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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달리기 이야기

10번째, 달리기에 J커브는 없다.

by sposumer

사랑하는 원이야,

지난 일요일은 아빠의 43번째 생일이었다. 너랑 다르게 아빠는 생일이라고 생일선물을 바랄 나이는 아니다. 예전에는 생일 핑계로 술이라도 진탕마셨는데 이제 코로나 때문에 그런 술판을 벌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늘 비슷한데 생일이 되면, 이제껏 아빠는 뭘하고 살았는지, 뭐라도 하나 달성한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번 생일에는 이런 고민들이 좀 덜했다. 니가 쑥쑥 자라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빠도 뭔가 큰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도와주고 싶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 아빠는 '달까지 가자'라는 소설을 읽었다. 제목만 들으면 무슨 내용인지 잘 짐작이 안되지? 소설의 소재는 '가상화폐'란다. 아빠는 경제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가상화폐'라는 것을 잘 설명을 하거나 여기에 투자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상화폐' 때문에 울고 웃고 있단다.


그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가 깊이 바라왔던 게 있다는 것을. J. 이거였다.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 그래서 내가 기다려왔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모양, 이런 곡선이었다는 진실을 그 군간 섬광처럼 깨달았다.
나는 매일매일 모래알처럼 작고 약한 걸 그러모아 알알이 쌓아올리고 있었지만 그걸 쌓고 쌓아서 어딘가에 도달하리라는 기대도 희망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냥 그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그런 동작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엇다. 여태껏 쌓은 건 지나가는 누군가의 콧김 같은 것에도 쉽게 부스러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구태여 직시하지 않을 뿐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달까지 가자(장류진) 중에서 -
달리기에 도움이 많이 되는 #플랭크 동작. 원이가 아빠 플랭크를 도와주고 있네 :)

책을 읽기 시작해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다 읽었다. 사건의 전개가 빠르지만 무척이나 속도감이 있는 소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빠는 이 J커브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상화폐 뿐 아니라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급등하기를 바라지.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주식의 가격의 급등은 그럴 만한 호재가 있다면 가능하고, 주식시장은 큰 손으로 불리는 대형 투자자들에 의해서 조작도 가능해.

하지만, 달리기에 이런 J커브는 불가능하다. 장거리 달리기의 매력 중 하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차근차근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반대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갑자기 장거리 달리기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불가능해. 별일이 다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만약 갑자기 장거리 달리기 실력이 좋아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빠는 별로 부럽지는 않다. 자신이 노력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성공을 했을 때, 그렇게 기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래.

너에게 이렇게 말을 하지만, 아빠도 가끔 훈련을 게을리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달성하기 어려운 달리기 목표를 세우는 적이 있단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훈련을 게을리 했을 때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거나 겨우 달성은 하지만 아주 혼줄이 난단다. 우리 원이는 아빠가 세워둔 도미노 블록을 넘어뜨리는 것만 좋아하지? 하지만 이 도미노 블록을 차근차근 세우지 않으면 도미노 블록이 연달아 넘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어. 앞으로 우리 원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J커브를 생각하지 말고, 정직한 땀을 흘리면서 차근차근 해나가면 좋겠다. 아빠도 앞으로 허무맹랑한 J커브를 아빠 인생에서 싹 지워버릴께! 약속!!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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