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 소주 한잔만 하고 갈께

오랫 만에 끄적거려본 시

by sposumer

아빠, 소주 한잔만 하고 갈께


자가용으로 상암동 사무실에 출퇴근 하는 후배 덕에

한 30분 집 근처에 도착했다.

기분은 후배와 뭐라도 한잔하고 싶었지만,

자가용을 태워준 후배에게

대리운전비를 줄 것도 아니라서

고맙다 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었다.


조금 일찍 귀가했지만,

저녁을 먹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

고깃집을 지나, 참치집을 지나, 편의점을 지나

일교차가 심해 쌀쌀하네.

어, 뿌연 창문이 보이는 오뎅집 앞.


원래도 혼자서도 가던 오뎅집.

이제 코로나 시대라서 혼자가 더 자연스러워.


원아! 아빠, 소주 한잔만 하고 갈께.

소주 한잔에 근심만 툭 털고 가려고,

집에 가서 니가 웃기 전에

아빠가 먼저 웃으려고.


원아! 아빠, 소주 딱 한잔만 하고 갈께.

니가 "아빠 술마셨어?" 물어봐도 들키지 않게.

너랑 실없이 웃으면서 재미있게 놀아주려고.


소주 한 잔만 하고 간다.

소주 딱 한 잔만 하고 간다.


한 잔에 권고사직,

두 잔에 실업급여,

세 잔에 재취업과 배민커넥트...

네 잔에 마실 때쯤 주변을 둘러보니

오뎅집에 있는 손님들은 하하호호 즐겁다.

아빠만 혼자 폼잡고 소주를 마시고 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웃을 때는

반달 눈썹이 되는 우리 원이 얼굴이 생각이 난다.

맞아...아빠는 하나뿐인 원이 아빠니까...

이제 막잔이야.

빨리 갈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흔부터 시작하는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