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달리고 싶어 달린 날

성급하게 ‘아들의 첫 달리기’를 상상해보았다...

by sposumer
달리기에도 질문이 있다면, 그건 "달리고 싶어서 달린 건 언제가 마지막인가?"가 될 듯하다. 같은 '달리기'라는 말로 부르지만, 몸을 움직여 뛰는 행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강요로 억지로 달리는 일이다.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달리기가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나는 달리기 선수도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서 나에게 달리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달리지 않는 것도,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물론 내가 달리고 싶을 때 달리는 것도 자유다. 올해 5월에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나는 언제나 달리기에 대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다.

유능한 달리기 코치가 달리는 선수의 폼을 보고, 호흡 소리를 들으면서 선수의 컨디션을 짐작한다.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된 아들의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은 우는 것이다. 나는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미묘한 차이에 따른 요구 사항을 추측해야만 한다. 아들은 배가 고프면 입으로 손을 빠는 힌트를 주기도 하지만 힌트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한 달간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의사소통을 하는 혹독한 수련을 해야만 했다. 새벽에도 3시간마다 배가 고픈 아들에게 분유를 주기 위해 일어났다. 나는 수면부족으로 시차적응이 안된 사람처럼 늘 피곤하다 보니 달리기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울어대는 아들과 씨름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퇴근 후에 달리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운좋게 아들이 새벽 6시 정도에 일어나서 분유를 먹고, 잠이 든 경우, 출근 전에 잠깐 동네 한 바퀴 정도는 달릴 수 있는 틈이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달리기를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조금 더 자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우세했다.

뭔가 다짐을 하지 않는다면, 아니 어떤 계기가 없다면 다시 달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국경일인 현충일에 롯데월드몰 룰루레몬 매장에서 Global Running Day라는 행사가 있어서 신청을 했다. 올해 마흔이 된 뒤에는 스포츠 브랜드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가신청을 해도, 간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현충일 전날, 점심을 먹고도 참가 안내 문자가 오지 않았다. 역시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후에 문자가 왔다. 저녁에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내일 오후에 달리기 좀 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현충일 오후 3시 50분까지 롯데월드몰 룰루레몬 매장으로 가야만 했다. 신생아 아들이 없다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한 3시부터 아들은 울면서 보챘다. 미안하지만 아내에게 우는 아들을 맡기고 집에서 출발했다. 달리기 대회도 아니고 그저 7km를 달리는 것뿐인데, 가슴이 쿵쾅거렸다. 출발지는 롯데월드몰 룰루레몬 매장이고 도착지는 청담동 룰루레몬 매장이었다. 롯데월드몰에서 한강공원으로 가는 길은 좁고 행인들이 많아서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한강공원으로 진입 후에 페이스(pace)에 따라서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한강공원이었지만, 6월초 날씨치고는 무더웠다. 5km가 지난 지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잠깐 쉬고, 남은 2km는 각자 달리고 싶은 페이스로 달렸다. 내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나는 달리고 싶었다. 누가 시켜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달리고 싶었다. 한 달만에 달리기를 하다보니 엉덩이, 종아리 등 내 몸 곳곳은 욱신욱신 거렸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살아있었고, 바람이 나를 스칠 때마다 자유가 느껴졌다.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문득 내 아들이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일지 궁금해졌다. 그런 작은 선택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아들이 나와 울음소리가 아닌 말로 의사소통을 하고, 걷고, 달리기 위해서는 우선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날이 오기까지 나는 최소 몇 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예전에는 나는 달리고 싶어서 달린 날에 대부분 나에 대한 생각만을 하곤 했다. 한 달만에 정말 달리고 싶어 달리는 날에 나의 달리기가 아니라 성급하게아들의 달리기를 생각하는 내가 참 낯설었다. 앞으로도 내가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날에는 나만의 달리기가 아니라 아들과 달리기를 생각, 아니 꿈꿀 것 같다. 아들이 걷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잠깐이지만 두 발이 공중에 떠있는 날, 처음으로 달리는 그 날을 상상하며 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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