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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20220701] 다친 발가락

쉿, 비밀이야!

by sposumer

아침에 일어나니 오랫 만에 비가 오지 않고 하늘이 맑았다. 부랴부랴 자전거로 출근 준비를 해서 출발했다. 집에서 한강공원으로 진입해서 잠실 종합운동장을 지나서 헬기장을 지날 때쯤, 자전거 도로에 질척한 진흙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우선 더 가보기로 했다.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이 보이는 곳쯤에서 멈췄다.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이 물에 잠겼고, 사무실로 가는 길인 양재천으로 진입이 불가능했다. 다시 잠실 종합운동장으로 돌아가서 자동차들과 함께 달려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제는 자전거도 나도 진흙투성이가 된 것이었다. 이번 주에 아들이 오랫 만에 보던 ‘페파 피그’의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진흙땅에서 뛰고 뒹굴기를 가장 좋아하는 페파 피그의 페파와 조지.

사무실에 갈아입을 옷은 있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고 일을 했다. 그리고 진흙투성이 자전거와 옷으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 아빠를 외치며 현관 앞으로 나온 아들의 왼발을 보니 붕대가 감겨 있었다. 집에서 아들을 돌봐주시는 보유이모님이 아들이 어린이집을 마치고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면서 문 모서리에 발이 찍혔다고 했다. 태권도장 사범님께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에도 친절이 녹아있는 사범님은 연신 죄송하다고 하시면서 혹시 몰라서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문제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알겠다고 답을 하고, 아들이 7월부터는 태권도장을 월, 수, 금이 아니라 매일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지도 물어봤다. 사범님은 1만 원만 더 내면 된다고 하셨다. 수업료를 더 내고 7월부터는 태권도장을 매일 가는 걸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들을 보면서 엄마가 보면 엄청 걱정하실 거야라고 말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은…


“쉿, 비밀이야!”


평소에도 뭔가 잘못을 했을 때, 나와 단둘이 있으면 아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엄마가 돌아와서 너의 발을 보면 다 아실 텐데라고 답하고 혼자 피식 웃었다. 태권도장을 다녀와서 목욕을 해야 했는데 발가락 상처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비닐봉지로 왼발을 싸매고 박스 테이프를 감고서 목욕을 했다. 목욕을 하고 나서 상처 부위에 감겨있는 붕대와 반창고를 제거하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상처 부위는 크지 않아서 다시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여름이기 때문에 매일 소독을 해야 하고,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아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평소처럼 침대에서 점프도 하고 멀쩡히 잘 노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놓였다.

아들이 책을 보고, 유튜브까지 다 보고 새근새근 잠들고 나서 나도 눈을 감으니 ‘쉿, 비밀이야!’라는 아들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단짝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비밀’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비밀’이라는 것은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다. 마흔 살이 넘은 내가 이제 비밀이라는 것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아니 존재가 있는가? 괜히 이런 생각을 하니 조금 서글퍼졌다. 아들과 나 사이에도 비밀은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쉿, 비밀이야!’라는 아들의 귀여운 말을 오래오래 듣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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