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번 써봅시다(장강명 저)'를 읽고
요즘 도서관에서 장강명 작가가 쓴 책들 중에서 내가 읽지 못한 책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 한번 써봅시다'는 두껍지 않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우선 장강명 작가는 도입부에서 자신이 상상하는 사회가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내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다. 많은 저자들이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사람들이 그걸 읽고, 그 책의 의견을 보완하거나 거기에 반박하기 위해 다시 책을 쓰는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 포털뉴스 댓글창, 국민청원 게시판, 트위터, 나무위키가 아니라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눈다. 이 사회는 생각이 퍼지는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질을 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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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의 목표가 책을 쓰는 방법에 대한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사소한 지식 몇 가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책을 쓰는 법'을 다룬 책들의 이야기가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밀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책을 쓰는 법'이 수학공식처럼 잘 정리되어있고 이것만 따르면 좋은 책을 술술 쓸 수 있을까? 실제로 같은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쓰는 법을 다룬 책들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다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책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장 작가는 에세이, 소설 등 장르에 따른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공개하고 있다. 글감과 영감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내가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취재원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것을 주저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P.S.
염치가 없어야 한다. 신문기자와 소설가로 일하면서 취재원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딱 하나 꼽아본다면 이거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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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이 누구이든 "그게 무슨 뜻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조금 부끄러운 것 때문에 넘어가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점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쉽지는 않겠지만 좋을 글을 아니 책을 쓰기위해서는 실천해보고 싶은 일 중에 하나이다. 예전에 장 작가의 다른 에세이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전업 작가로 우리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조언 역시 참 도움이 된다. 출판사와 계약 시에 수익에 10% 이하를 부르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지 말라는 정확한 수치까지 포함된 조언은 정말 고마웠다. 책 말미에 이 책이 다시 한 번 '글 잘 쓰는 법을 알려달라'는 요구에는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달리기와 비교하여 설명한 장 작가의 설명에 100% 공감한다.
‘글 잘 쓰는 법을 알려달라’는 말은 ‘달리기 잘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런 요청을 받으면 “기초 체력을 키우고 하체운동을 열심히 하세요”라는 조언까지는 두루 할 수 있다. 더 자세히 알려달라는 요청을 다시 받는다면 “어떤 달리기 말씀인가요?”라고 되묻게 된다. 100미터를 달리듯 42.195킬로미터를 전력 질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칫하면 몸을 크게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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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마음에 드는 구절들은 이 글 마지막으로 모아두었다. 장 작가는 책에서 누군가의 글을 너무 많이 인용하는 것도 알맹이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달리기와 글쓰기의 비슷한 점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단기간에 실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7년간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꾸역꾸역 오랜 기간 달리기를 하다보면 자세든 기록이든 적어도 한 가지는 나아진다는 것이다. 더 많이 읽고 생각하며, 쉽지 않지만 하루 중에 일정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해야 한다는 뻔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글쓰기의 원칙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책이다. 달리기와 비교해서 설명한다면 트랙을 달릴 때 중간중간에 자세와 페이스를 체크해주는 지도를 받은 느낌이다. 장 작가는 책쓰기를 위험하지만 항해를 계속하는 뱃사람들의 습성에 비교하고 있는데, 나는 달리기와 비교하고 싶다.
"내가 더 오래 멀리 달려가서 죽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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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들
모든 책에 다 길고 깊고 복잡한 사유가 담겨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 그런 사유를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책이다.
P 15 – 6
이 책의 목표도 고도로 전문적인 레이싱 기술을 전수하는 데 있지는 않다. 내가 이 책에서 하려는 일은 우선 ‘자전거를 타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당신도 탈 수 있다’고 부추기고, 독자들이 창고에 있는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오른쪽 브레이크와 왼쪽 브레이크가 어떻게 다른지 같은 사소한 지식을 몇 가지 전달하려 한다. 사실 그런 역할은 전문 레이서보다 동네 형이 더 잘할지도 모르겠다.
P 18
P. S.
나는 매사에 냉소적인 인간이고, 신이나 정의, 휴머니즘에 대해서도 그다지 믿음이 없다. 독서를 제외하면 딱히 취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친구도 몇 없고, 사람을 잘 안 만나고, 취향도 변변찮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공허함에 덜 빠지고, 꽤 보람 있게 산다. 나는 그게 내가 대단치는 않을지언정 책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맞부딪치는 온갖 소음을 걸러내고 의미를 정제해서 저장하려고 만든 매체가 책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할 수가 없다.
P 41
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느끼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충동은 마음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또는 동굴 입구에서 부는 바람과 같다. 프로이드나 융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동굴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잠수함을 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보자. 햇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자. 심리 상담이나 분석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자문자답이 우리의 잠수함이고 햇불이다.
P 116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뭘까. 나는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대상을 유심히 헤아리게 된다.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좋은 에세이에는 그렇게 삶에 대한 남다른 관찰과 애정이 담긴다.
P 124
어느 한구석 모난 데가 없어질 때까지 원고를 매끌매끌하게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도 욕하지 않는, 흐리멍덩한 책을 목표로 삼으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나의 조언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뾰족한 곳을 더 뾰족하게 깎자. 글은 날카롭게 깎되 마음은 온유하게 먹자. 욕을 먹어야 한다면 정확한 욕을 들어먹기 위해 애쓰자. 비판에 익숙해지자.
P 233
한국에서 인세 수입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그 축복받은 소수에 당신이나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생활을 하려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결국 글 쓰는 일이 아닌 일에 시간을 보내기는 마찬가지가 된다.
게다가 기약 없이 좌절이 이어지는 일상은 사람의 마음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없다면 더 그렇다. 반면 직장 생활을 하며 대실 있게 쌓은 사회 경험은 좋은 작가가 되는 데 장기적으로 유익하면 유익하지 해롭지 않다. 먼저 ‘부업 작가’로 어느 단계까지 이르기를 목표로 삼자.
P 249 –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