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전차 위르겐 클린스만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

by LA돌쇠

'전차군단'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이자 대표팀 감독 출신으로 독일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다.


1984년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하며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클린스만은 매 시즌 15골 이상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고 1987~88 시즌에는 19골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올랐다.


1989년 이탈리아 인테르나치오렐네로 이적한 클린스만은 3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뛰면서 득점력 못지않게 이탈리아어를 빠르게 마스터하여 구사함으로써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됐다.

이탈리아 팬들의 사랑으로 인테르와 3년 재계약에 성공했으나 팀 내 불화와 입지 불안으로 프랑스 모나코로 이적했다.


모나코에서 팀을 리그 준우승에 올려놓는 등 2년간 맹활약을 하다가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해 1994-94 시즌 리그 경기 20골을 포함하여 29골을 득점하였다. 짪은 기간이었지만 클린스만은 15만 벌의 유니폼이 팔리는 등 팬들의 인기를 얻어 아직도 토트넘의 레전드로 대우받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과 토트넘 핫스퍼에서 선수 생활의 말년을 보낸 클린스만은 미국으로 건너가 4부 리그에서 활약을 하다가 현역에서 은퇴했다.


클린스만은 클럽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높게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진가는 대표팀에서 더욱 빛났다. 1987년 서독 대표팀에 첫 발탁된 클린스만은 A매치 108경기에서 통산 47골을 기록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골을 기록하며 서독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1994년에 5골 , 1998년에 3골을 기록하며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해 3골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현역 은퇴 후 미국에서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던 클린스만은 2004년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독일을 3위에 올려놓았다.


2006년 독일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한 클린스만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직을 잠시 수행했으나 경영층과의 마찰로 사임을 하고 2011년 제2의 고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미국대표팀을 이끌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한 클린스만은 미국을 16강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골드컵과 러시아월드컵 예선에서 성적부진으로 해임됐다.


이후 ESPN의 축구해설가와 헤르타 베를린의 간독으로 활동하다가 2023년 한국대표팀 감독이 됐다. 그러나 재택근무, 전술부재 등의 논란 속에 아시안컵의 부진과 함께 해임됐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애증의 인물이 됐다.


추억 속의 사진은 2017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자원봉사자로 VVIP의전 담당이었고 클린스만은 VVIP로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또한 미국팀 골키퍼로 참가한 아들 조나단 클린스만 응원차 방문했다.


클린스만은 나와 같은 1964년생 용띠라 애정이 간다. 또한 미국에서 내가 살던 오렌지카운티에 살았던 동네 이웃이어서 더욱 애정이 간다.


클린스만은 제빵사 아들로 가업을 잇기 위해 프로에 데뷔하기 전 제빵사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존경스럽다.


선수로서는 축구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지도자로서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동갑내기 친구로서 좋아하는 축구 선수로서 명장으로 평가받는 그날을 보고 싶다.

축구계에서 활동을 하던 제빵사로 가업을 잇던 앞으로도

더욱 빛나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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