해서 고른 로버트 프로스트의 '걸어 보지 못한 길'과 나름의 감상을 적었다.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9번의 퇴사, 10번째 입사를 앞두고 생각을 해보니 남들보다는 여러 갈래길을 돌아다닌 것 같다. 물론 각 회사마다 재직 기간이 길지 않으니까, 갈래길 초입에서 돌아섰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퇴사하는 날, 회사 이메일로 뭔가를 적어서 전체 메일을 보냈었다. 이 마지막 이메일에는 여러가지 내용 중에 떠나가는 회사에 대한 충언이 포함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충언이었던 것이고, 이 충언에서 비난의 대상이 누군가가 곤란해지기도 했고, 나중에 내가 별도로 사과를 한 적도 있다. 요즘은 퇴사하는 사람들이 전체 메일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회사 카톡방에서 한 마디 정도를 하고 카톡방을 나가는 경우가 더 흔한 것 같다. 9번째 회사에는 업무 때문에 만들어진 카톡방이 너무 많았다. 점심시간에 족히 10개는 넘는 카톡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전체 카톡방을 나서기 전에 뭔가 한 마디를 남길까 생각하다가 아무말 없이 나왔다. 정말 조용히 회사를 나서고 싶었는데, 경영지원팀에서 간단한 송별회를 준비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체 카톡방에서도 뭔가 이야기를 하고, 간단한 송별회라고 해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또 할 말이 없었다.
첫째, 떠나는 회사를 위한 충언을 하지 말자. 회사를 위한 충언은 회사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에 개선을 해야할 사항이 많지 않고, 본인의 위치에서 노력에 따라 개선이 가능하다면 그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1분만 생각해도 회사에 대한 충언이 머리 속에 넘쳐난다면, 그 회사는 다닐 필요가 없다. 당신이 회사를 전면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경영진이라면 모를까, 일개 사원이 할 수 있는 개혁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회사에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가 필요하다면 재직기간 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두리뭉실한 내용이 무난하다.
둘째, 인수인계를 대충하지 말자. 별로 인수인계 할 것이 없다하더라도 회사마다 각자 문서 양식이 있고 이에 따라서 파일을 작성도 해야만 한다. 회사에서 지급을 받아서 사용하던 노트북이나 외장하드를 정리하는 것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누가 내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인수인계 자료는 자세할 수록 좋다. 새로운 회사에서 시작한 일 자체가 새로운 일이라서, 맨 땅에 해당을 했던 경우를 제외하고, 전임자에게 충분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다면 원활하게 업무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전임자에게 충분한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인수인계 자료 작성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내가 했던 일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또, 인수인계가 미흡하면 나중에도 관련해서 전 회사에서 원치않는 연락을 받게 될 수 있는 점도 꼭 생각하자.
셋째, 입사 확정 전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요기 베라(Yogi Berra)의 말은 야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이 확정될 때까지, 이직 추진이 진행 중인 것을 재직 중인 회사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좋다. 이 회사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인사업무 담당자가 포함된다. 이직이 내가 생각한대로 착착 진행될 때쯤에 재직 중인 회사 누군가에게 이직이 진행 중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불확실한 것이 많아진 세상이라서 최종 합격했지만, 새로갈 자리가 갑자기 없어지는 경우도 주변에서 보았다. 내가 본 가장 황당한 경우는 새로갈 자리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국내 지사 규모가 갑자기 축소되거나, 철수하는 경우도 봤다. 입사가 확정될 까지는 재직 중인 회사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비밀을 잘 유지하는 것이 좋다.
넷째, 퇴사 후에 바로 일하지 말자. 새로운 회사로 갈 경우, 새로운 회사의 인사과 혹은 경영지원팀에서는 가급적 빨리 입사를 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새로운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이다. 나는 퇴사하고 대부분 하루도 쉬지 않고, 바로 새 회사로 가게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조금은 쉬었다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누구나 새로운 회사를 포함해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연차에 상관없이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와 달리 선택사항이다. 1년 이하로 근무를 해서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와 퇴직금을 받는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최대한 근무공백을 줄여서 급여에 손실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30대때는 새로운 곳에서 빨리 일하고 싶어서 바로 출근하기도 했지만, 이제 마흔이 넘으니 조금 쉬었다가 가고 싶다.
퇴사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꽤 많을 것 같았는데, 적다보니 위 네 가지 뿐이다. 나는 여러 곳에서 열심히는 일했다고 생각하지만, 퇴사를 했을 때 내 뒷모습이 아름다웠는지는 확신이 없다. 각기 다른 아쉬움들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