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커일기(2022년 3월 4일)

졸업식과 중국집

by sposumer

점심 배달을 시작하기 전에 조금 설레었다. 오늘은 배달완료 900건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송파구 지역으로 배달하면 건당 1,000원이 지급되는 프로모션 생각은 접고, 힘차게 배달을 나섰다. 지하 주차장 경사로를 올라갈 때 무선 이어폰에 들리는 경쾌한 ‘띵동’ 소리! 오늘 첫 배달음식 메뉴는 죽이었다. 전에도 가보았던 죽집으로 갔다. 배달만 하는 죽집을 혼자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메뉴에 만두가 있어서 조금 늦는다고 하셨다. 죽만 있다면 10분을 넘지 않는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주셨다. 예전에 냉면집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찐만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첫 배달지는 송파구였지만 그 이후에는 우리 집과 점점 먼 곳으로 배달을 가게 되었다. 같은 항구로 들어왔다가 점점 더 먼바다로 떠나는 원양어선 선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식 픽업지인 항구도 계속 변한다는 것이었다.


배달이 계속되면서 설렘은 녹아버린 얼음처럼 사라졌다. 오르막에 코너를 몇 번 돌아서 고덕동의 고층 아파트에 도착했다. 공동현관에서 배달을 시킨 호수를 호출하려고 할 때, 버거킹 봉투를 든 오토바이 배달원이 공동현관으로 들어갔다. 잽싸게 엘리베이터에서 12층을 눌렀다. 공동현관을 열어준 고마운 오토바이 배달원에게 물었다.


“몇 층이세요?”

“12층이요”


나는 1204호, 오토바이 배달원은 1203호였다. 12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나는 내려서 왼쪽인 1204호로 뛰어갔다. 벨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오토바이 배달원은 1203호 앞에 햄버거 봉투를 내려두고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나도 빨리 1층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 배달은 대면 배달이었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눈가의 주름과 목소리뿐인데, 나보다 젊은것으로 예상되는 오토바이 배달원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엘리베이터 층을 표시하는 창에 숫자는 12부터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다.


“배달인데요, 벨을 눌렀는데 안 나오셔서 전화를 드렸어요?”

“그래요? 나갈게요”


벨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면, 집에서 뭘 하고 있기에 벨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는 것일까? 전화를 받는 여유 있는 목소리에 왠지 힘이 빠졌다. 다행히 1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갈 때, 엘리베이터가 멈추지는 않았다. 다시 음식을 픽업하러 음식점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데, 초등학교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개학을 해서 등교를 한다만 다했는데 개학을 했고, 아이들이 입학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2월에 열린 초등학교 졸업식이 쓸쓸했었던 기억이 났다. 같은 초등학교 졸업식 날에도 이 아파트로 배달을 왔었다. 이상하게 짜장면과 탕수육 배달이 많다고 생각했던 그날이 알고 보니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9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졸업장을 들고 있는 초등학생이 탔다. 뭔가 뚱해 보였는데, 졸업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이 쓸쓸하게 졸업식을 마감했을 것을 생각하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졸업식 때는 엄마, 아빠랑 사진도 찍고, 중국집에 가서 6학년 때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친했던 친구도 만나고 했던 것이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초등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몇 층이니?”

“9층이요”


어, 몇 호야라고 물었더니, 903호라고 했다. 이건 네 거란다. 졸업식에 가지 못한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해 놓은 것이었다. 중학생이 될 초등학생은 짜장면과 탕수육이 든 봉지를 들고 내렸다. 이 뒷모습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떠올랐다. 배달료를 받고 전달한 것이지만 나도 뭔가 뿌듯했다. 직접 가서 축하해주지 못하는 아들을 생각해서 제시간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해둔다. 이런 일은 엄마 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기가 자고 있는 것을 배려하는 엄마처럼 배달을 하는 사람도 조금만 배려해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늙었지만 나도 우리 엄마한테는 귀한 아들이라서 배달을 시키는 어머님들께 부탁드려봅니다.


P.S. 저녁에는 바람이 너무 심해서 배달을 안 했습니다. 점심 배달로 배달완료 900건을 달성했습니다. 정확히는 905건입니다. 아, 배달하면서 전화통화를 하면 제 이름을 ‘배달’이라고 하는데, 저도 이름도 있고 생일이 있어요. 생일이 9월 5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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