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들에게 배운 상생의 지혜
올해 5살이 된 아들은 이제 제법 말을 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재미도 있다.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도 참 많고, 하는 말에 적당하지 않은 단어와 문법도 간간히 있어서 아직은 멀었다. 얼마 전에 ‘가위바위보’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아들에게 여러 번 설명을 해주었지만, 아직은 가위바위보라는 간단한 놀이의 규칙도 햇갈려했다. 어제는 의자쌓기 놀이를 하기 전에 가위바위보로 누가 먼저 할지 정하자고 했다. 아들이 가위바위보를 재미있어 해서 의자쌓기 놀이는 뒷전이 되었고, 몇 번이고 가위바위보만 했다. 아들은 가위를 제일 좋아했다. 그래서 계속 가위만 냈다. 가위는 보자기를 이길 수 있고, 주먹한테는 지는 것이라고 몇 번을 알려주어도 아들은 세 번을 하면 두 번을 가위를 냈다. 내가 속으로 좀 답답해 하면서 가위바위보를 계속하다가 우연히 아들도 나도 가위를 냈다. 내가 “비겼다”라고 말하기 전에 아들은 이렇게 외쳤다. “같이 이겼다!”
“응?”
“아빠! 우와, 같이 이겼다!”
아들은 뭐가 좋은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아들이 좋아하니까, 내가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했고, 나는 다시 가위를 냈다. 아들도 역시 가위를 냈다. 아들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아내를 데리고 왔다. “우리 가위바위보 같이 해요!”
아내까지 세 명이 가위바위보를 했다. 아내도 아들이 가위를 제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 명이 모두 나란히 가위를 내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같이 이겼다. 나는 같이 이기는게 제일 좋아!”
하나 뿐인 아들을 키우면서 아빠인 내가 아들에게 뭔가 배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는 정말 큰 걸 배운 것 같다. 물론 문법적으로 ‘같이 이겼다’는 말이 안된다. 가위바위보를 하다가 모두 가위를 낸 경우에는 승부가 결정이 되지 않은 것이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다시 승부가 날때까지 가위바위보가 계속된다. 성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비겼다”는 표현도 하지 않는다. 성인들에게 가위바위보의 목적은 놀이가 아니라승부를 결정하는 방법일뿐이기 때문이다. 어른인 나도 어린시절 놀이로 배웠던 가위, 바위, 보의 의미는 잊어버린지 오래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어떤 반 친구에게 여러 번 맞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는 많이 속상했다고 하셨다. 맞고 다니지 말라고 여러 번 꾸중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너도 맞지만 말고 때리면 되잖아!”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들었다. “엄마, 내가 때리면 친구가 아프잖아…” 어머니는 내 대답을 듣고 갑자기 할 말이 없었다고 하셨다.
이런 나니까 국민학교를 입학하면서 친구들을 때리고 다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쟁과 경쟁을 통해서 승자가 되는 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시험을 잘 봐서 동네에 하나 뿐이 경양식집인 ‘장미의 숲’을 가야했고, 중학생이 되어도 키가 작았던 나는 나보다 키가 큰 친구들과 농구를 해도 어떻게든 이기려고 별 짓을 다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회사 생활까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은 중요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가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17년간 회사 생활 중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던 곳은 홍보대행사였다. 홍보대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통해서 다른 대행사를 이기고 제안의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은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 회사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타사의 불행은 내가 다니는 회사의 행복이었다.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타부서와 협업보다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늘 계속되었다. 성공한 캠페인, 브랜드, 제품의 뒤에는 나와 내가 소속된 부서가 있어야 했다.
아들의 ‘같이 이겼다’라는 말이 내 가슴에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내가 ‘배민커넥트’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민커넥트’ 자전거 배달에는 네 가지 주체가 있다. 첫째, ‘배민’과 ‘배민커넥트’ 앱을 만들고 서비스 운영과 CS를 담당하는 회사. 둘째, ‘배민’앱을 통해서 배달을 시키는 소비자. 셋째, ‘배민’앱으로 들어온 주문에 따라서 음식을 준비하는 가게. 마지막으로 ‘배민커넥트’ 앱을 보고 배달을 하는 라이더(커넥터). 올해 상반기 내 목표인 1,000건까지는 아직 좀 남았지만 이제 내 배달완료 건수는 600건을 넘어서 700건을 향하고 있다. 이렇게 배달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앞서 소개한 네 가지 주체가 서로를 조금 더 고려해주면 좋겠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전업으로 자전거 배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입장에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회사 측은 어느 정도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해부터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러이더들의 모임인 라이더 유니온의 요구에 따라서 AI가 측정하는 ‘최단거리’가 아니라 ‘실운행거리’에 따라 배달비를 변경하기로 했다. 또, 자전거 배달인 배민커넥트 앱으로 배달을 하는 커넥터(라이더)들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고용보험이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물론 아직도 ‘주류(술) 포함 배달’ 등 회사가 개선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은 있다.
요즘 내가 제일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은 배달을 시키는 일반 소비자들이다. 좋은 분들도 많지만, 배달료 지급과 별개로 커넥터(라이더)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고 종종 느깐다. ‘고객요청’란에 문 앞에 배달음식을 놓고 가는 ‘비대면’ 배달이 아니라, ‘대면배달’인 ‘안전하게 와달라’는 요청에 따라 배달지(전달지)에 도착했다. 배달지인 빌라(혹은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 해당 호수를 호출해도 답이 없고, 암호화 된 전화번호로 고객에게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도 않고…이럴 때는 정말 난감하다. 기계적으로 생각하면 공동현관 앞에 배달음식을 놓고, 사진을 촬영해서 고객에게 전달하고 떠나고 싶다.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다시 한 번 전화를 하면, 대부분 통화가 된다. 전화로 전후 사정을 설명할 틈도 없이 “배달인데요”라는 한 마디에 공동현관문이 열란다. 배달가방을 매고 계단을 올라가서, 초인종을 누른다. 문을 열면서 전화통화를 계속하고 있는 고객은 배달음식 봉지만 받고 문을 닫는다. 라이더 입장에서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사람 취급을 못 받는 느낌이다.
물론 전화통화를 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인 경우가 더 많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는 중이다, 모텔로 배달을 시켰는데 급해서 실수로 호수를 잘못 적었다. 괜찮다. 우리는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제일 화가 나는 것은 중, 고등학생이 떡볶이, 마라탕, 치킨같은 음식을 시켜놓고 연락이 안되다가 어렵게 연락이 되어 배달음식을 전달받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이다. 분명히 스마트폰을 나보다 잘 다루는 어린 학생들이 앱에서 고객요청 사항을 기재하거나 변경할지 모를까? ‘흠, 나는 배달을 시킨 사람이니 고객요청 사항대로 안해도 되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를 고려하는 자세라고 할 수는 없다. 매일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 취급을 못받은 날은 정말 불쾌하다. 하지만, 햄버거와 함께 가져간 콜라가 조금 흘렀어도 이해해주는 고마운 고객들도 있어서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다.
5살 아들이 말한 ‘같이 이겼다’는 세상을 살면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로 조금씩만 생각해준다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다. 세상 모든 일이 ‘일정한 거리를 누가 제일 빨리 달리는가?’와 같이 승자를 가리는 레이스는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누가 제일 빨리 달리는가보다는 누가 봐도 뻔한 선한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는 상생에 더 가깝지 않은가?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가 낫지만 멀리가고 싶다면 함께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