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영업 엄마 미용실
주말에는 원칙적으로는 회사일로부터는 해방이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일 뿐이다. 이상과 현실에는 늘 괴리가 있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5살 아들은 주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트니트니’에 나간다. (혹시 ‘트니트니’를 모르는 분들이 있다면, 실내에서 진행되는 단체 체육교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지난달부터는 트니트니를 마치고 바로 어린이 농구교실로 간다. 이런 아들을 백화점에 데리고 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집에서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백화점까지 가기 때문에 주차문제도 없다.
회사일을 언급한 것은 아내 때문이다. 약 20년을 의류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해온 아내는 백화점에만 가면 직업 본능이 살아난다. 아들이 트니트니와 어린이 농구교실을 하고 있는 동안 의류 매장들을 돌아보는데, 사실 이것이 바로 일이다. 그냥 쉬라고 해도 평일에는 백화점 시장조사를 나갈 시간이 부족하니 쉬면서 기다리는 것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백화점에서 시장 조사는 할만한 일이다. 어린이집 낮잠용 이불 빨래 등 주말에 해야만 하는 육아와 관련된 일들도 상당하다. 주말에 1박 2일 캠핑이라도 다녀오면 더욱 정신이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주말에 아내가 하는 일중에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엄마 미용실’이다.
나를 닮아서 땀을 많이 흘리는 아들의 긴 머리를 주말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엄마 미용실 운영인력은 헤어 담당 아내와 보조인 나로 구성된다. 장비는 어린이용 이발기와 집에서 사용하는 빗과 미용가위가 아니고 일반 가위다. 아들의 몸을 덮는 접이식 덮개와 목욕탕 의자도 엄마 미용실 비품이다. 처음에 엄마 미용실은 마루에서 개장했으나, 이제 효율적인 머리카락 청소를 위해서 욕실이 엄마 미용실이다. 어린이 미용실을 예약하고 가기가 번거로워서 아내가 다니는 미용실도 가보았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엄마 미용실에서 보조인 나의 역할은 아들이 머리를 다듬는 동안 정면만 보도록 하는 것이다.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5살 아들에게 정면을 보고 앉아있도록 해줄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아들 앞에서 내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틀어서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아들은 잘 협조를 하는 편이지만, 욕실에 성인 두 명과 아이 한 명이 몸을 구겨 넣고 머리를 자르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나보다도 키가 큰 아내는 몸을 구겨서 허리가 아프지만 꾹 참고 머리를 어린이용 이발기로 밀고, 빗과 가위로 다듬는다. 내가 대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영화 중에 하나인 팀 버튼의 ‘가위손’에서 주인공 가위손은 정원의 나무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깔끔하게 다듬어내지만, 영화는 영화다. 약 20분 동안 아들의 머리를 자르고 나면 아내와 나 모두 몸 이곳저곳이 쑤시는 것이 느껴진다.
엄마 미용실의 풀 서비스는 곧장 샤워로 이어진다. 평소와 달리 몸에도 머리카락이 남아있지 않도록 머리를 두 번 박박 감는다. 그동안 아내는 엄마 미용실 도구들을 닦아야만 한다. 어제는 아내가 아들의 머리를 다듬다가 살짝 손가락을 베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금손 아내는 아들의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었다. 아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말했다.
“엄마, 머리가 시원해서 좋아요!”
만신창이가 된 나와 아내는 아들의 영혼 없는 칭찬에 빙긋 웃었다. 아들은 새 옷으로 갈아있더니, 입방구가 아니라 코를 팔에 대고 방귀를 뀌는 콧방귀로 한 번 더 웃음을 주었다.
늘 엉아라고 주장하는 아들은 언제까지 엄마 미용실에 다녀야 할까? 다음에 엄마 미용실에 갈 때는 엄마를 위한 목욕탕 의자와 긴 빗을 하나 추가 구매할 예정이다. 원이 엄마, 어젯밤에도 수고 많았어요! 늘 금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