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잠든 멀티버스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과 장인 어른댁도 왕래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마 2년 만에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장인 어른댁 근처 식당으로 갔다. 아들이 좋아하는 양념고기를 먹고, 아들은 장인 어른댁에서 놀았다. 오래된 주공아파트이지만 놀이터도 있어서 아들은 장인 어른댁에 가면 꼭 놀이터에서 놀곤 한다. 나는 일이 있어서 잠깐 하남에 다녀왔고, 장인 어른댁에서 자장면과 콩국수로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평일에서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만, 주말에는 낮잠 시간이 아까워서 낮잠을 자지 않고 논다. 어제도 낮잠을 자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아들이 계속 잠을 자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이런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제는 집에 도착해서도 졸리다고 해서 안방 침대에 그대로 눕혔다. 혹시 일어날까 했는데, 아들은 일어나지 않고 곤히 잠들었다.
오후 8시. 평소 같으면 아들이 마루에서 장난감들을 가지고 한창 놀 시간이라서 집안이 시끌시끌하다. 하지만 어제 아들이 자고 있는 집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아내가 회사 동료가 공유해준 디즈니 플러스로 영화를 보자고 했다. 최신작 중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눈에 띄어서 바로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쭉 보면서 SF보다 HORROR의 느낌이 있었는데,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영화의 감독이 ‘이블 데드(Evil dead)’를 만들었던 샘 레이미였다. 2시간 동안 집 마루에서 영화를 보다니 참 이례적인 밤이었다. 영화의 몰입을 방해했던 단 한 가지는 영화 속에서도 등장인물인 완다(혹은 스칼렛 위치)가 실제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두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영화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안방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들이 생각났다.
보통 오후 9시가 넘으면 나와 아내는 아들에게 치카를 하고 자자고 권유한다. 하지만 아들은 ‘놀이시간 총량의 법칙’을 준수하기 때문에 나와 아내 중에 일찍 귀가한 사람과 놀기 시작해서 최소 2시간을 채워야 치카를 한다. 치카, 샤워, 책 읽기, 유튜브 한 편 보기까지 마치고 나면 오후 11시를 넘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끝나고도 아들이 계속 잠을 자니 오후 11시에 집은 영화 속에 등장했던 멀티버스 느낌이었다. 같은 공간인데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이 선사한 자유를 활용해서 뭘 할까 아들 옆에 누워서 조금 고민했다. 그러다 잠이 들어버렸다. 만약 멀티버스가 있다고 해도 나는 아들이 있는 현실이 더 익숙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