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달리기 이야기

1번째 편지, 왜 '편지'와 '달리기'인가?

by sposumer

사랑하는 아들 원아,

이제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네가 언제 이 편지를 읽게 될지 궁금하다. 우선 아빠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부터 이야기 하마.

아빠가 초등학교 2학년인 1987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에서 '사랑하는 아빠가(Love, Dad)'라는 책이 있었다. 미국 AP 통신사(news agency) 기자인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서 출간한 책이었지. 저자인 패트릭 코널리(Patrick connolly)는 두 아들을 위해 편지에 정성스럽게 그림까지 그렸다. 이 유쾌한 편지들은 저자이자 두 소년의 아버지인 패트릭 코널리가 마흔한 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란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든 편지가 '사랑하는 아빠가'라는 말로 끝을 맺었던 것이다. 아빠는 부모님이나 형제가 아닌 가족에게 '사랑하는 OO가'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는 편지를 꼭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가 결혼하기 전에는 너에게는 사촌 형인 제훈이에게도 편지를 쓴 적이 있단다. 물론 편지의 마지막은 '사랑하는 삼촌'이었지. 지금 너에게 쓰는 편지는 누가 시켜서 쓰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란다. 너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더불어 이 편지를 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일곱 살 이후에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은 미리 정리해 보는 것이란다. 왜 일곱 살이냐고? 아빠가 이제까지 읽은 육아 관련 서적들을 보면 일곱 살까지는 아이들이 아빠와 놀아달라고 하지만 이후에는 친구들과 더 잘 논다고 하더구나. 네가 자라서 동년배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을 당연한 일이고, 아빠에게도 기쁜 일이다. 그렇지만,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줄어든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란다. 아빠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들 때도 아빠의 관심과 격려를 느낄 수 있도록 미리 편지를 적어본다.


두 번째로 왜 '달리기' 이야기인가에 말해보마. 아빠는 올해 마흔이 되었다. 태어나서 세상에서 40년을 살았다는 것인데, 아직도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 앞으로 네가 아빠에게 질문을 할 때도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을 거다. 아빠가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만 계속 편지를 쓸 수 있을 것이고, 잘 아는 것이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잘 아는 것이라도 싫어하는 것이면 이야기를 하기가 싫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아빠가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은 달리기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육상선수나 감독은 아니었지만 참 달리기를 좋아한다. 남자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해서 어려운 공룡 이름까지 줄줄 외우는 공룡박사가 되듯이 아빠는 달리기 박사는 아니지만, 달리기에 대해서는 웬만한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가 있단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찾아내고 경험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스스로가 답해야만 할 문제가 있게 마련이니까.
자와할랄 네루 <세계사 편력> 중에서

위 구절은 영국에서 인도가 독립을 한 후에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세계사 편력은 자와할랄 네루가 3년간 감옥에 있을 때, 외동딸인 인디라 간디에게 세계사를 글감으로 쓴 편지들을 모아서 출간한 책이다. 정치인인 자와할랄 네루는 외동딸에게 세계사에 대해서 편지로 이야기를 한 거란다. 위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아빠에게 달리기란 직접 찾아서 경험한 가치 있는 것이었고,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아빠는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대학교까지 졸업했으니 16년을 학교라는 곳에서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대학교 졸업 후 군대와 사회생활을 돌아보면 학교에서 공부를 한 것들이 소용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위에서 나온 '누구에게든 스스로가 답해야만 할 문제' 같은 것들이 있을 때, 학교에서 공부한 것들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이 문제가 주관식이 아니라 객관식 문제로 보기가 있고 선택만 하면 되는데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아빠는 군대 전역 후에 어렵게 식품회사 영업부 신입사원이 되었을 때, 버틸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꽤 오래 고민을 했었다. 이 고민 때문에 친구나 선배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마셨다. 약 한 달을 이 문제로 고민을 했고, 가을에 풀코스 마라톤에 출전해서 달리다가 그만두기로 선택을 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이 고민 때문에 출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30km가 넘어서 겨우겨우 달리고 있을 때, 머리 속이 표백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직이냐 사직이냐는 선택에 따라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리고 이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자꾸 선택을 망설이게 하거나 헷갈리게 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을 해보면 이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빠의 마음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도 이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 달리기가 아빠의 머리를 표백해준 덕택에 아빠의 마음속에 있던 사직이라는 두 글자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렇게 달리기는 아빠가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가끔씩 달리기의 도움을 받고 있어서 너에게도 달리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오늘 네가 새벽 6시 반에 분유를 먹고 잠든 덕에 아빠는 오랫 만에 동네 한 바퀴를 달릴 수가 있었다. 약 6km를 30분 동안 달린 후에 이 편지를 쓰고 있다. 앞으로도 달리기를 한 후에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생각이 먼저 정리돼야 한다. 너도 한글을 배우고, 문장이라는 것을 만들고, 글짓기라는 것을 하게 되면 공감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책상에 무작정 앉아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지만, 아빠는 그런 재능 있는 작가가 아니란다. 아빠가 이제까지 쓴 글들을 읽어보면 부끄러운 글도 많다. 그래도 가끔 남에게 보여주었을 때 손가락질을 당하지는 않겠다고 혼자 생각하는 글이 있는데, 이런 글들은 대부분 아빠가 달리기를 하다가 번뜩 생각난 것을 정리한 것들이란다. 아빠가 너에게 쓰는 편지는 좋은 글 아니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은 글이 되었으면 한다. 아빠가 달리기를 할 때마다 번뜩이는 생각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달리다 보면 가끔은 좋은 생각이 나올 거라고 믿는다.

아무튼 내가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달리기를 하면 딱 맞는 단어와 구절과 문장이 떠오른다. 때로는 마치 슬롯머신을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으로 칼럼에 쓸 주제를 생각하며 달릴 때도 있다. 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첫 번째 문장이 떠오른다. 탕하고 두 번째 문장이 떠오르면 문장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잭팟이 터지면 완벽하고 진실한, 훌륭한 한 편의 칼럼이 완성된다.
조지 쉬언, <달리기와 존재하기> 중에서

윗 문장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책인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Running & Being)'라는 책에 인용했다. 달리면서 어떻게 생각을 하냐고?

너는 아직 걷지도 못해서 엄마나 아빠 품에 안겨있는 시간이 많다. 네가 아빠에게 안겨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아빠 가슴에 너의 가슴을 맞대고, 오른손은 아빠 어깨에 올린 자세란다. 턱은 아빠 어깨에 걸쳐져 있고, 엉덩이는 아빠의 오른팔이 잘 받쳐주고 있는 자세다. 아빠가 너를 이렇게 안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 너는 잠을 자기도 하지만, 커다란 눈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감상하면서 생각에 잠겨있기도 하지. 네가 아빠 품에 안겨서 생각을 하는 것처럼, 아빠는 달리기를 하면서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태어난 후에 아빠는 '나'라는 우주를 벗어나, '너'라는 우주를 달리기 시작했다. 곧 두 번째 편지에서 만나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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