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 읽고 쓰는 인간(장강명)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서가 먼저인지, 코로나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집 주변 도서관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찾아서 2권을 대출했다. 식사시간에 맞추어서 배민커넥트를 하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천호역으로 갔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반대편에 있는 자동 대여 및 반납기를 발견했고, 여기서 ‘책, 이게 뭐라고’를 발견했다.
나는 장강명 작가의 ‘표백’을 읽고 나서, 장강명 작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장 작가가 회사 생활도 해보고 신문사 기자 생활도 해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이유는 아니겠지만 이어서 발표한 소설들도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책인 ‘책, 이게 뭐라고’는 장강명 작가가 독서 팟캐스트인 ‘책, 이게 뭐라고’를 두 시즌에 출연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에피소드 성격인 이야기들을 제외하고는 본인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말하는 것과 쓰는 것에 대한 차이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우선 책에서 인상깊었던 구절들부터 소개하고 싶다.
사표를 낸 해에는 소설가로서 번 돈이 거의 없었다. 그다음해에는 5,200만 원쯤 벌었다. 그중 5,000만 원은 수림문학상 상금이었다. 2015년에는 1억 원 넘게 벌었다. 제주 4.3평화문학상 상금이 7,000만 원, 문학동네작가상 상금이 3,000만 원이었다. 거기에 책 인세도 좀 들어왔다.
2년 동안 1억 5,000만 원 넘게 벌었으니, 한국 소설가들 중에는 정말 손꼽힐 정도로 높은 수입을 올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지속 가능하지 않은 문학상 상금이었다. 2015년 지나갈 때 내 심정은 ‘와, 살았다, 생존했다’하고 놀라고 기뻐하는 마음이 반, ‘이제는 어떻게 하지?’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문학상 상금은 모두 선인세다. 수상작들이 매년 각각 1만 부씩 팔린다 해도 향후 몇 년 간은 내게 추가 수입이 없을 예정이었다.
P 24-5
자신에 수입에 대해서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밝힌 한국 소설가가 또 있을까?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와 듣기보다 우월한 행위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아마 그것은 이성과 감성, 자유와 평등처럼 가끔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쪽이 다른 쪽을 지배해서는 안 되는 수단이고 가치일 것이다.
P 43
요즘 나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를 상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포털 뉴스 댓글이나 인터넷 게시판,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단행본으로 만들어 이야기하는 사회, 정치와 언로과 교육 아래 사유가 있는 사회, 책이 명품도 팬시상품도 아닌 곳. 아직은 엉성한 공상이고, 현실성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꺼내기도 부끄럽다.
다만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지금보다 저자가 훨씬 더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은 하다. 그래서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제목의 에세이 겸 작법서를 준비 중이다. 저자들에게 자극을 주려면 독자들의 서평 운동도 있어야 할 것 가다. 논픽션 ‘당선, 합격, 꼐급’을 쓰면서 거기에 거창하게 ‘독자들의 문예운동’이라는 말을 만들어 붙였다.
P 100-1
가끔 책을 몇 만 권 이상 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일 같지가 않다. 가능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묘한 아이러니다.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니 독서가 칭찬받아야 할 일이 되었고, 한쪽에서는 책 읽기를 숙제로, 한쪽에서는 뽐낼 거리로 여기가 되었다.
P 105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짬이 났다고 등에 맨 백팩을 앞으로 돌려 내용물 중에서 읽던 종이책을 꺼내 펼치고 지난번에 멈춘 대목을 찾아 몇 줄 읽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다시 백팩을 앞으로 돌려 지퍼를 열고 거기에 책을 넣은 뒤 갈 길을 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휴대전화에 전자책 뷰어가 있다면 이 작업을 바지 주머니에서 한 손으로 꺼내 엄지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고 잠금 화면을 푸는 두세 단계로 줄일 수 있다. 그 차이가 꽤 크다.
P 111
전자책이 종이책과 비교해서 읽기 쉽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경우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는 종이책을 펴기는 애매해서 ‘밀리의 서재’를 본 적이 많다.
나는 책에서 글이 아닌 것에 대한 애정을 의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책의 변질에 저항하고 싶다. 그렇기에 돌고 돌아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내가 사인해서 보낸 책을 받는 분들은 그걸 중고 서점에 마음 편히 넘겨도 괜찮다.
P 119
운동을 열심히 하면 몸이 건강해져 자존감이 높아지고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덩치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독서와 인성의 관계도 그 정도 아닐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읽고 쓰는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일관성을 더 추구하며, 그래서 보다 공적이고 반성적이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웃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재수 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내가 그렇다).
P 156
모차르트는 뮌헨, 아우크스부르크, 만하임, 파리의 오케스트라에서 일자리를 얻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너무 어렸고, 가족들이 기대하는 연봉 수준도 지나치게 높았다. 이 기간에 모차르트는 연주회 수입과 레슨비로 생계를 유지했다. 오전에 작곡을 하고 오후에는 레슨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이 천재는 교회나 긍정에 소속된 것이 아닌 프리랜서 음악가로 살았는데 사실상 그런 직업을 창조한 셈이었다.
P 218-9
지금은 말하는 일과 쓰는 일에서 오는 수입이 달리는 자전거의 양쪽 페달 같다. 두 페달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밟아야 프리랜서 글쟁이라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달린다. 회사 다닐 때보다 분명 더 자유롭고 벌이도 썩 낫지만 한쪽 패달에서 발을 때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말하는 일도 재미있고 매력 있잖아? 너도 그럭저럭하잖아? 하고 자문하기도 한다. 회계의 문제가 아니라 각오의 문제이며, 바로 내가 이 상황을 선택하고 승인했음도 안다.
P 222
회사의 권고사직에 동의하고 퇴사해서 그런지, 빨리 나도 자전거의 양쪽 페달 같은 수입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세상에는 재미있어서 회사에 나간다는 사람도 있고 글 쓰는 게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니다. 소설 쓰는 일을 사랑하지만 즐겁고 재미있지는 않다. 예전에는 그런 적도 있었느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치거나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내 글쓰기 실력보다 더 빠르게 커져서다. 내 필력은 더 나은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을 때 아주 더디게 나아질 것이다. 나는 그 괴로움을 택하고 받아들인다.
P 248-9
나는 글을 잘 쓰지도 못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지만은 않다. 다만 배민커넥트 하지 않는 시간을 쪼개서 의무적으로 뭔가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 작가의 에세이집인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보면서 알 수 있었던 것보다 이번 책을 통해서 알게된 장 작가의 모습이 더 많다. 정기적으로 게재되는 장 작가의 중앙일보 컬럼도 계속 챙겨보고 있다. 특별한 어떤 각오를 하게 하는 것보다는 독자 각자가 독서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역활이 충분한 에세이집인 것 같다. 나도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좀 더 노력해봐야겠다. 자, 이제는 저녁 배달을 하러 나가야할 시간이다.
P.S. 책에 언급된 장 작가의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은 읽었는지 서평만 봤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다시 한 번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