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달리기 이야기

2번째 편지, 달리기는 시간이다.

by sposumer

사랑하는 원이야,

네가 분유를 먹고 잠든 지난 일요일 저녁에 아빠는 9km를 달렸다. 달리면서 '달리기는 시간이다'라는 생각을 했어. 아빠는 엄마 뱃속에 있는 너를 기다리면서 육아가 소재인 영화들을 찾아서 봤어.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도 그중에 하나였지. 영화 속에는 아빠 두 명이 나오는데, 육아에 대한 태도가 달라. 돈을 잘 벌지는 못하지만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목욕도 같이 하는 아빠가 그렇지 않은 아빠와 육아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해.

<사진 출처: IMDB(https://www.imdb.com/title/tt2331143)>
子供は時間だよ。(육아는 시간이예요.)

아빠는 너를 한 달 정도 지켜보면서 육아도 달리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시간이 없어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간다는 말을 많이하지. 육아는 이렇게 엄마와 아빠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단다. 네가 한 달 동안 말 한 마디 없이 울기만 했지만, 아빠는 너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어. 너를 계속 관찰하고, 울기 시작하면 달래기 위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단다. 육아는 아직 말하지 못하는 너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인 것 같아.

달리기도 육아처럼 시간이 많이 필요해. 육아가 너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면, 달리기는 아빠가 달리면서 아빠 몸과 대화를 하는 거야. 몸도 너처럼 말을 한 마디도 못해. 그런데, 몸이랑 어떻게 대화를 하냐고? 그래서 달리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숨이 찰 정도로 달리고 나면 힘들어서 그만 달리고 싶지. 몸이 말은 못하지만 숨을 헉헉거리며 그만 달리고 싶다는 표현을 한거지. 짧은 거리를 달려도 이렇게 몸과 단순한 대화를 할 수 있어. 그리고 긴 거리를 달리려면 몸과 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해.

긴 거리를 달릴 때는 무작정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달려나가면 안돼. 달리기를 할 때는 온 몸을 쓰니까, 달리기 전에 천천히 준비 운동을 하면서 몸에 아픈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만 해.(맞아, 준비 운동을 하는 것은 따분한 일이야. ) 특별히 아픈 곳이 없다면, 천천히 달리면서 몸이랑 대화를 시작해도 좋아. 몸이랑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빨리 달릴지를 결정하고 달려야 한다. 몸과 대화를 하면서 달리기는 쉽지 않아. 달릴 때도 몸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지. 억지로 오랜 시간 달리는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정성껏 달려야만 해.

누구나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시원한 물부터 찾게 되지. 하지만, 달리기를 마칠 때도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걷고 마무리 운동까지 하면 더 좋아. 달리느라 수고한 몸이랑 좀 더 여유있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거야.달리면서 아팠던 부위가 없는지, 달리고 나서 아픈 부위가 없는지 몸에게 물어보면, 다음에 어떻게 달릴지 생각하기도 쉬워진단다. 달리기에는 이렇게 긴 시간과 정성과 필요한 거지.

아빠는 너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아직까지 너랑 대화를 하지는 못해.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안아서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고 있지. 다른 일들과 비교해 보면 우는 너를 달래고 재우는 것이 가장 긴 시간이 걸리고, 힘도 들어. 가끔은 아빠도 졸린데 너를 안아서 재우고 있으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단다. 이럴 때는 아빠가 너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정성이 부족하지 않은지 생각을 해본다. 지난 주에 엄마가 아빠에게 동영상을 하나 보여줬어. TV 프로그램 중에서 연예인 아빠가 어린 딸을 돌보는 내용이었어. 피곤한 연예인 아빠는 방바닥에 누워서 쉬고 싶은데, 어린 딸이 방에 있는 그네를 밀어달라고 했어. 연예인 아빠는 방바닥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서 그네에 노끈을 매고, 노끈을 땡겼지. 어린 딸은 그네가 움직이니 방끗 웃었어. 엄마도 재미있는 동영상이라고 생각하고 아빠에게 보여준거야. 그렇지만, 아빠는 이 동영상이 재미있지 않았어. 피곤한 연예인 아빠를 조금은 이해하지만, 그네에 달아놓은 노끈에는 전혀 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거든. 아빠는 어린 딸이 연예인 아빠가 자신과 눈을 맞추면서 그네를 밀어주기를 원했을 거라고 생각해. 아빠도 네가 빨리 자지 않고 울기만 하더라도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정성껏 안아주도록 노력할께.

아빠는 아직 초보 아빠야. 그렇지만, 육아도 달리기처럼 긴 시간동안 정성을 쏟으면 조금씩 좋아질 거라고 믿어. 초등학교 때는 100m 달리기도 싫어하던 아빠가 42.195km라는 풀코스 마라톤(full course marathon)을 완주한 것처럼 말이지.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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