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달리기 이야기

3번째 편지, 달리기는 내게 맞는 페이스(pace) 찾기란다.

by sposumer

사랑하는 원이야,

6월 말이지만 날씨가 벌써 덥구나. 아침에 자고 일어난 너를 안으면 등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단다. 너도 아빠를 닮아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인 것 같구나. 아기 침대 위에 메쉬 재질인 쿨매트를 깔아주었더니 땀을 덜 흘려서 다행이란다. 아빠는 지난주와 이번 주에 각 한 번씩은 달리기를 했는데, 게을러서 너에게 편지를 쓰지 못했어.

달리기는 기록을 측정하는 운동이다. 100m부터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경기까지 같은 거리를 달려서 결승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1등이 된다. 1등을 하려면 당연히 빨리 달려야지. 네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지 숫자로 표시를 해주는 것이 속도(speed)란다. 모든 자동차에는 속도계가 달려있고, 속도계를 보면 한 시간에 몇 km를 달리는지를 알 수 있다. 시속 80km라면 한 시간에 80km를 달리는 속도지. 그런데, 사람이 달리는 속도를 이야기할 때는 '속도'가 아니라 '페이스(pace)'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해. 앞에서 설명한 시속이랑 비슷한 뜻이지만, 사람은 자동차보다 느려서 한 시간에 몇 km를 달리는지가 아니라 1분에 몇 km를 달리는지를 페이스라는 단어로 표현해. 만약 어떤 사람이 "저는 5분 페이스가 딱 좋아요."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1km를 5분 만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이란다. 참, 미국에서는 km라는 단위가 아니라 mile(1마일은 약 1.6km)이라는 단위를 더 많이 사용해. 그래서, 미국 사람이 나는 5분 페이스로 달린다라고 하면 1 mile을 달리는 페이스인지, 1 km를 달리는 페이스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아.

페이스라는 개념은 아주 간단하지?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내게 맞는 페이스를 찾는 것은 어렵단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적당한 페이스는 직접 달려봐야 찾을 수 있으니까. 또 내게 맞는 페이스를 지켜서 달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야. 1km를 5분에 달렸다고, 5km를 25분에 달릴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거야.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동일한 페이스로 달리기 위해서는 오래 연습을 해야 돼. 자동변속기가 달린 자동차를 운전할 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원하는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엑셀레이터 페달을 지그시 밟고,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있으면 되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도록 설정할 수 있는 크루즈(cruise) 기능이 있는 자동차도 있어.

그렇지만 사람은 자동차와 달라. 적당한 페이스를 찾았고, 이 페이스로 달릴 때도 거리가 늘어날수록 몸이 힘들어져. 잘 달릴 수 있는 몸을 타고났거나, 연습으로 일정한 거리 이상을 같은 페이스를 달릴 수 있는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한 가지 변수가 남아있어.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라면,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게 된단다. 네가 1km를 5분에 달리는 페이스를 목표로 잘 달리고 있을 때, 너를 앞질러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면 어떨까? 아마 너도 모르게 좀 더 빨리 달리게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조금씩 빨리 달리다 보면 1km를 5분에 달리는 페이스보다 더 뒤처질 수도 있지. 혼자 달릴 때도 마음이 조급해지면 적당한 페이스를 놓치게 된다.

<그룹으로 달릴 때,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을 페이서(pacer)라고 해. 2018 아이스버킷챌린지 런 8km 5분 30초 그룹 페이서 분들 모습>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너를 건강하게 출산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어. 그중에 한 가지가 매일 만보 걷기였지. 보통 걷는 속도보다는 조금 빨리 걸었으니까, 페이스를 따져보면 1km를 9분 정도에 걷는 페이스였을 거야. 너는 엄마의 빨리 걷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아빠가 너를 재울 때, 엄마가 했던 것처럼 너를 안고 빨리 걸으면 금방 잠이 들거든. 7kg인 너를 안고 방안을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힘들지 않아. 그런데, 얼마 전에 아빠가 저녁에 약속이 있었어. 너를 재우고 약속에 나가려고 너를 안고 방안을 서성이는데, 10분이 지나도 네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어. 아빠 이마에서 땀도 조금 났지.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아빠가 급한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더구나. 아빠의 페이스가 네가 편하게 잘 수 있는 페이스가 아니었던 거야. 아빠가 조급한 마음에 페이스를 잃고, 너를 빨라진 페이스에서도 자라고 한 거지.

달리면서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자신 만의 페이스를 찾고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겠지? 적당한 페이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이번 주에 아빠가 읽었던 책 중에서 한 단락이 떠올라서 적어볼게.

덕은 중용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은 악덕의 특징이고, 중용은 덕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덕은 중용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덕은 중용을 택하여 행동하는 성품이다. 그것은 두 악덕, 즉 지나침으로 말미암은 악덕과 모자람으로 말미암은 악덕 사이의 중간이다. 악덕이 정념과 행동에서 옳은 것에 미치지 못하거나 지나친 데 비해, 덕은 중간의 것을 발견하고 선택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중에서

'중용'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단다. 달리면서 적당한 페이스를 찾는 것도 매번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지.

달리기를 할 때 각자에게 적합한 페이스를 찾는 것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이야.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달려야지 부상 없이 오래 달릴 수 있거든. 그리고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과 달리기를 할 때는 너의 페이스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안 돼.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아직 자신의 페이스를 찾지 못했을 확률이 크니까. 함께 천천히 달리면서 적당한 페이스를 찾는 것이 좋아.

세상에는 빠르고 1등을 하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야. 아빠는 내가 빠르고 1등만 하는 사람보다는 너만의 페이스를 찾아서 행복하게 달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아빠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뭘까 생각해봤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빠가 너에게 '빨리빨리'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빠와 달리기를 할 때도 조급해하지 않고 너의 페이스에 맞춰서 달릴 수 있도록 할게.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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